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후판값 20% 인하" 요구...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깊은 한숨

2015-11-17     김국헌 기자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주요 철강업체들이 후판 가격 폭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조선사들의 가격인하 요구로 고민에 빠졌다.

최대 수요처인 조선업체들이 최악의 적자사태로 구매력을 상실한 가운데 중국산 후판의 공급과잉까지 겹쳐 가격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후판은 배에 들어가는 핵심소재다. 선박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배 한척을 건조할 때 후판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내외에 달하며, 한 척의 초대형 유조선을 만드는 데 약 3만5천톤의 후판이 사용된다.

현재 국내 철강업체들은 조선사들과 4분기 후판가격을 협상 중이지만 칼자루를 빼앗긴 상태다.

조선사들은 톤당 20% 수준의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은 150만톤에 달하는 물량을 공동구매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 중이다. 값을 더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조선용 후판가격은 60만 원대인 데 비해 중국산 후판은 400달러 수준이어서 국내 철강업체들은 지속적으로 가격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불과 7, 8년 전만해도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후판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셈이다.

리만브라더스 사태 직전인 지난 2008년 조선용 후판은 공급이 달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고 포스코,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업체들은 톤당 140만 원 대까지 후판가격을 인상했다.

조선업이 최고 호황기였던 2007~2008년 국내 후판 수요는 1000만톤 수준이었으나 생산능력은 600만톤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은 앞다퉈 후판 생산설비 확장에 나섰다.

문제는 국내 철강업체들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까지 대규모 후판 증설에 나섰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철강업계의 현재 후판 생산능력은 1100만톤에 달하지만 수요는 800만톤 수준에 불과하다. 올해 기준 중국의 후판 생산능력은 1억3000만톤으로 10년 전에 비해 10배나 늘어났다.

조선산업이 침체에 빠진 가운데 중국의 과도한 후판 설비투자는 전세계 후판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시켰다. 완전가동을 통한 밀어내기식 수출로 전세계 후판 가격을 크게 떨어뜨렸다.

2008년 톤당 140만 원을 넘었던 국내 조선용 후판가격은 올해들어 톤당 60만 원 대로 추락했다. 국제 후판 가격은 톤당 400달러(중국산, SS400, CFR 기준)내외에 불과하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업체들은 후판을 팔아 수익을 내기가 불가능한 지경에 몰렸다. 동국제강은 연간 생산능력 180만톤의 당진 제2후판 공장을 폐쇄하고 매각처를 찾는 중이다.

철강업계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후판 시장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양플랜트에서 대규모 손실이 반영되며 국내 대형 조선3사의 올해 적자규모만 10조 원이 넘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유가하락이 지속되면서 해양플랜트와 LNG,LPG선 등의 발주 감소로 조선용 후판수요도 위축될 전망이다.

중국의 기술발전 속도도 위협적이다. 중국 철강사들은 TMCP강 같은 고급강도 척척 생산해내고 있어 국내 업체들의 입지를 빠르게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불황과 공급과잉으로 후판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고, 전세계 후판 공급과잉이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중국의 추격 속도도 빨라 후판 사업 자체를 축소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