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사람 머리만 보이는 영화관 어쩌라고?...단차 규정 없어 기업 마음대로

2018-05-16     황두현 기자
'최적의 영화 경험'을 표방한 최신 시설의 영화관에서 불편을 겪은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좌석 간 높낮이 차가 적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서다.

서울에 사는 박 모(여)씨는 최근 영화를 보기 위해 강남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았다. 리모델링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국내 최고의 영화 경험을 선사한다'는 문구에 큰 기대를 했다. 설렘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앞 사람의 머리에 가려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

박 씨의 키는 여성의 평균 신장보다 훨씬 큰 169cm이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항의하는 그에게 영화관 측은 “의자는 이상이 없으니 앞 사람에게 비켜달라고 요청하라”고 대응했다.

불편을 겪은 건 박 씨뿐 만이 아니다. 지난달 이 곳을 찾은 서 모(여)씨 역시 영화를 즐기기 위해 사전에 가운데 좌석을 예매했지만 앞사람에 가려 스크린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서 씨는 “관람료는 올랐는데 나아진 건 없다”고 꼬집었다.

온라인 예매 사이트인 맥스무비의 게시판에도 '리모델링을 했음에도 좌석 간 높낮이차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았다.

▲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MX관 좌석에서 바라본 스크린 / 독자 제공

해당 영화관은 삼성동 코엑스의 메가박스 MX관으로 지난해 리모델링을 끝냈다. ‘사운드 특화’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관람환경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관객들은 입을 모았다. 높낮이차를 조절하면 관객 수가 줄어들기에 수익성을 포기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메가박스 관계자는 “관객석 규모에 따라 단차가 상이하게 적용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면적과 좌석 수, 관람석의 통로 넓이만 규정한다. 좌석의 경사도나 앞뒤 간 단차(높낮이)의 기준을 제시한 ‘작은영화관 조성과 운영 매뉴얼’이 있지만 이는 공공상영시설에만 해당한다. 복합상영관은 운영 기업마다 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영화관 신설 시 시설업체와 협의를 한다고 밝혔고, CGV도 공식적인 매뉴얼은 없으나 표준 체형을 기준으로 객석을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오래된 영화관의 경우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시설 개선의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좌석 개선 없이는 사운드 시스템 향상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건축음향 디자이너인 대림대 문건창 교수는 “사운드는 시스템만 바꾼다고 개선되는 게 아니다”라며 “좌석 경사와 간격까지 고려해야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전국의 영화상영관 관람환경을 조사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수직/수평 시야각의 표준 범위를 지키는 상영관 수가 다섯 곳 중 한 곳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별로는 롯데시네마가 17곳, CGV가 13곳에서 표준 범위 내에 들었고 메가박스는 2곳에 불과했다.

관련 문제가 잇따르자 영진위는 영화관 시설 표준화 작업에 착수했다. 객석 배치, 사운드 등 영화 관람에 적정한 기준을 제시할 계획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공식적인 시설 기준을 제시하는 건 아니고, 기존 영화관을 심사해 인증마크를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황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