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법' 있다

2014-09-25     백진주 기자

최근 온라인에서는 인기 연예인들에 관한 진실 논쟁이 뜨겁다.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이병헌의 성희롱 사건과 한류의 주인공이자 아이돌 출신 김현중의 폭력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진실 여부를 두고 연일 관련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50억 협박 사건’을 전면 대응하겠다던 이병헌의 당당함은 경찰이 밝힌 동영상 안의 음담패설 내용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초라해졌다.

김현중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에는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갈비뼈가 골절되는 몸싸움을 두고 ‘장난’이었다던 그의 말은 전 여자 친구가 상해진단서를 공개하면서 신뢰를 잃게 됐다.

진실의 향방이 어느 쪽으로 더 기울었던 간에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두 사람이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에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설득력 없는 핑계로 일관하거나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양 위장해 사태를 진압하려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장난이었을 뿐 지속적인 폭력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던 김현중은 뒤늦게 사과문을 통해 남자로써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며 사과했다. 폭력을 인정할 수 없다던 그가 돌연 사과한 이후 밝힌 “전 여자친구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었다”는 사과문 작성 이유도 코웃음이 난다.

그의 말에 조금이라도 진심이 있다면 애초에 '장난' 운운하는 변명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병헌의 친필 사과문은 한술 더 뜬다.

‘계획적인 일이었건, 협박을 당했건, 그것을 탓하기 이전에 빌미는 덕이 부족한 저의 경솔함으로부터 시작’이라는 그의 사과문을 보노라면 성희롱 발언에 대한 자기반성보다는 운이 나빠 못쓸 작당을 한 꽃뱀(?)들에게 발목을 잡힐만한 여지를 둔 것에 대한 후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덕이 부족한 경솔함에 대한 반성이 아닌, 해서는 안 될 성희롱 발언에 대한 인정과 사과가 먼저다.

두 사람에게 느낀 여론의 실망과 배신감이 도무지 진심이 읽혀지지 않는 사과문 때문에 더 깊어졌단 생각을 접기 어렵다.

그들이 지금껏 만들어온 이미지와 상반된 사건에 대한 실망감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사건 직후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사과했다면 어쩌면 상해진단서, 동영상 속 음담패설의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잘못된 일을 두고 가식적인 사과의 형태만을 갖춰 은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눈만 가려서 해결될 일이 아닌 이상 처음부터 잘못된 부분은 제대로 인정하고 풀어갔어야 한다는 의미다.

소비자 민원을 접하다보면 물질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응당 받아야 할 대가의 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업체 측의 진심어린 사과의 말과 태도다. 아무런 감정 없이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기계적인 응대에 되레 없던 화가 솟구치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어린 아이가 먹은 식품에서 위해가 될 만한 이물이 발견됐음에도 이물 유입 과정이나 성분에 대한 명확한 설명 없이 “제조단계에서 나올 수 없고 인체에는 무해하니 환불을 받으라”는 식의 매뉴얼적인 대응을 참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이의 상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공감하는 담당자의 태도가 없다면 부모의 화가 누그러지긴 어렵다.

피해를 겪은 상대에 대한 공감이나 문제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개선책 없이 그저 “죄송합니다”, “앞으로 개선하겠습니다”, “규정이 이러하니 양해바랍니다”는 말에서 진심을 읽어낼 재간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선 많은 수단과 방법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두툼한 봉투일수도, 또 다른 이에겐 내 마음을 모두 알아줄 것만 같은 경청과 따뜻한 말일 수도 있다.

최근 아픈 개인사를 겪은 필자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는 지인들의 눈빛과 체온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위로를 받았다.

걱정과 격려가 담긴 ‘진심’을 느끼는 데는 한마디 말조차 필요치 않을 때가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백진주 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