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짜리 무료 통화권에 숨은 내비 사기 기승
기기 먹통 되고 통화권은 무용지물...연체료만 고스란히 남아
# 광주 광산구 비아동에 사는 김 모(남)씨는 2년 전 방문판매업자로부터 매립형 내비게이션을 구입했다. 구입 금액으로 380만 원을 제시한 업자는 대신 해당 금액 상당의 무료 통화권을 제시했다. 할부 결제로 300만 원만 납입해도 된다는 조건까지 걸었다고. 하지만 구입 후 2~3개월에 한 번씩 내비게이션이 고장났고 AS도 업자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게다가 해당 업자는 전화나 약속을 걸핏하면 잊어먹기 일쑤여서 결국 구입 2년 만에 반품 신청을 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 매입비용으로 180만 원을 요구해 결국 김 씨는 고장난 내비게이션을 보관만 하고 있는 처지에 놓였다.
# 충북 제천시 신백동에 사는 김 모(남)씨는 텔레마케팅에 현혹돼 통신요금 400만 원 어치를 선 결제해주고 내비게이션을 받았다. 일시불 납입이 불가능해 망설이자 "카드론으로 분할납부가 가능하고 매 달 발생하는 이자를 환급해준다"는 제안에 솔깃해진 김 씨. 구입 후 8개월까지는 이자환급금과 통화요금이 제대로 들어와 별 걱정이 없었지만 이후 연체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연체가 장기화되면서 체납액은 수 십만원으로 불어났고 판매업자는 연락을 피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직도 1년 이상 계약기간이 남은 김 씨가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통신요금과 이자환급금이 무려 200~300만 원에 달하고 있다.
최근 몇년 새 텔레마케팅 및 방문판매를 통해 무료 통화권을 미끼로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를 판매하는 사기성 판매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에 올들어 접수된 피해 상담건만 해도 10월까지 34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33건을 이미 넘어섰다.
이들이 판매하는 내비게이션은 무료 통화권을 빙자한 유사 사기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내비게이션 구입가가 300만~400만 원이 넘는다는 것이 비상식적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무료 통화권 지급을 빌미로 남는 장사라는 인식을 심어 소비자를 현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료로 내비게이션을 증정하면서 수 백만 원 상당의 통화권을 구입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어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불러 일으켜 피해를 조장하기도 한다.
◆ 수 백만원대 '무료 통화권' 소진하려면 8년 넘는 시간 걸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계약'이지만 이처럼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데는 '무료 제공'이라는 함정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 과정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봐도 소비자가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금새 알 수 있다.
내비게이션을 무료 증정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수 백만 원 상당의 통화권은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최근 휴대전화가 대부분 스마트폰이다보니 일반적으로 통화요금보다 데이터 사용 요금의 비중이 크게 높다. 따라서 평균 2~3만 원 남짓 나오는 통화요금을 구입한 통화권으로 메우기 위해선 8~9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가입 통신사에서 '자동 차감'되는 것이 아니라 매 달 판매업자를 거쳐야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판매자와 연락이 끊어지는 순간 통화권은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반대로 무료 통화권을 받는 조건으로 수 백만 원을 들여 내비게이션을 구입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내비게이션의 성능이 좋지 못해 제대로 사용조차 못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상습적인 고장으로 반품이나 환불을 요구해도 이미 사용한 무료 통화권을 빌미로 구입가 환급을 거부하거나 과도한 금액을 내고 기기를 매입하라는 무리한 요구로 발을 묶는 경우가 태반이다.
◆ 현금 결제 유도로 지급정지 신청 차단...구매 않는 것이 최선
뒤늦게라도 불공정한 계약이란 사실을 알게 돼 중도해지를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결제금액이 최대 수 백만원에 달하지만 카드보단 현금 결제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는 추후 잔여 금액에 대해 지급정지 신청을 할 수 있는 항변권 사용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수 백만원을 현금으로 납부하는데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에게는 분할 납부를 제공하기도 한다. 거래 내역을 의심하는 고객에겐 휴대전화 통화료 수 년치를 미리 내는 것일뿐 남는 장사라는 점을 강조하는 특징도 있다.
실제로 표면적인 계약 내용만 따지자면 위법 요소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판매업자들이 대부분 사업자등록된 상태이고 카드론을 이용한 대금 납부와 같이 수법이 다양해 허점을 찾기 쉽지 않다.
따라서 무료 내비게이션을 빌미로 한 이 같은 방문판매 피해는 소비자가 접촉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아무리 무료 통화권을 지급한다하더라도 내비게이션을 300만 원이 넘는 금액에 구입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면서 "통화권 역시 사용 불가능하거나, 사용하더라도 복잡한 절차에 얽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통화권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관련 피해를 전부 사기피해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중국 등지에서 국내 거주자 개인정보를 입수한 뒤 텔레마케터를 다수 고용해 사기 피해를 조장하는 등 피해 규모가 커지는 양상이어서 관련 당국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