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채무면제유예상품 보상 문턱 턱없이 높아

'치명적'조건 충족해야 ..일부 카드사 가입 중단

2016-08-01     김건우 기자

# 서울 서초구에 사는 이 모(남)씨는 얼마 전 등산 중 위급상황에 빠진 등산객을 구하려다 손등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수술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부상이라 입원을 해야했고 수 년전 가입했던 카드사 '채무면제유예상품'이 기억났다. 상해 시 카드 사용으로 발생한 채무가 유예 또는 면제된다는 내용이 있어 해당여부를 물었지만 불가능했다. 이 씨의 부상이 보장내용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가입할 때는 모든 질병, 사고가 보장될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정작 혜택을 받으려니 깐깐한 기준을 들이대 난감했다"고 답답해했다.

불완전 판매 의혹으로 최근 가입자들의 탈퇴가 이어지고 있는 카드사들의 '채무면제유예상품(DCDS)'이 보장 내용을 놓고 또 다시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가입 당시 마치 보험상품처럼 모든 질병 또는 상해 발생 시 채무를 면제 또는 유예 시켜줄 것처럼 안내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심각한 상해 또는 피해를 입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5월 카드사들에게 불완전 판매가 확인된 고객 중 수수료를 환급받지 못한 고객에게 오는 9월까지 잔여 수수료를 지급하라고 지시할 만큼 채무면제유예상품은 불완전 판매가 빈번한 상품 중 하나다.

◆ '치명적 상해'는 어느 정도? 보상 대상 포함되기 쉽지 않아

이 상품에 가입하면 고객은 매월 카드 채무액에서 일정 수수료율을 반영한 수수료를 내야한다. 수수료율은 카드사 또는 상품별로 조금씩 다른데 평균 0.2~0.5% 수준이다.

예를 들어 한 고객이 7월 한 달간 카드 사용금액(채무액)이 100만 원이고 가입한 채무면제유예상품 수수료율이 0.4%이면 7월 수수료는 4천 원이다. 채무액에는 신용카드 할부금, 현금서비스, 카드론을 비롯한 모든 금융서비스 이용금액이 포함된다.

보장 내용도 상품마다 다르다. 표준 상품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도 각 사별 보장 내용이 천지차이다. 기본적으로는 사망시나 치명적 장애(질병) 발생, 자동차 사고발생시 상해 정도에 따라 채무가 일정금액 면제되거나 일정기간 유예된다.

논란은 이 상품이 가장 보편적인 상해까지 보상을 해주는 지 여부다. 제보자 이 씨의 경우 모든 질병과 상해에 대해 보장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확인결과 피해 정도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어야 했다.

예를 들어 각 사별 보장 항목에 공통으로 포함돼있는 '치명적 질병'은 뇌혈관질환, 허혈성 심장질환, 암, 만성신부전증 등 중증 이상의 질병이 해당된다.

보장 내용이 많은 상품의 경우 장기입원, 전치 8주 이상의 교통사고 발생, 소득상실 등 다양한 상황에서 보장 받을 수 있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보장은 받기 어려웠다.

◆ 매 년 수 백억 원 수수료 수익 챙겨...일부 카드사 가입 중단

이처럼 채무면제유예상품의 보상 기준이 중증 질병, 장애, 사망 등 극히 일부분에 해당돼 실제로 보상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채무면제유예상품을 운영 중인 7개 카드사의 순 수수료 수익은 1천910억 원에 달했다. 순 수수료 수익은 수입 수수료에서 보상금 지급리스크 헷지를 위해 보험사에 지급한 금액과 보상금 지급액을 뺀 잔액이다.
현대카드(부회장 정태영)가 466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카드(대표 원기찬) 442억 원, 신한카드(대표 위성호) 357억 원을 비롯해 모든 카드사들이 수 백억 원 상당의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

다만 최근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채무면제유예상품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자 올 들어 채무면제유예상품 가입자 수는 소폭 줄고 있는 양상이다. 올해 1분기 기준 가입자 수는 3천227만 명으로 전 분기 대비 96만 명 줄었다.

일부 카드사들은 불완전 판매에 대한 부담을 느껴 신규 회원을 받지 않고 있다.

BC카드(대표 서준희)와 하나카드(대표 정수진)는 이 달부터 채무면제유예상품에 대한 신규 가입을 받지 않고 있으며 상품 출시를 고려했던 우리카드(대표 유구현)는 사업을 접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