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철근 원산지 표기법 표류...'알권리' 증발
중국산 저가 수입 급증하는데 건설사 반대로 입법 난항
철강재 원산지의무표시제가 건설사들 반대로 입법화되기까지 안개 속을 걷고 있다. 건설사들과 철강재 수입업자들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다.
일부 건축업자들이 시공비를 줄이기 위해 싼 값에 사용하는 수입산 저급 철강재는 민간 건설부문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끊임없이 지목되고 있다.
주로 건축용 자재로 쓰이는 중국산 철근은 올 상반기에만도 64만톤이 수입되며 전년동기보다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중국산 수입 철강재 중에는 연신율(끊어지지 않고 늘어나는 비율)이 미달되거나 원산지 표시를 국내산으로 위조하는 경우도 있다.
정식 KS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면 수입재 사용도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KS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들이 버젓이 수입유통돼 건설현장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9월 국토교통부가 국내 공사현장 162곳을 불시 점검한 결과, 샌드위치 패널과 철근 등 부적합 자재를 사용하다가 적발(부적합 판정) 된 곳이 무려 43곳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철강재 원산지의무료표시제' 개정안 발의...업계 반발에 난항
지난 6월 29일 더민주당 이찬열 의원은 저질 수입산 철근이 유통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철강재 원산지의무표시제'를 포함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건물의 외관이나 별도의 표지판에 사용된 철강재를 기재하여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의식주 중 먹는 것과 입는 것의 원산지는 모두 표시하면서 안전과 직결된 건설은 어떤 자재로 지어졌는지 소비자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최근 한 소비자단체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 철강재의 원산지 표시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에 92.6%의 소비자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이 중 원산지 표시가 필요한 이유로는 절반 이상(65.3%)이 건물 안전을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소비자들은 건설용 강재의 원산지가 쉽게 식별하게 된다면 강재 품질이 향상되고 원산지가 둔갑된 부적합 철강재 유통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입법화까지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건설업계와 철강재 수입업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20대 국회에서 반대의견이 거세 계속 계류돼 있는 상태"라며 "언제 입법화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 건설자재의 원산지 표기 의무화를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이미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건설업계, 국토교통부의 반대에 부딪혀 입법에 실패한 바 있다.
당시 건설업계는 건설현장 또는 완공된 건축물 표지판에 주요 사용자재의 원산지를 명기하는 것이 외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고, 공사 품질 확보와 연계성이 약해 건설현장의 부담과 책임만증가시킬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사 품질이 원인이라면 원산지 표기를 문제삼을게 아니라 정부의 단속과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자재 원가상승은 이면에 숨겨진 가장 큰 반대 사유다.
한국 수입봉형강품질관리협회는 "만약 법안이 통과된다면 국산대비 가격이 15% 이상 저렴하고 국산과 비슷한 품질인 수입철근 사용이 과도하게 제한돼 값비싼 국산 철근 사용이 강요될 수 있으며 국산 가격을 낮게 유인할 수 있는 수입철근의 순기능이 위축돼 소비자의 이익보다 소수 국내 생산자의 이익만 증대시켜 주게 될 것"이라며 원산지 표기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들은 "어떤 이권보다 소비자 알 권리와 품질 미확인 철강재의 위협에서 벗어난 안전 보장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