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산업 황사②] 짝퉁에서 첨단 전기차까지 무서운 질주...대책은 '차별화'
한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던 주력 업종들이 중국 기업의 무차별 공습에 휘청거리고 있다. 철강, 자동차, 디스플레이, 전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황사'가 덮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기업의 과잉생산으로 무한 가격 경쟁에 내몰리거나, 시장에서 점유율 하락으로 선두 기업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급기야 정부가 나서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외칠 정도로 위기에 몰린 국내 산업계의 돌파구는 무엇인지 시리즈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중국에 가면 랜드로버사의 인기 SUV인 레인지로버를 도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차 모양은 레인지로버와 똑같은데 차에는 랜드 윈드(Land wind)라는 마크가 선명히 박혀있다. 수없이 많은 레인지 로버들이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지만 실상은 중국 로컬 제조사인 랜드 윈드사가 만든 짝퉁 자동차다. 랜드 윈드는 레인지 로버와 라디에타 그릴만 조금 다를 뿐 많은 부분을 복사했다.
자동차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판매국으로 떠오른 중국에서 일반 차량의 판매증가는 정체상태지만 SUV 차량은 매년 30%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SUV는 레인지 로버다.
랜드 윈드가 만드는 '짝퉁' 레인지 로버의 가격은 한화로 약 2천500만 원 수준으로 진짜 레인지 로버에 비해 4분의 1이다.
소위 '짝퉁 왕국'이란 소리를 듣는 중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남의 것을 베끼며 자동차산업을 눈부시게 발전시켜왔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기술축적이 되면서 그럴 듯한 자체 모델까지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4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11일간 베이징 국제전람센터에서 열린 ‘2016 베이징모터쇼’에서 중국은 신기술로 무장한 첨단 친환경 자동차들을 선보이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동차 선진국들만 만들 수 있다는 전기차와 스마트카를 대거 선보였는데 비야디(BYD·比亞迪)는 7종류의 전기자동차를 출품했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전기차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20만 대가 넘으며 2020년까지 연간 전기차 생산능력을 200만 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중국 토종 자동차회사인 창안자동차(長安汽車)는 자기들이 만든 대표 중형 세단 루이청(Raeton)이 약 2천km를 사고없이 자율 주행하는데 성공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동차업계의 기술성장세가 놀랍다"며 "과거 자동차 베끼기에만 급급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첨단 친환경 차들을 내보이고 있는데 기술력이 검증된다면 시장점유율이 지금보다 훨신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얼마 전 포스코경영연구소는 중장기 중국 자동차산업의 지속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부 로컬업체들이 미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판매량은 1천730만6천여 대로 3년 전 대비 판매량이 400만대나 증가했다. 중국 업체들 중 판매량 1위인 상하이자동차(SAIC)는 지난해 590만2천여 대를 팔아 세계 시장 점유율 6.4%를 기록하며, 788만 대를 팔아 세계시장 점유율 8.5%(세계 5위)를 기록한 현대기아차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둥펑자동차는 3.1%, 창안차는 3%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성장 때문에 현대기아차의 중국내 시장점유율은 계속 축소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내 시장점유율은 9.2%로 전년동기 대비 0.8%포인트 줄었다. 현대·기아차의 1∼4월 중국시장 누적 판매 대수는 51만5천698대로, 전년동기대비 12.1% 감소했다. 1∼4월 점유율은 7.7%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 로컬업체들의 4월 내수시장 점유율은 32.2%를 기록했다.
한국 자동차업체들은 일본 업체를 경쟁 상대로 삼아왔지만 최근 들어선 ‘주적’이 중국 업체로 바뀌고 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차별화'로 승부를 걸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로컬업체들의 공세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단기적으로는 올해 적극적인 신차 출시로 시장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중국의 친환경차 정책에 발맞춰 쏘나타 하이브리드, K5 하이브리드 등의 차종도 현지양산해 나갈 계획이다.
또 딜러 시설 표준화, 딜러 교육 강화 등을 통해 핵심딜러를 양성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베이징과 옌청 2곳인 승용차 생산거점을 허베이와 충칭 등 4곳으로 확대하는 설비투자도 지속하고 있다. 2018년 중국 현지 생산능력은 현재 210만대 수준에서 현대차 180만 대, 기아차 90만 대 등 총 270만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보다 장기적으로 현대기아차는 R&D 투자를 대폭 확대해 기술 혁신을 주도할 생각이다. 각국의 안전과 환경 규제 강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정보통신과 전자 기술이 융합한 미래 기술 개발 역량을 더욱 강화해 친환경차 개발에 몰두하는 한편, 자동차를 제2의 주거공간으로 확정해 나갈 계획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한국 자동차업체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가격 면에서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보다 저렴하고, 품질 면에서는 중국 로컬 브랜드들을 압도하는 양면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독창적인 디자인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밴틀러 디자인 총괄 출신인 이상엽 씨를 현대디자인센터 스타일링 상무로 영입하기도 했는데 제네시스 브랜드만의 디자인 정체성 마련으로 중국 자동차와의 디자인 차별화가 기대된다.
짝퉁으로 시작한 중국 자동차업계의 추격은 크나큰 부담거리이자 도전이다. 국내 자동차사들의 차별화 전략이 이를 뿌리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