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 김지형 위원장 “삼성 바꾸겠다는 이재용 부회장 의지 봤다”
2020-01-09 유성용 기자
대법관 출신 김지형 변호사는 9일 자신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이유에 대해 밝혔다.
법조계, 시민단체, 학계, 삼성 내부 인사 등으로 구성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그룹 외부 독립기구소러 이달 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날 김 위원장은 “처음에는 위원장직을 수락하지 않으려 했다”고 발표를 시작했다.
그가 꼽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현재 진행되는 총수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기 위한 면피용일 수 있다는 의심이었고, 둘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셋째는 저의 역량 부족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삼성 측의 위원장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위원회 구성·운영 전반에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를 삼성이 수용하며 위원장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재용 부회장과 직접 만났고 자발적으로 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 자율성을 확약하며 삼성을 대대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들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완전한 독립성·자율성을 정말 확실히 보장할지에 대해 그룹 총수의 확약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위원회가 마련할 준법감시 프로그램이 실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고민 끝에 준법감시위원장을 수락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우선 삼성이 먼저 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판단했다”며 “진의에 대해 의구심이 있지만 이런 불신을 넘어서야 하고, 삼성이 풀어야 할 과제이며 동시에 위원회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뭔가를 하는 편이 낫다”며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 시대, 우리 사회가 함께 해주실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고 친화나 적대 등 어느 시각에도 일리가 있다”며 “삼성과 최고경영진은 구별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사회는 기업으로서 삼성의 성공을 바라고 있으며, 냉소적, 적대적 시선은 최고경영진을 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고경영진이 변해야 삼성이 변하고 기업 전반의 변화로 이어져 사회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은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6명이다.
시민단체 인사들은 재벌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노사관계 등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왔던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법조계, 학계 인사들은 기업 범죄 수사나 공정거래·지배구조 연구 등 이력이 있다.
삼성 내부에서는 언론인 출신으로 해체된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사장을 했던 이인용 사회공헌업무총괄 고문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들은 모두 김 위원장이 직접 인선한 인물이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그룹 내부에 속하지 않고 별도 외부 기구로 설치된다. 삼성전자·물산·생명·SDI·전기·화재 등 주요 7개 계열사들이 협약을 맺고 위원회에 참여하는 형태다. 참여하는 계열사는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독립성과 자율성이 생명으로, 삼성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윤리 경영 파수꾼, 준법 감시자 역할을 하는 데 모든 역량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향후 홈페이지를 구축해 삼성 최고경영진의 법위반 행위에 대해 직접 신고 받을 계획이다.
법·위반 리스크를 사전·사후에 들여다보고 리스크를 인지하면 조사하며, 법 위반을 확인하면 시정·제재와 재발방지 방안을 회사에 요구한다. 각 계열사에 준법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독하고, 계열사 이사회에 직접 권고·의견을 제시한다.
위원회의 요구를 삼성 측이 제대로 수용하지 않을 시 홈페이지에 게시해 외부에 공표할 방침이다.
준법감시는 내부거래, 하도급 거래, 일감몰아주기, 뇌물수수, 부정청탁, 노조문제, 경영권 승계, 대외 후원금 등 성역 없이 모든 분야에서 이뤄진다.
다만 준법감시위원회는 공식 출범 이후부터 발생하는 사안을 중심으로 다룰 방침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분식회계 혐의 등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추후 위원회가 구성된 후 더 깊게 논의해 볼 방침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 설치 이후의 사안을 중심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며 “위원들과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요구한 ‘숙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기구여서 한시적 면피에 그치지 않겠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준법감시위가 생기는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이 부회장 재판부의 권유”라며 “재판부가 언급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8장의 자율적·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 취지와 저희가 생각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밝혔다.
삼성의 지원과 개입이 있으니 휘둘리지 않겠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우려에 대해 사회가 계속 관심을 갖고 감시하고 검증하며 힘을 보태달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유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