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도 없이 숨어버린 5만원 권...은행에서 배급주듯

2014-02-11     윤주애 기자

서울 구로동의 오모씨는 지난 4일 회사 근처 은행에서 1천만 원을 5만원권으로 출금하려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처음 방문한 기업은행에서는 1천만 원의 절반인 500만 원(5만원권 100장)만 출금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머지 500만 원을 우리은행 계좌에 이체하고 영업점을 찾았지만 100만 원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시중에서 5만원권이 품귀현상을 일으키면서 은행마다 1인당 출금가능금액을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오 씨는 "한국은행에서 지침이 내려와서 개인 고객들에게 드릴 수 있는 금액이 한정돼 있다고 하는데, 통장에 돈이 있는데도 필요한 사람이 은행을 돌아다니며 5만원권으로 찾아야 했다"며 "은행업무 때문에 다른 업무는 보지도  못하고 시간 날리면서 수수료를 물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왼쪽 상단에서 시계방향)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KEB외환은행, 우리은행


5만원 권 지폐를 만지는게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5만원 권의 시중 유통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은행 등 일선 영업점포들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  소비자들이 발품을 팔아가면서 지폐를 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씨와 같은 불만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5만원권의 회수율이 크게 떨어졌지만 한국은행에서 발권량을 늘리지 않아 일선 영업점들이  애로를 겪고 있다는 것.

특히 설 연휴 등 명절 전에는 5만원권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고, 명절이 끝난 뒤 은행 등에 회수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품귀현상이 더 심화된다고.

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 특성상 공단 등 사업장 인근에 영업점이 집중되면서 현금 입금고객보다 출금하는 수요가 많다"며 "1인당 5만원 출금가능금액을 제한하지 않지만 영업점의 규모나 그날그날의 수급상황에 따라 공급량이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과거보다 한국은행으로부터 각 은행별로 배분되는 5만원권 규모가 감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다보니 은행에 방문하기 전 출금가능규모 등을 타진하지 않을 경우 고액을 5만원권으로 모두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농협 등 국내 주요 은행의 5만원권 지급여력을 조사한 결과 은행 대부분이 고액을 일시에 출금하는데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포별로 그날그날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은행 등은 5만원권 출금규모가 1인당 수백만 원 정도인 반면, (재래)시장 등  현금입금 수요가 많은 지역에 영업점을 갖고 있는  농협은행 등은 1천만~2천만 원 등으로 규모가 컸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신한은행 점포 관계자는 "지금은 5만원권 400장으로 2천만 원을 출금할 수 있지만, 5만원권 보유상황에 따라 출금가능금액이 늘거나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 강서구의 한 농협은행 점포에서는 "영업점마다 현금 보유한도가 다른데 현재로서는 1천만 원에서 1천500만 원까지 5만원권(100~150장)으로 출금이 가능하다"면서 "미리 어느정도 규모로 5만원권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받으면 본점에 보고해 부족한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5만원권은 지난 2009년 6월 한국은행이 처음 발행한 이후 총 40조 원 규모가 시장에 풀렸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회수율은 채 50%에 못미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앞세워 각종 세무조사 등을 강화하면서 5만원권 수요가 크게 늘었고, 거액이 지하로 스며 잠자는 바람에  품귀현상을 빚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2009년 이후 5만원권 환수율이 높아졌다가 낮아진 것은 작년부터"라고 지목했다. 이 관계자는 "5만원권이 계속 유통될 수 있도록 작년에만  순발행규모를 2012년말보다 7조9천억 원이 늘렸으나 품귀가 여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윤주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