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칼럼] 다산 신도시 택배와의 전쟁...등급제를 고민해보자

2018-04-20     최현숙 컨슈머리서치 대표
몇 년 전 전원에 살고 싶은 욕심을 이기지 못해 강원도 산골짝으로 잠시 거주지를 옮긴 적이 있었다. 시골에 살면 그날그날 밭에서 나는 싱싱한 채소를 먹고 소박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착오였다. 매일 매시간 필요한 것은 왜 그리 많은지 차타고 20분이나 나가는 면소재지를 하루에도 2~3번씩 나가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그게 너무 번거로워서 온라인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에서 간편하게 검색해서 잠시 ‘손품’만 팔면 해결될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착오였다. 이번엔 택배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택배기사들이 산골 그 구석쟁이를 절대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택배가 도착할 때쯤이면 전화가 온다. OO리 거기는 너무 외져서 못 들어가니 면소재지 OO가게에 OO시 이후 맡겨 놓을 테니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났다. 택배는 당연히 ‘도어 투 도어’인데 20분이나 떨어진 면소재지에 가져다 놓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럴 거면 온라인 쇼핑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택배기사에게 조근 조근 따지기도 하고 큰소리로 화를 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집에 안 가져다주면 받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기사는 태연하게 “네 그럼 반송하겠습니다”라고 응수한다. 가슴에 천불이 나지만 당장 아쉬운 물건이니 반송되게 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택배기사와 몇 번의 전쟁은 철저히 패배로 끝나고 스스로 면소재지로 택배를 찾으러 나가는 ‘순리’에 순응하고 말았다. 

최근 나 말고도 택배와의 전쟁을 치루는 곳이 또 있다. 다산신도시다. 택배차를 지상으로 출입 못하게 하고 지하는 천장고가 낮아서 택배차가 드나들 수 없고...그러다 보니 ‘도어 투 도어’가 안 되는 분쟁이 첨예하게 맞부딪쳤다. 사실 다산신도시만 언론에 오르내렸을 뿐이지 이 같은 현상은 전국적이다. 

최근 신축 아파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지상에 차 없는 단지를 표방하고 있는데도 주차장 규정은 예전 그대로라서 택배차가 드나들 수 없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결국 정부가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실버 택배 아이디어까지 내놨으나 이마저 왜 집단 이기주의에 세금을 허비하냐는 여론에 밀려 진퇴양난에 처했다.

이 같은 이슈의 배경에는 오래전부터 계속돼온 택배의 낮은 단가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택배비 2500~3000원은 주거지가 몰려 있고 집 앞에 바로 택배차량을 세울 수 있는 환경에 근거하고 있다. 내가 살던 강원도 산골짝이나 추가 서비스가 필요한 다산 신도시같은 곳은 비용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해법은 없을까? 택배요금을 좀 더 세분화 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택배비는 가구 등 특수한 아이템이나 지역적으로 도서산간이 아니면 일률적으로 요금이 통일돼 있다.

추가 서비스가 필요한 곳은 추가 요금을 받으면 된다. 면소재지에서 20분 걸리는 산골짝은 나름대로 유류비와 택배기사 시간 소요를 감안해 비용을 책정하고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는 추가 운반비를 부과하면 된다. 택배사가 오랜 기간 축적한 노하우와 데이터를 분석하면 나름대로의 등급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택배비 지원도 떼쓰는 곳에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등급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합리적 설득이 가능할 것이다.

강원도 산골짝에서 택배는 편의가 아니라 불편 그 자체였다. 20분 거리를 왕복하는 시간도 문제지만 신선식품의 경우는 택배기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도 맞춰야 했다. 무거운 물건을 혼자 운반하는 수고로움도 덜 수 없었다. 추가 요금을 내고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지 문의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매번 당하는 소비자도 힘들고 이런 소비자의 항의와 매번 싸워야 하는 택배기사의 스트레스는 또 어땠을까? 

문제는 터졌는데 나만 유리한 방법은 해결 방법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택배비에 대한 전면적인 고민이 필요할 듯싶다.

[컨슈머리서치=최현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