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용되는 보험사 의료자문제①] 보험금 거절 수단 전락...당국 대책도 헛바퀴

2018-11-26     김건우 기자

소비자들이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거절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보험사들이 자문의사의 소견을 근거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다. 금융당국마저 칼을 뽑아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보험사 의료자문제도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사례1
서울 동작구에 사는 원 모(여)씨는 수 년째 섬유근육통을 앓아오면서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보험 상품을 가입한 생명보험사에서 손해사정을 위임해 입원일당 과청구건으로 조사가 시작됐다. 이미 지난해에 입원치료를 받았다가 '입원이 필요없다'는 자문의사 진단 때문에 보험금을 받지 못한 일을 겪기도 했다. 보험사 측이 의료자문기관을 알려주지 않아 수소문 끝에 알아낸 서울 모 대학병원을 찾았지만 자문이력이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원 씨는 "어떤 내용에 대해 의료자문을 했는지, 어느 병원에서 했는지 꽁꽁 숨겼다"면서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근거로 주장하면 무조건 수용해야 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례2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이 모(여)씨는 지난해 1월 인대 2군데가 파열돼 인대봉합술과 물리치료, 자기치료를 받았다. 이후 제3병원에서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아 장해지급률 5% 진단을 발급 받아 손해보험사 2곳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 가운데 한 곳은 자문의사 소견을 근거로 지급률을 2.8%만 적용했다. 보상담당자는 한사코 병원과 의사명을 알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이 씨는 "의료자문을 어디서 누가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 건 횡포"라고 기막혀 했다. 

보험사의 의료자문제도가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운용되면서 보험사들이 이를 합법적인 보험금 미지급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지속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개선노력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은 요지부동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3년 중립적인 자문을 수행하기 위한 ‘자문의 풀(Pool)’ 개선방안을 내놓았고,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의료분쟁 관련 불합리한 금융관행 개선책'을 꺼내들었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 수 년간 대책 나와도 '유명무실', 의료자문 특정병원 몰아주기는 '여전'

의료자문제도는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에서 손해사정사가 보험사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사항에 대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자에게 조사를 의뢰하거나 자문을 의뢰할 수 있도록 보장돼있다.

문제는 이 제도가 보험사에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자문제도의 공정성 논란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보험금 지급 여부를 두고 소비자(주치의)와 보험회사의 입장이 상반될 때 보험회사 측에서 소비자의 동의를 얻고 자문을 구하는 것이 의료자문제도의 핵심인다. 그런데 보험사가 선임한 자문의가 자문을 내리다보니 공정한 자문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자문의 선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금융위는 지난 2013년 '자문의 풀'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사실상 보험회사가 선정한 자문의를 각 보험협회와 전문의학회가 자문의 풀을 구성해 선정 과정을 공정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손보협회의 경우 협회 내 소비자단체와 보험업계, 의료업계 인사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신설하고 생보협회는 주요 의학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자문의 풀'을 만들어 중립적 자문이 가능하게끔 만든다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중립적 자문기구를 신설했음에도 실질적으로 보험사들이 이용하지 않거나 일부 보험상품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등 유명무실해지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은 증폭돼왔다.


불만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금융감독원이 나섰다.

금감원은 지난해 5월에 의료분쟁 관련 불합리한 금융관행 개선책을 통해 ▲제3의료기관 자문절차 설명 의무 ▲공정하고 신뢰성 있는 의료자문 프로세스 마련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의료자문 객관성 담보를 위해 소비자와 보험사간 자문기관 선정 합의가 안될 때 금감원을 통해 전문의학회 자문을 받는 프로세스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당시 금감원이 제시한 이행 시기는 지난해 말이었지만 현재까지 이뤄진 개선책은 보험회사 의료자문 공시 강화와 의료분쟁소위원회 구성까지 2가지에 불과하다. 의료분쟁소위원회는 지난해 8월 구성됐지만 현재까지 위원회 한 번 개최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보험사 의료자문 건수 급증...특정병원 몰아주기 의혹도

이처럼 의료자문제도에 대한 금융당국의 보완책이 겉돌고 있는 사이에 보험회사의 연간 의료자문 건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 의료자문건수는 9만2279건으로 전년 대비 9.8% 증가했는데 매년 평균 1만여 건 이상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더욱이 이를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의료자문으로 한정지으면 의료자문건수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지난해 보험금 지급 관련 보험사 의료자문건수는 7만7900건으로 전년 대비 1만여 건 이상 늘었고 2014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의료자문건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의료자문에 따른 보험금 부지급률도 상승하고 있다. 보험사 의료자문에 따른 보험금 부지급률은 2014년 30%에 그쳤지만 이듬해 42%로 급상승했고 지난해 부지급률은 49%에 달했다. 보험사 의료자문으로 결정된 보험금 청구건 중에서 절반은 부지급으로 판정됐다는 의미다.

일부 보험회사가 특정 병원에 대해 의료자문 물량을 다수 의뢰하는 등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자문병원과 자문의는 보험사와 정기적인 거래 관계인 경우가 대다수인데 자문의들은 자문 1건 당 통상 30~100만 원 정도의 자문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보험회사들이 연간 9만여 건의 의료자문을 의뢰하고 있고 자문 1건 당 자문료를 평균 20만 원으로 산정하면 연간 175억 원을 자문료로 지출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보험사들이 몇몇 대형병원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긴밀한 유착관계를 다지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올해 상반기 국내 생·손보사 의료자문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일부 보험사의 경우 전체 의뢰건수 가운데 상당수가 일부 병원에 몰려 있었다. 손보사 빅4로 꼽히는 4개 손보사가 자문의뢰건수 상위 5개 병원에 자문을 맡긴 비중은 최소 33%에서 최대 40%에 달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특정병원으로의 의료자문 몰아주기 행위는 있을 수 없고 의료자문시 소비자에게 의료자문 여부를 미리 알리고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문병원 쏠림 현상은 몰아주기보다는 의료자문을 상대적으로 잘 받아주는 병원들이 있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며 "의료자문을 의뢰할 때도 계약자에게 병원을 미리 고지하고 동의를 얻은 뒤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