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회의 말로만 소비자 보호,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내팽개치고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민원처리 인력 규모는 충격적이다. 민원처리 인력이 2011년 74명에서 올해 72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72명이 연간 처리하는 민원건수는 약 7만9천건, 하루 평균 4.5건을 소화했다. 실제 근무일수로 계산하면 처리건수가 배 이상 될 것 같다.
금감원은 또 모든 민원을 선입선출에 따라 처리하면서 평균 처리기간이 2011년 32.2일에서 지난해 42.4일로 길어졌다고 밝혔다. 민원실에서 조사한 민원만족도는 2012년 상반기 71.6점에서 지난해 61.6점으로 9.9점 하락했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사태로 사회적 파장이 크던 2012년 5월 금융소비자와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금융소비자보호처(이하 금소처)를 출범시켰다. 금소처가 출범한 지도 3년이 넘었지만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수년째 민원처리 인력이 70명대에 그친 것은 금감원 내부에서도 금소처, 특히 민원 담당 파트는 한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민원이나 분쟁을 처리해도 생색을 내기는 커녕 하루하루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기 일쑤다. 금융소비자 기본법이 제정되지 않아 인력 운용도 자유롭지 않다. 금감원은 기획 및 예산을 금융위원회와 금융회사들에 의존하고 있다.
금감원이 최근 민원.분쟁 처리속도를 높이고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내년 상반기 신속처리반과 특별조사팀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정작 인력을 어디에 얼마나 배치할 지, 또 신규 인력은 얼마나 충원할지 밝히지 못했다. 아직 내년 예산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감원 뿐 아니라 금융위원회,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 담당 부서에선 국회만 바라 보고 있다.
2012년 7월 정부가 제안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은 3년 넘게 계류 중이다. 이 법은 금융상품을 판매하는데 있어 금융회사의 책임을 무겁게 묻고 있다. 분쟁 등에 대한 과실 입증 책임을 금융회사에 부과했다. 현행법에선 금융상품과 관련해 분쟁이 발생했을 때 피해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없어서, 금융감독원이 정부 기관이 아니어서 등의 이유로 금감원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처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으니 민간 금융회사들도 손을 놓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법이 제정되면 당장은 회사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중장기적으로 하나의 틀이 마련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1월17일부터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을 포함해 78건이 상정됐지만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다가 계속 심사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던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가 사실상 좌초된 가운데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도 폐지 수순을 밟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는 금융개혁을 외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에 총력을 다해줬으면 한다. 더 이상 국회의 밥그릇 싸움에 기본법 제정이 뒤로 밀려선 안된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윤주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