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 신차 교환 못 받는 이유?...법적으로 '권고'일 뿐

규정 까다로운데다 '권고'에 그쳐...제조사 면책 여지 많아

2015-11-09     김건우 기자

#사례1 경기도 고양에 사는 안 모(남)씨는 작년 11월 폭스바겐 골프 2.0 TDI를 장만했다. 하지만 구입 후부터 잔고장이 자주 발생해 난감했다고. 주행거리 31km 상태에서 전자계통 시스템 오류가 나는가하면 고속도로에서 시동이 꺼지기도 했다. 지속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제조사와 딜러사는 서로 책임을 미루기만할 뿐 차량 교환은 언감생심이었다. 안 씨는 "구입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주요 하자만 수차례다. 불안해서 차량을 탈 수 없다"고 난감해했다.

#사례2 경기도 안양에 사는 정 모(남)씨는 지난 7월 기아자동차 올 뉴 쏘렌토를 구입했다. 하지만 출고 2일 만에 주행 도중 시동이 꺼져 직영 사업소에 입고시켰고 점검 결과 미션 이상이었다. 신차 교환을 요구하자 제조사는 1개월 내 2번 이상 같은 증상이 있어야 한다며 교환을 거부했다. 정 씨는 "출고 2일 된 차량 미션을 내리는 수리를 해야한다는데 누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냐"며 답답해했다.

구입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신차에서 결함이 반복 발생하더라도 사실상 차량 교환·환불이 불가능하자 소비자들이 제도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 관련 규정이 존재하지만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권고' 사항에 그쳐 자동차 제조사들이 면책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 핵심이다.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도 매 년 100여 건 이상의 '자동차 반복 결함에 따른 교환 및 환불' 관련 민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제조사로부터 합당한 조치를 받은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올해도 50여 건 이상의 유사 사례가 접수됐다.

◆ 소비자 민원 해결 수치 사실상 제로 수준...제조사들 "민원 적극적 해결 중" 반박

소비자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자동차에 심각한 결함이 반복적으로 발견되더라도 제조사가 다양한 이유를 들어가며 교환이나 환불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 출고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신차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폭스바겐 사태로 돌아본 소비자 정책 토론회'에서는 흥미로운 통계 하나가 공개됐다.

올 6월까지 1318소비자상담센터에 신고된 차량 하자·결함관련 소비자 제보 655건 중 단 7건만 제조사에서 소비자의 의사대로 수용됐다는 조사 결과였다. 제보 중 수리가 274건(41.8%)으로 가장 많았고 교환이 154건(23.5%) 보상 140건(21.4%)순이었다.

토론회에 참여한 오길영 신경대 교수는 "차량 결함 및 하자에 대해 소비자들이 무조건 환불이나 교환만 요구할 것 같지만 실제로 수리를 요구하는 소비자가 가장 많았다. '블랙 컨슈머'형 소비자가 아니라는 입증결과"라고 주장했다.

특히 차량 하자를 주장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제조사 반응 중 무려 77.1%인 509건이 '무응답'이라는 조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됐다. 규정상으로도 보호 받기 어려울뿐더러 불만을 호소해도 제조사가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 차량 하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위)과 이에 대한 국산차 제조사들의 응답여부.(단위: 건)

반면 완성차 업계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비롯한 현행 체계에서도 자율적으로 소비자 불만에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분쟁해결기준의 '법적 강제성' 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자율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국내 완성차 5개 사의 자료를 종합한 결과 지난해 총 828대가 교환 및 환불조치됐다고 밝혔다. 제조사에 접수된 민원 건에 대해 충분히 적절한 조치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자동차산업협회 차남진 팀장은 "소비자 분쟁해결기준이 미흡하다는 것은 법적 강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수리 후 하자 및 결함이 잘 나타나지 않는 특성, 결함 원인 규명이 명확하지 않아 생기는 논란이다"고 주장했다.

◆ 제조사들 "한국형 레몬법? 제도 보완이 적절"...추상적 내용에 그쳐

완성차 업계는 '한국형 레몬법'같은 강력한 수단보다는 현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입장이다.

레몬법은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제정된 자동차관련 소비자 보호법으로 신차 구입 후 1만8천마일(약 2만9천km)또는 18개월이 되기 전 안전과 관련 고장으로 2번 이상, 일반 고장으로 4번 이상 수리를 받게되면 보상을 해주는 제도다. 소비자는 차량 구입비용 환불, 신차로의 교환 또는 고장으로 인한 불편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국내 소비자분쟁해결기준 역시 차량 인도 후 1개월 간 주행 및 안전도 관련 중대결함 2회 이상 또는 차령 12개월 내 주행 및 안전도 관련 중대결함 3회 발생 후 재발하면 차량 교환 또는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중대결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결함 사례별로 해석하기 나름이고 결국 소비자가 결함을 스스로 입증해야 해 소비자에게 불리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대림대학교 김필수 교수는 "법적 체계나 관련 제도의 경우 자동차는 소비자가 보호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면서 "신차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조사의 무상 보증서비스 외에는 보호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결함 인정 기준을 '증상'이 아닌 '부품'에 두고 있어 예를 들어 '시동꺼짐'이라는 증상이 보증기간 내 4회 이상 발생해도 서로 다른 부품의 문제로 시동이 꺼진다면 교환 혹은 환불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학계와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미국의 '레몬법'에 준하는 강력한 제도 신설을 요구하고 있지만 제조사들은 현행 제도의 개선 위주의 보완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분쟁 발생 시 판단을 내릴 수있는 명확한 유권해석 등을 마련하자는 게 주요 골자지만 추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 구체적인 결론은 없는 상태다.

컨슈머리서치 최현숙 대표는 "반복 하자에 시달리는 고가 벤츠 차량을 골프채로 파손할 만큼 자동차 결함에 소비자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면서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부분들은 적극 개선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