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상화폐 논란, 한국은행의 직무유기

2018-02-02     김국헌 기자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가상화폐 논란이 좀처럼 출구를 못찾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여론이 상당하다.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 태도를 보면 '아마추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월 초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거래소 폐쇄도 검토하겠다는 결과를 발표했을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것이 정부의 스탠스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에서 "결정된 것 없고 법무부가 합의되지 않은 사항을 밝힌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면서 혼란이 커졌다. 

지난 12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거래소 폐쇄관련해 "부처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 발언 이후 4일 만에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는 여전히 살아있는 옵션"이라고 언급해 또 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청원은 지난 27일 28만명을 넘어섰는데도 정부는 청원에 대해 답변할 것이라고 했다가 다시 계획이 없다고 밝히며 혼란을 가중시키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들의 '중구난방'식 발언들과 실명제 등 규제 속에 한달만에 가상화폐 시총은 반토막이 났고, 하락장과 맞물려 투자자 불만이 급증하며 패닉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상화폐 관련한 일대 혼란을 초래한 배경에 한국은행의 침묵이 있었다.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의 스탠스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가상화폐를 화폐로 볼 것인지, 아닌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결정되어야 과세부과, 각종 규제 등의 정책이 혼선없이 나올 수 있다. 이를 결정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지난해 연말 침묵을 지키며 혼란을 가속화 시켰다.

오히려 금융위, 금감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가상화폐 관련한 발언을 쏟아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가상화폐는 금융상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피력했고, 최흥식 금감원장은 "가상화폐 거품은 빠질 것"이라며 내기해도 좋다고 자신했다가 최근 사과까지 하는 촌극을 벌였다.

금융위, 금감원이 금융당국으로써 생각을 밝힐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금융정책을 집행하고 감사하는 기관들이지 화폐가 맞다, 틀리다를 규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가상화폐 연구 조사도 1월에 들어서야 개시했다.  지난 9일 가상화폐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은행 내 TF를 마련했다. 금융결제국, 법규제도실, 금융안정국, 통화정책국, 금융시장국, 발권국, 국제국, 경제연구원 등 총 8개 부서가 TF에 참여한다. 가상화폐 거래 확산 시 발생할 수 있는 영향과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담 조직 신설은 이달 말에서야 이뤄졌다. 

늦어도 너무 늦은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논란된 지가 언제인데 이제서야 가상화폐 TF를 구성하고, 전담조직을 만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언제 결과가 발표될지도 모른다. TF 조사결과가 나와야 정부의 정책방향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므로 그동안 가상화폐 관련 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한국은행은 가상화폐 붐이 서서히 일기 시작한 지난해 중순부터 가상화폐를 화폐로 봐야 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조사에 들어갔어야 했고, 연말에는 명확한 입장표명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기재부, 금융당국, 청와대가 한 목소리를 내며 일관된 발언과 정책을 펼쳐야 했다. 그래야 혼란을 멈추고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터다.

한국은행 노동조합은 최근 "서민 홀리는 가상화폐에 한국은행은 적극 대응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한은이 가상통화에 늑장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은 노조는 "한은이 거짓 화폐의 문제점을 주시하고 좀 더 빨리 경고하지 않은 것은 매우 뼈아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가상통화에 관해서 중앙은행이 왜 손을 놓고 있겠느냐”며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노조의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한국은행은 가상통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고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진행되는 연구에 한은도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겁한 변명으로 밖에 안들린다. 현재 가상화폐 혼란 정국을 부른 1차 책임에 한국은행이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