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량하다..요즘 '금배지'들의 신세

2007-10-29     헤럴드경제신문 제공
국회의원은 나라를 잘 운영할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임무가 중차대하다 보니, 그들에게는 직무상 발언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부여된다.

금배지를 달아 그의 위상을 확인시켜주고, 25평의 의원사무실에 6명의 보좌진을 나라에서 지원한다. 감옥에 가도 확정판결로 자격정지될 때까지 세비를 준다. 이뿐이 아니다. 전화 한 통화면 철도,항공편 예약이 척척 이뤄지고 공짜로 탈 수 있으며, 대부분의 국내 골프장에서는 부킹편의와 함께 ‘회원 대우’로서 10만~15만원의 할인혜택을 준다. 역할의 중요성 때문에 어떤 행사를 가든, 최고 외빈으로 소개되고 장관급 또는 그 이상의 예우를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금배지가 요즘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국정감사가 대통령 후보에 대한 공격과 수비로 이어지다보니 처절한 ‘주군 보호전쟁’에 내몰렸다. 몸싸움도 다반사고 식사도 거른 채 상임위 위원장석을 점거한채 농성을 벌이기도 한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명박 후보의 ‘실적과 총선 공천 연계’ 방침에 따라 지역표밭 관리라는 ‘성적표’를 강요받으면서 부담감이 백배 커졌다. 신당 의원들도 이 후보 공세의 선봉에 서면서도 대선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 채 내년 총선후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중립지대 의원들도 대선이 코앞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구에만 전념하자니 눈총을 받을 수 있어 부담감의 크기는 마찬가지다.

 

호주머니 사정도 말이 하니다. ‘클린정치’ 분위기와 함께 돈줄이 막히면서 사재를 털어 전국을 누빈다. “대선을 위해 내 돈 다 쓰니 5개월 후 총선서는 깡통 차겠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지역구 일구기가 버겁고 재공천을 몇 안 되는 희망으로 삼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더 걱정이다. 최근 A의원, B의원 등이 ‘독한’ 국감자료를 내놓으면서 피감기관을 다그치고 있는 것에 대해 “대선후보의 눈에 쏙 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라며 남의 일 같지 않다는 해석을 곁들이는 이도 있다.

국회의원직은 ‘3D직종’이라는 자탄도 나온다.

 

한나라당 한 중진의원은 “과거엔 총재 1인에 충성을 다하면 모든 게 다 됐는데, (경선부터 대선 두 달 직전까지)의원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한때 이명박이다 박근혜다, 선택을 강요받았던 의원들이 이번에는 대선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신당 의원들은 더 복잡한 편이다. 정동영호가 출발했지만 늦게 대선체제가 꾸려진 데다 향후 후보 단일화 등 변수가 많아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구받게 됐다. 정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더디면서 ‘내년에 국회의원 실업자가 대거 양산될 것’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에 대한 공포감도 커져만 간다.

지역에 가도 ‘저 사람 내년 4월 총선에 될 수 있을까’라는 눈초리를 받으며 대선후보 ‘수행원’ 수준의 대우를 받기가 일쑤라는 것.

 

탄핵정국 후 전체의원 299명 중 187명을 신진 세력으로 바꾸며 ‘정치적 혁명’을 일궜다는 자부심과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총선을 겁내는 입장에 처하게 됐다.

2007년 가을 겨울의 선량들…. 예전에 비해 처량한 신세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김영상ㆍ최재원 기자(ys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