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소비자보다 금융사보호가 '먼저'?

[솜방망이 된 금융사민원평가] 진웅섭 원장 체제서 '블랙컨슈머 방지' 우선

2016-08-29     김정래 기자
금융감독원이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 '금융소비자보호실태평가' 결과 나온 가운데 당초 우려됐던 변별력 약화와 소비자 알권리 축소 등이 현실화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민원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금융사는 이 사실을 영업점에 게시하게 강제하는 등 서슬시퍼렇던 금감원이 진웅섭 원장 체제 하에서 180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기획 시리즈를 통해 기존 민원평가제도에서 금융소비자보호실태평가로 바뀐 금융사평가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그리고 새 제도하에서 각 금융사의 등락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새로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실태평가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가 한 눈에 금융사의 등급을 파악할 수 없게 된 점이다.

과거 민원평가에서는 1에서 5등급까지 명확한 등급이 주어진 반면, 새로운 제도에서는 10개에 달하는 각 항목별 평가가 복잡하게 나열돼 한 눈에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평가등급도 기존 5개에서 현재는 '양호' '보통' '미흡' 3개로 줄어 등급간 변별력이 크게 줄었다.

더 심각한 것은 평가방식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거의 모든 금융사에게 '양호' 아니면 '보통' 등급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미흡' 등급을 받은 금융사가 일부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종합적인 평가가 '미흡'한 수준이 아니라 10개나 되는 항목 중에 일부 항목에 한해 '미흡'을 받았을 뿐이다. 이들 금융사조차도 양호나 보통을 받은 항목이 더 많아서 전체적으로는 '보통' 이상의 등급을 받은 셈이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보호를 잘하는 금융사와 그렇지 못하는 금융사를 명확하게 구분해낼 수 없기 때문에 제재효과가 사라진 '솜방망이' 평가되고 만 셈이다.

실제로 금융소비자보호실태평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개선노력이 요구되는 최하등급의 금융사 숫자가 눈에 띄게 줄면서 일종의 '등급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원장 진웅섭)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은행(13개사), 생명보험(18개사), 손해보험(10개사), 신용카드(7개사), 금융투자(11개사), 저축은행(7개사) 총 6개 권역 66여개 회사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실시해 그 결과를 지난 26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작년 '민원평가제' 대상에 속한 6개 권역 71개사 가운데 최저등급인 5등급을 받은 금융회사는 13개로 18%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는 66개사 가운데 미흡을 1개 항목이라도 받은 금융사는 단 6개사(생보 1개, 손보사 1개, 금융투자회사 2개, 저축은행 2개)로 9%에 불과했다. 기존에는 평가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던 저축은행 2개사를 제외하면 59개사 중 4개사로 그 비중이 6.8%로 크게 낮아진다. 이들 4개사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평균적으로 보통 이상의 등급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평가제도에서는 최하등급이 아예 사라진 거나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실제로 아래표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감독원이 직접 산출한 등급별 부분수 평균치를 보면 은행과 카드는 '양호'가 75% 가량을 차지했고, 나머지 업권은 '양호'와 '보통'이 거의 반반씩 나뉘어 있다. 미흡 평가 항목은 1~2%대에 불과하다. 금융사고가 많고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도 미흡을 받은 항목의 비중은 7%에 불과하다.

특히, 업권별로 봤을 때 은행과 신용카드는 작년과 달리 미흡 항목을 받은 회사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민원평가에서는 은행은 15곳 중 3곳이 5등급을 받았고, 카드는 7곳 중 1개사가 최하등급이어다.

작년 5등급이 6개사나 나왔던 생보는 올해는 1개 항목이라도 '미흡' 등급을 받은 곳은 단 1개사에 불과했다.

작년 5등급이 2개사였던 손보도 올해 단 1곳에 그쳤다. 다만 금융투자회사의 경우 작년 1곳에서 올해 2곳으로 늘었다.
작년 최저등급 받은 기업의 비중과 올해 최저등급이 나온 항목별 비중을 비교해보면 최저등급 비중이 현저히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최저등급인 5등급만 따졌을 경우 은행은 0.2에서 0으로, 카드는 0.14에서 0으로, 생보는 0.3에서 0.1로, 손보는 0.15에서 0.1로 낮아졌다. 금융투자만이 0.06에서0.2로 높아졌다.

평균치 이하인 4, 5등급을 합산했을 경우에는 작년과 올해의 등급별 평균 편차는 더욱 컸다. 은행은 0.33에서 0으로, 카드는 0.28에서 0으로, 생보는 0.35에서 0.1로, 손보는 0.23에서 0.1로 금융투자는 0.5에서 0.2로 낮아졌다. 
▲ 자료: 금융감독원
이는 변경된 '금융소비자보호실태평가'가 5등급으로 나눠 상대적으로 평가하던 기존 '민원평가제' 방식과 달리, 등급을 3단계로(양호, 보통, 미흡)로 축소해 절대평가로 체제로 바뀌면서 하위등급이 상향되는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하위 등급을 받은 금융사들 간의 변별력은 더욱 약화됐다.

이와 함께 금감원이 블랙컨슈머 방지를 위해 '네임 앤드 쉐임(Name&Shame·이름 밝히고 망신주기)' 제도를 없애고 대신 우수회사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조치도 소비자의 알권리 축소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지난 2002년 발표한 최초의 민원평가에서는 금융사별 총자산, 민원건수, 민원발생지수 등을 상세히 공개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대구은행은 총자산 14조 4천293억 원, 단순민원 25건에 민원발생지수 37.8로 은행권 1위를 기록했다. 

금감원은 지난 2014년까지만 해도 민원평가 대상에 포함된 모든 금융사들의 성적을 공개했다. 특히 최하위 5등급을 받은 금융사들의 지점에 '빨간딱지'를 붙이게 해 소비자 권익 향상과 알권리 보호를 최우선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류는 작년 진웅섭 금감원장의 '네임 앤드 쉐임(Name&Shame·이름 밝히고 망신주기)' 제도 폐지 발표 이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작년 금감원은 전체 금융회사 81개사 중 민원발생평가 1등급을 받은 15개 금융회사만 공개하고 나머지 77개 금융사들의 성적은 공개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1등급을 제외한 77개사의 등급을 알기 위해 일일히 각 금융사 홈페이지를 방문해야 했다. 

최하위 5등급 금융회사에게 '빨간딱지' 붙였던 금감원이 한 해 만에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변경된 '금융소비자보호실태평가' 제도 역시 평가 대상 금융회사들이 각사 홈페이지에 결과를 게재하기만 하면 금감원의 제재를 받지 않아, 소비자 보호를 위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실태평가' 취지를 민원건수 위주로 평가하였던 '민원발생평가'와 달리, 각각 5개의 계량항목과 비계량항목 총 10개 부문에 걸쳐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블랙컨슈머 양산을 우려해 민원건수, 민원발생지수 등 세부 정보를 미공개함으로써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 수준과 노력 등을 반영하기 어려운 한계만 분명히 드러냈다.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제도가 '소비자보호'라는 당초의 취지 대신 '블랙컨슈머 예방'을 우선시한 결과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정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