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가전 등 부품 의무 보유 기간 '있으나마나'
4~8년 설정기간 있지만 지키는 곳 거의 없어... '쥐꼬리' 감가상각 보상으로 땡
잔고장 하나만 있어도 제품을 사용할 수 없는 생활가전이나 IT기기, 자동차 등의 부품 수급 문제가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하자가 발생했지만 부품이 없어 제품 수리를 못하는 소비자에게 감가상각해 보상금을 지급하거나 할인 쿠폰을 쥐어줘 신제품을 구입을 유도하고 있는 것.
제품군 별로 제조사가 부품을 의무 보유해야 하는 기간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제조사들이 감가상각을 통한 보상을 대부분 선호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구입가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자동차의 경우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부품이 없다는 이유로 수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감가상각 보상을 두고 갈등이 깊어지기 일쑤다.
# 사례 1.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에 사는 배 모(남)씨는 작년 1월 아이리버 '도넛 스피커'를 7만 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4개월 뒤부터 전원이 켜지지 않았고 해외에 체류한터라 배 씨는 최근 국내에 들어와 AS센터부터 찾았다. 하지만 무상보증기간 1년이 지났고 부품도 없어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안내에 당황한 배 씨. 업체 측은 스피커는 소모품이라 수리로 어렵다고 할인권을 쥐어주며 신제품 재구입을 안내했다. 그는 "부품 수급 없이 업체 편의대로 할인권만 주고 생색내면 끝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이리버 관계자는 "현재 단종된 모델이어서 부품을 구할 수 없어 할인가로 신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고 답했다.
# 사례 2. 부산에 거주하는 정 모(남)씨는 자신의 '크라이슬러 300C' 차량이 최근 주행 중 시동이 꺼져 AS센터에 입고시켰다. 그러나 교체 부품이 미국 본사로부터 공급 중단돼 당분간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후 한 달 넘게 대기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고장 이후 지금까지 대차 서비스는 불가능했고 대신 타고 다닌 렌터카 비용도 물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부품 공급이 중단돼 불편을 겪은 소비자를 제조사에선 신경 쓰지 않았다"며 불쾌해했다. 크라이슬러코리아 관계자는 "단종 제품이라 부품 공급이 중단 됐던 것"이라며 "현재 부품 공급이 재개됐고 무상 대차 서비스도 제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IT기기·가전 부품 부족현상 잦아...자동차 낮은 감가율에 소비자 부담 커
부품을 구하기 가장 어려운 제품군은 IT기기다. MP3 플레이어, 스피커, 노트북 등 대부분 제품의 라이프사이클 주기가 빨라 부품 부족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수입 음향기기는 해외 본사에 부품 공급을 요청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그나마 부품 교체보다는 30~40% 수준의 할인 쿠폰을 지급해 신제품을 구입하도록 하는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IT업계에서는교체주기가 빠른 제품 특성상 부품 단종시기가 빨라지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AS 네트워크망이 좁은 중소 업체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이 있다면 수리를 하는 게 원칙이지만 부품 공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에 따라 제품 가격을 감가상각해 보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격이 평균 수 백만원에 달하는 TV, 냉장고와 같은 생활가전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생활가전은 큰 고장이 발생하지 않는 한 소비자들이 대부분 10년 가까이 사용할 수 있을꺼라 기대하지만 중도에 부품이 없어 구입 후 불과 4~5년 만에 제품을 교체해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생활 가전 신제품 가격이 평균 수 백만 원을 호가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업체의 부품 관리 어려움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없다.
대 당 가격이 수 천만원에 달하는 자동차의 경우 부품 공급 중단은 물질적 피해 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안전에도 직결될 수 있어 위험천만하다.
특히 수입차는 국내에 생산공장이 없어 국내 AS센터에 부품 재고가 없으면 해외 본사로 요청해 수급 받거나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면 차량을 그냥 버려야 하는 황당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대다수 모델의 무상보증기간이 종료되는 3년이 지나면 자동차의 잔존가치(감가율)가 크게 떨어져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거금을 들여 새 차를 구입해야 한다.
◆ 감가상각 보상, 또 다른 '판매수단' 비판도
소비자들이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각 제품군별로 부품 보유기간이 지정돼있다. 기준은 '제조사가 해당 제품을 단종시킨 날짜'로부터 적용된다.
가장 많은 불만이 쏟아지는 TV와 냉장고는 8년이고 계절용 가전인 에어컨은 7년, 제품 회전이 가장 빠르다는 PC·노트북으로 대표되는 IT기기는 일반적으로 4년이다.
자동차 역시 부품보유기간이 8년이어서 규정대로라면 부품이 없어 수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발생하기 희박하다.
하지만 제조사 입장에서는 무상보증기간 이후 부품이 없어 수리가 불가능하더라도 감가상각한 금액에 5% 가산한(자동차는 10%) 보상금만 지불하면 그만이다.
부품보유기간과 감가상각 후 보상이라는 두 가지 조항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유지비용을 들여가며 부품 보유기간을 지키는 것보다 보상금으로 소비자와 합의를 보는 것이 제조사 입장에서 더 이득이기 때문.
게다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종전에 사용한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사용하는 경향이 짙고 보상구매 시 가격할인 등으로 같은 같은 제조사 제품을 구입을 유도하는 터라 되레 판촉수단이 된다는 비난 역시 높다.
특히 부품보유기간과 감가상각을 통한 보상 규정 모두 강제성이 없는 소비자 분쟁해결기준에 속해 이를 법제화 함으로서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두 조항 모두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상 권고 사항에 불과해 강제성이 없고 부품 보유기간 법제화와 같은 보완책은 아직 마련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