'21세기의 전파상' 사설 수리업체, 불법일까?
리퍼비시 제도 탓에 관련 업체 급증...소비자 보호는 사각지대
'21세기의 전파상'이라고 불리는 각종 사설수리업체가 급증하고 있지만 분쟁 시 중재가 쉽지 않아 새로운 소비자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설수리업체가 크게 늘어난 데는 부분수리 대신 리퍼비시(재활용)제품을 제공하고 심지어 무상보증기간 이후 유상AS 대신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등 국내 정서와 맞지 않은 AS를 제공하는 수입사 AS정책 운영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일부 파손이나 고장으로 또 다시 비용을 지불하고 제품을 구입하기를 꺼리는 소비자들에겐 저렴한 값에 부분수리가 가능한 사설수리업체로 발길을 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 소규모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다보니 분쟁 발생 시 보상 등의 문제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규모가 큰 업체의 경우 국내 제조사와 동일하게 일정기간 무상AS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제품을 엉터리로 고쳐놓고 생색내거나 심지어 리퍼비시 비용보다 수리비가 더 나와 소비자가 덤터기를 쓰는 경우도 있다.
사설수리업체 이용 시 제품 보증 효력을 잃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구조라 무엇보다 업체 선정 시 신중함이 필요하다.
#사례1=수리경험 많다더니 문제생기자 "리퍼받지 그랬어" 딴소리
충북 청주시 수동에 사는 채 모(남)씨는 올해 3월 구입한 아이패드 4세대 제품 액정이 깨져 이리저리 수리업체를 알아보다 사설업체를 소개받았다. 리퍼비시 제품을 받기 위해서 내야 하는 자기부담금 40만 원의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전자상가에 있는 모 사설수리업체에서 19만 원에 액정 교체가 가능하다고 해 제품을 맡겼다. 아이패드 제품에서 흔히 일어나는 흰곰팡이 방지기술도 있고 수리 경험도 많다는 큰 소리를 믿었다.
하지만 수리된 제품 속 곰팡이 액정은 계속 닦아도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재 수리를 요구하자 다시 견적을 내야 한다며 추가 수리비를 요구했다. 더욱이 정식 리퍼제품을 받아도 아이패드의 흰 곰팡이 증상은 마찬가지라며 차라리 처음부터 리퍼를 왜 받지 않았냐며 화를 돋웠다.
채 씨는 "흰 곰팡이 방지기술이 있다고 큰소리 치더니 문제가 생기니 발뺌하고 있다. 이러다 리퍼 받는 비용보다 사설업체 수리 비용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사례2=노트북 먹통 만들고 "내가 손댔단 증거 있어?"
경남 김해시 삼정동에 사는 정 모(남)씨는 최근 노후된 소니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기 위해 근처 사설 수리업체를 찾았다.
당일 수리가 된다더니 시간이 길어졌고 그 날 저녁 수리업체 직원으로부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했는데 노트북 화면이 켜지지 않는다"는 황당한 전화가 왔다. 이후 4~5일간 시간을 끌더니 모르쇠로 일관했다. 수리를 맡겼지만 소용 없었다.
먹통이 되버린 노트북를 대체 어떻게 수리한 것인지 묻자 오히려 "내가 수리했다는 증거를 대라", "대신 다른 중고품이 있으니 가져가라"라는 식으로 무책임한 말만 쏟아냈다고.
일단 제대로 된 수리가 필요해 해당 노트북을 공식 AS센터에 맡겼다는 정 씨는 "소규모 업체라 모른 척 해버리면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을까 싶다"며 답답해했다.
◆ 사설수리업체는 불법?...업체 별 무상보증기관 사전 체크해야
과연 사설수리업체들의 이같은 수리행위는 합법일까?
일선 제조사에선 사설수리 업체들의 수리 행위를 직접적으로 '불법'이라고 주장하진 않지만 사설업체의 손이 간 제품의 보증기간을 무효화함으로서 실질적으로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아이폰의 경우 애플사 측은 고객 임의대로 분해하거나 사설업체에 수리를 맡긴 제품에 대해선 보증기간을 무효처리하고 있다고 이미 수 년째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사설수리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사설수리업체들도 개별적으로 사업자 등록돼 있는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업종, 상호가 아니기 때문에 상업등기법상으로도 사업체로서도 합법적이다.
그렇다면 사설업체에서 수리한 뒤 제대로 고쳐지지 않았거나 동일하자가 다시 발생했다면 보상 기준은 어떻게 책정돼 있을까?
이는 다시 무상보증기간 이내와 이후로 나눠 살펴봐야 한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동일하자부위 2회 이상 발생시 제품 보증기간내에서 무상 수리를 받을 수 있다. 반면 무상보증기간이 지난 경우에는 소비자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수리 후 2개월 간 무상 수리기간을 제공할 수 있다.
다수 대리점을 보유한 주요 사설업체는 대개 기준보다 1개월 추가 된 3개월의 무상AS기간을 적용하고 있지만 모든 사설수리 업체가 동일하게 위 규정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리용으로 사용되는 부품 또한 문제. 공식AS센터가 아니기 때문에 교체하는 부품이 정품인지 여부를 실질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어 소비자로서는 '저렴한 가격'에 모든 것을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사설 수리업체를 감독하는 기관 및 부서도 없어 현재 사설수리 업체가 어느 정도인지 현황 파악조차 쉽지 않아 비정품 부품 사용 등 부당한 AS가 이뤄져도 소비자 입장에선 다른 사설 AS센터로 도움을 구하는 방법 밖엔 없다.
컨슈머리서치 최현숙 대표는 "사설수리 업체는 아직도 많은 소비자들이 '불법'이라고 생각할 만큼 소비자 피해 구제 있어 철저한 사각지대에 있다"면서 "일부 업체를 제외하곤 영세한 규모가 대부분이어서 체계적인 관리 감독이 무엇보다 시급한 분야"라고 밝혔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