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정수기 물 먹었다면, 책임은 이용자? 업체?

물때 낀 취수구 · 벌레 든 수조 등 수질 위생 두고 잦은 갈등

2014-02-13     김건우 기자

악취와 이물 등 정수기 위생 문제가 연일 도마위에 오르면서 관리부실로 인한 책임 주체를 두고 지속적인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정수기 이용자의 대부분이  렌탈이나  주기적인 관리를 받는 시스템이다 보니 '기기의 위생 관리 범위가 어디까지냐'를 두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

위생 문제는 정수기 관련 소비자 피해 중 '렌탈 계약' 다음으로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에 코웨이 청호나이스 동양매직 LG전자 교원L&C 쿠쿠전자 등 지난 해 정수기 위생 관련 접수된 피해제보 건수는 130여건이었다.

계절별로 민원 건수에도 차이가 있었다. 겨울과 가을에 각각 40건과 39건으로 전체 피해의 60%가 집중된 것과 달리 각종 식중독 사고가 빈번한 봄(25건), 여름(26건)에 오히려 각각 피해가 적었다. 

정수물이 여름철 수조에 담겨 있는 시간이 적어 이물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반면 겨울철은 온도가 높은 기기 내부를 찾아드는 벌레 등의 이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위생안전과 직결되는 이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취수관이나 내부 물탱크에 붙어 있는 물때부터 시작해 연결 호스에 축적된 각종 이물질은 물론 수조 속에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들이 소비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문제 발생시마다 업체들은 "재발 방지와 더불어 정수기 관리를 담당하는 점검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피해가 끊이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신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사례1. 취수구에 붙어있는 물때, 플래너 아닌 소비자 탓?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에 사는 김 모(남)씨는 2012년 8월 A사의 얼음정수기를 월 4만 원에 렌탈 계약했다.

하지만 첫 점검 시 취수구에서 물때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해 탱크 스팀세척과 취수구 및 얼음 토출구 세척을 진행했다.

찜찜한 마음에 2달에 한 번씩 오는 플래너에게 물때가 발견된 취수구 및 얼음 토출구 관리를 특별히 부탁했다는 김 씨.

그러나 담당 플래너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잘라말했다. 취수구와 얼음 토출구 세척은 이용자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일반적인 세척방법으로는 위생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김 씨는 제품 반환 및 렌탈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업체 측은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고 위약금을 청구한 상태다.

김 씨는 "취수구와 얼음 토출구는 입으로 물이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곳인데 점검을 못해주겠다니...이런 배짱이 어딨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업체 관계자는 "규정 상 플래너가 2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점검을 하는데 간단한 세척도 포함되고 있다"면서 "평소 사용 시 음식물이 튀어 취수구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경우도 잦아 평소 관리도 중요하다"고 답했다.

#사례2. "녹슨 취수구 코크 물 먹어" vs."주기적으로 교체했어야지"

경기도 안양시 안양6동에 사는 이 모(여)씨는 2년 7개월 전부터 월 1만9천900원을 내고 B사의 정수기를 사용 중이다.

최근 물 맛이 이상하다 여긴 이 씨는 정수기 곳곳을 샅샅히 뒤졌고 온수 취수구 부근이 심하게 녹슬어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업체 측으로 항의하자 "정수기 코크는 녹이 슬기 때문에 4~8개월마다 교체해야함을 계약 시 명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계약 시 관련 내용을 안내 받은 적도 없고 필터 교체를 위한 방문한 정기점검원으로부터도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이 씨. 

실랑이 끝에 해당 지점 측은 새 제품으로의 3년 재계약, B급 제품으로의 교환 그리고 위약금 6만 원을 지불하고 난 뒤 계약 해지 등 3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이 씨는 "6개월짜리 아이도 정수기 물을 먹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울컥한다"면서 "설사 계약 당시 단서에 있었다손쳐도 정기점검 시 방치해둔 업체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 수질 위생 문제도 하드웨어적 AS 기준과 동일 적용

정수기 수질 위생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업체들의 공통된 주장은 '주기적인 필터 교체 및 점검원에 의한 관리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지만 연간 100건 이상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소비자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수질 오염이나 이물의 경우 인체에 위해를 미칠 수있는 심각한 사안이지만 피해구제 기준이 기기 오작동이나 그 밖의 하자 발생 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업체 측은 개별 사용자별로 체감하는 개인차가 커 별도의 AS규정을 운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위생 관련 민감한 이슈가 발생하면 고객만족(CS)팀에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면서 "이물질이나 물 맛, 냄새 등은 개인별로 천지차이여서 객관적인 규정을 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대한 소비자 입장에서 원만한 해결을 유도하려고 하지만 같은 증상을 놓고 의견 충돌이 잦은 것이 위생 문제여서 곤란할 때가 많다는 것.

게다가 렌탈 계약 시 사용자가 해야 할 위생 관련 주의사항을 미리 안내하고 있지만 설치 환경도 이물 발생에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 업체들만 집중 포화를 받는 것이 지나친 부담이라고 항변했다.

예를 들어 장기간 집을 비우고 난 뒤에 정수기 수조의 물을 비우는 것은 기본사항이지만 사용자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 오염된 경우에도 100% 업체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소비자들은 "정수기는 식수를 취급하는 기기인만큼 필터 등의 주기적인 관리를 받는 것 역시 안전한 물을 먹고자 함인데 돈이 되는 필터교체 서비스는 챙기고 기타 위생 관리는 이용자 몫이라며 뒷전으로 미뤄두는 무책임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같은 분쟁이 벌어진 경우 업체 측이나 사설 기관의 수질 검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지만 검사 의뢰 주체를 놓고 다시금 갈등으로 이어져 정수기 위생 문제는 끊이지 않는 분쟁 요소로 남겨져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