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블랙박스 믿었지만, 정작 사고나면 먹통
사고 충격으로 영상녹화 안되는 경우 빈번...정기적 포맷 등 관리 필요
차량 사고 발생시 목격자 역할을 하는 블랙박스가 정작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빈번해 논란이 일고 있다.
블랙박스 녹화 영상이 사고 해결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어 장착 차량의 경우 보험료까지 3~5%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정작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상당수 블랙박스 제조사들이 '사고 충격으로 메모리가 파손돼도 영상을 보존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하고 있지만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충격으로 인해 정작 필요한 사고분 녹화만 누락돼 이용자와 제조사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영상분이 누락되고서야 제조사 측은 블랙박스는 차량 보조장치로 '만물 박사'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모든 상황에서 '목격자'가 될 것처럼 떠벌리는 광고를 보고 블랙박스를 구입한 운전자들에게 남는 건 배신감과 허탈감 뿐이다.
#사례1. 대구 수성구 매호동에 사는 박 모(남)씨는 지난 2일 직장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 앞범퍼가 손상된 걸 발견했다. 다행히 동료의 신고로 흠집을 낸 운전자를 찾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사고 장면이 궁금해 메모리칩을 빼 영상을 확인하려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사고 전후 상황만 녹화분이 없었다. AS센터에 문의한 결과 기기에 문제가 있어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이었다. 그는 "만약 흠입을 낸 운전자가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다면 보상을 받지 못할 뻔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례2.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사는 김 모(남)씨는 어린이날 연휴에 도로에서 접촉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실제 부딪혔는지 확인조차 애매할 정도로 충격은 미미했고 수리비도 많이 나오지 않아 상대방 운전자와 합의를 보기로 했다. 보험사로부터 블랙박스 영상을 요구받아 메모리 카드를 살폈지만 사고 당시 전후 영상은 온데간데 없었다. 김 씨는 "작은 충격에도 먹통이 되는 블랙박스를 사고 증거용으로 믿고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아니냐"며 씁쓸해 했다.
◆ 제조사 "블랙박스는 보조장치, 사고 시 녹화 누락돼도 법적 책임 없어"
이같은 블랙박스 피해 사례에 대해 제조사들은 차량 사고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어떤 법적 책임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블랙박스는 '차량 보조장치'로 분류돼 운전을 도와주는 역할이며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어 이용자들에게 매뉴얼을 통해 고지 의무도 다하고 있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블랙박스는 주행영상을 기록하는 보조장치로서 주행이나 설치 환경에 따라 기능 중 일부 지원이 불가능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참고용으로만 확인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되지 않는 원인 역시 '충격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블랙박스는 정기적으로 메모리 포맷을 하는 등 운전자의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제품"이라면서 "사고 당시의 상황도 고려치 않고 무조건 블랙박스가 약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내구성 강화를 위해 출시 전 100여 가지가 넘는 내구성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만 판매할 수 있어 정상적인 주행 환경에서는 하자가 발생할 수 없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업체 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차량에 장착한 상태에서 충돌 시험을 통해 실제 주행시 발생할 수 있는 하자를 보완하고 낙하 시험으로 제품 자체의 내구성 역시 보완해 제품을 내놓고 있다는 주장이다.
◆ '만능 해결사'는 광고 이미지일 뿐? 피해 예방법은...
하지만 소비자들이 광고를 비롯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하게 되는 블랙박스의 이미지는 사고 발생시에도 운전자를 한결같이 지켜주는 '만능 해결사'처럼 비춰진다.
실제로 많은 운전자들은 비행기 블랙박스처럼 큰 충격에도 사고 현장에 대한 기록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블랙박스를 가장 최적의 상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주의가 필요할까?
우선 블랙박스의 녹화량이 상당하는 점을 감안해 주기적으로 기록을 지워주는 '포맷'을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해주는 것이 좋다. 메모리 오류로 정상적인 녹화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메모리 카드를 분리해 PC에서 직접 포맷을 해야 했지만 최근 출시되는 제품 대부분은 장착 상태에서 버튼 하나로 간단히 작업할 수 있다.
사고 발생 직후 곧바로 충돌 장면을 확보해 두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
충격이 발생하면 대부분 충돌 전후 20~30초가 담긴 영상을 별도 폴더에 저장하는 '이벤트 녹화' 기능이 있지만 메모리 용량에 따라 빠르면 하루 이틀안에 사라질 수 있어 되도록 사고 직후 1시간 이내에 메모리카드에서 녹화 파일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컨슈머리서치 최현숙 대표는 "블랙박스를 장착하지 않은 차량이 드물 정도로 사용자들이 많지만 제품별 기능 등을 제대로 모르고 맹신하다가 곤욕스러운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업체들 역시 이와 같은 변수를 사전에 적극적으로 고지해 소비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