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조선업 인명사고에 '눈 가리고 아웅'?...중대산업재해 조사위원회 권고안 이행률 '제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정부에 권고안을 내린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이행된 권고안은 '제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여론 악화를 고려해 부랴부라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권고안을 마련토록 해놓고는 아무 것도 이행하지 않아 결국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였다는 비난이 따른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내년부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시행으로 하청이 하는 일들을 원청이 책임지도록 바뀌면서 관련 문제가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7년 10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친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와 STX조선 폭발사고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은 조선업 노사관계자와 전문가를 포함해 17명이 참여하는 '조선업 중대산업 재해 국민 참여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안전시스템과 원하도급 구조 및 고용형태 등 사회구조적 문제를 조사해 조선업 중대재해 원인 규명과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조사 결과에 따라 제도 개선을 약속하며 당시 들끓었던 비판여론을 잠재웠다.
6개월의 조사기간이 끝난 후 조사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를 중대 재해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다. 중대 재해를 막기 위해 민영화 철회 및 직접고용 정규직화, 다단계 하도급 금지 등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제도 개선을 정부에 권고했다. 현장 위험요인 개선, 사업장 내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안전보건 체계 마련,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법 제도 개선 등의 권고안도 정부에 제시했다.
그러나 올해 1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 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은 전혀 포함돼지 않았고, 이후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추락 방지를 위한 발판 설치 등 중대재해 유발 위험작업 등도 도급금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반영할 수 있었던 하위법령에 발판 설치 등 위험작업을 도급승인 대상으로 포함시키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반영하지 않았다.
당시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조사위 권고가 나온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권고 사항을 정부가 받아들인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와 관련해 조사위는 원청과 하청간의 문제를 수없이 지적했지만 실제로 법이 집행되는 단계에서는 삼성중공업 담당자만 집행유예로 끝났고 제도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사위원회 활동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통 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나오면 피조사기관이 협조를 하지 않고, 조사위원 간의 견해 차이로 갈등이 야기되며, 조사기간이 짧기 때문에 각 행정부서와의 조율이 어려워 마찰이 생기는 문제도 있었다. 자료 제공을 요청해도 제출기관의 선의에 기대는 것 말고는 자료 제출을 강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또 상설이 아니였으며 조사위원들의 공공적인 봉사를 바탕으로 운영됐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당시 정치권에서의 이견대립이 컸다.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위험한 일은 최대한 하청을 금지하고 사고 발생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규제 강화시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맞섰다. 결국 올해 1월에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은 반영되지 못했고, 올해 내내 국회에서 한번도 논의되지 않고 묻혔다.
그러는 사이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올해 조선업 산재 사망자 수는 8명이었는데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조사위가 지난해 9월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10년간 조선업에서 발생한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324명인데 이 중 하청 노동자가 257명으로 79.3%에 달했다. 하청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경제적 취약 계층으로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도 회사를 상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는 실정이다. 당국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하청 노동자들이 또 희생됐다는 비판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조선업계 노조는 위험 외주화 금지 대책위 구성하고 정부 조사위원회 권고사항 이행, 위험 외주화 금지법 제정 등을 목표로 투쟁할 방침이다.
노조 관계자는 "여전히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지만 중대재해 재발방지를 위해 진행한 조사위 보고서는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며 "노조, 시민단체, 법률인, 정당 등이 힘을 모아 하청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는 위험의 금지화법 제정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내년부터는 원청의 책임이 강화돼 하청 노동자 안전문제가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 제정은 사실상 원청이 하청을 쓰지 말라는 얘기로 현실적으로 이해관계가 크게 부딪히고 분업화 사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올해 1월 공표한 산업안전보건법이 내년 1월 16일부터 시행되는데 이 법안에는 외주 하청을 주더라도 지배 범위 하에 있는 하청을 원청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부분이 강화된다"고 밝혔다.
또 "이번 원청 책임 강화로 위험의 외주화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원청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부분이 강화돼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이 보다 도모될 것으로 본다"며 "추가로 도급금지작업 범위 확대 등 여러 하위규정들을 공포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