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상화폐 엇박자 행보에 은행권 '안절부절'...국민·하나은행, 가상계좌 관망 중

2018-01-16     김국헌 기자

현재 정부 각 부처에서 가상화폐 관련 정책방향에 혼선을 빚으면서 은행권의 눈치보기가 극심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주에 법무부가 거래소 폐쇄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오며 가상화폐 거래를 원천금지하는가 싶더니 곧 바로 금융위원회가 시중은행에 실명확인시스템 도입을 지시하는 등 엇박자 행보가 이어진 탓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2일 시중은행 6곳의 실무진들과 회의를 갖고 실명확인시스템을 예정대로 이달 내 도입하고, 신규 가상계좌 발급은 자율적으로 재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에는 KB국민은행(행장 허인), 신한은행(행장 위성호), KEB하나은행(행장 함영주), NH농협은행(행장 이대훈), 기업은행(행장 김도진), 광주은행(행장 송종욱) 등 6개 은행 실무자가 참석했다.

금융위 방침대로 실명확인 시스템이 도입되면 가상계좌를 이용한 기존 투자자는 실명확인 시스템으로 옮겨 투자할 수 있고 신규 계좌 발급이 중단된 잠재적인 투자자도 매매할 수 있다. 본인이 확인된 투자자의 계좌와 거래소의 동일은행 계좌 간 입출금이 허용된다.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에 거래소 폐쇄를 포함한 고강도 가상화폐 대책을 발표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가상화폐 대책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 뒤 거래소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특별법에서는 가상화폐를 도박과 투기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거래소를 없애고 가상화폐 중개 수수료를 몰수·추징 하는 내용까지 담겨있다. 특별법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처음에는 법무부가 주도권을 쥐면서 거래소 폐쇄 방침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으나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기류가 변하고 있다.

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15일 기준 17만 건을 넘어가면서 가상 화폐에 강경한 입장이었던 법무부가 한발 뒤로 빠지고,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경제 부처가 다시 정책의 주도권을 쥔 모양새다.

◆ 은행도 중심 못잡고 '흔들흔들'

이렇게 혼란이 지속되자 은행권은 가상화폐 문제에 대해 중심을 못잡고 흔들리고 있다.  

신한은행이 실명확인서비스 도입을 중단하기로 했다가 입장을 번복한 반면, 산업은행은 아예 가상화폐 거래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법무부 장관의 발표가 나자 지난 12일 오전 가상화폐 거래용 실명확인서비스 도입 중단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신한은행과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같은날 오후에 도입 중단이 아니라 연기로 입장을 바꿨다.

15일에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기존 발급된 가상계좌 폐쇄를 보류하고, 입금 금지 조치도 유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계좌 실명확인서비스를 도입한다는 것으로 지난 13일 금융위 회의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부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신한은행을 '정부 눈치보는 은행'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애초에 도입 철회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연기하겠다고 한 것인데 잘못전달된 부분이 있었다"며 "시스템을 정교화하기 위해서 연기하겠다고 밝힌 것이고 입금 중지도 15일 재논의해 유보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재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보다 신중한 입장이다. KB국민은행은 난해 7월 빗썸과 거래를 해지한 이후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계약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 말대로 시스템은 구축해 놓되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거래는 동향을 보고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KEB하나은행도 눈치보기가 한창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원래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 제공을 하지 않고 있었다"며 "정부 방침이 정해지고,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신중히 접근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가상화폐 이슈가 터지기 한참 전에 3천억 원을 들여 보안관련 통합작업을 진행 중이었던 상황으로 지난해 말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계약을 해지했으며, 오는 2월 19일 런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통합시스템 구축 이후 안정화에 주력하면서 그 때 상황에 맞게 거래소와의 계약재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행장 이동걸)은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거래를 재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산업은행은 실명확인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상계좌를 농협으로 이전하라고 공지한 상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수수료로 얻는 수익이 거의 없고, 이미지만 나빠지기 때문에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거래재개를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정부가 명확한 방침을 밝혀주기를 바라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일관된 정부 정책이 필요한데 청와대-법무부가 다른 얘길 하는 등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대책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며 "지금으로써는 은행이 (가상화폐 관련)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고객들의 비판만 받고있는 상황으로 퇴로가 안 보인다"고 씁쓸히 말했다.   

청와대는 박상기 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으로 큰 혼란이 벌어지자 "확정된 것이 아니다"고 말을 바꾼 뒤 지금까지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