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법 통과에 소비자 전문가들 '기틀 마련' 기대, 금융권은 분쟁 유발 '걱정'

입법취지는 금융권도 공감

2020-03-06     박관훈 기자
9년여 동안 잠자고 있던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마침내 국회 문턱을 넘어서면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소비자보호를 위한 강력한 법적 장치를 요구했던 소비자단체와 학계에서는 금융부문에서 소비자 권익 강화를 위한 초석이 마련됐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둔 반면, 금융권에서는 입법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과도한 분쟁 유발과 자본시장 위축 등이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현 정부 국정 과제 중 하나인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금소법)’이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2011년 7월 첫 발의 이후 무려 9년만의 일이다.

일단 소비자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입법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빠지며 아쉬움은 남겼지만 위법계약해지권, 판매제한명령 등 판매원칙 준수를 위한 막강한 수단이 마련돼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입장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법안 통과는 늦었지만 금융사의 판매행위 규제 등 여러가지 원칙 등이 포함된 기본법을 마련된 것은 잘 된 일”이라며 금소법 통과를 환영했다.

그는 이어 “다만 소비자권익의 기본 3법 내용인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빠지고 입증책임전환 도입도 굉장히 약해 추후 많은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워낙 오랫동안 시간을 끌어왔던 법이라 통과된 것 자체만으로도 일단은 크게 환영할 일”이라며 “손해배상 입증책임의 경우 설명의무에 한해 도입키로 합의하면서 완전한 입증 책임의 전환은 아닐지라도 금융기관의 영업행위 중 위법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강화하는 등 소비자의 권익 보호 전반에 유리한 측면이 많다”고 평가했다.

이어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집단소송제 등이 빠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미흡한 점은 앞으로 법을 시행해가면서 보완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혜진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 역시 “금소법이 통과된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소식”이라면서 “다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법안 발의때부터 추진하려고 했던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 도입 등이 누락됐고 6개 준칙도 사실 약화된 부분이 있어 앞으로 금소법이라는 뼈대에 어떻게 살을 붙여나갈지가 과제”라고 말했다.

윤민섭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일각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이 빠져서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면서 “위법계약해지권, 판매제한명령 등 판매원칙 준수를 위한 막강한 수단이 마련돼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분쟁조정이 신청된 사건에 대해 소송이 진행 중일 경우 법원이 그 소송을 중지할 수 있는 소송중지제도와 소비자가 신청한 소액분쟁은 분쟁조정 완료 시까지 금융회사의 제소를 금지하는 조정이탈금지제도가 마련된 것도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 금융사 “소비자보호 강화엔 공감...과도한 분쟁, 시장 위축 등 우려 살펴야”

금소법 통과로 인해 제약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인 금융사들도 입법 취지 자체에는 공감을 표했다. 금융사 스스로 영업행위 기준을 강화하고 소비자보호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불완전판매가 줄어드는 등 소비자보호 효과에 확실한 변화가 예상된다는 평가다.

한 은행 관계자는 “6가지 판매규제를 확대 적용하면 은행 등 금융사들이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보다 신경을 쓰게되면서 소비자보호는 확실히 강화될 것”이라면서 “리스크관리를 위해 프로세스를 강화함과 동시에 영업 단계에서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AI 등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는 등 시스템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생보협회 관계자는 “보험업계에서는 이전부터 소비자 중심의 가치 경영을 내세워 왔기 때문에 금소법이 통과됐다 하더라도 그 기치를 유지하며 갈 것”이라며 “금소법 제정 과정에서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하기 어려운 것들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조율이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금융사 관계자들은 과도한 분쟁 유발과 자본시장 위축 등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나타냈다. 더불어 금융사에 대한 제재 기준만 마련되고 소비자의 책임에 대한 언급이 빠진 부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은행 관계자는 “앞으로는 고수익 고위험 상품 등에 대한 개발이나 판매가 제한되고 자연스럽게 펀드 등에 투입되는 자금이 줄어 자본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도 있다”며 “중소형자산운용사, 증권사 등이 살아남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또한 여전히 투자자 책임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온 것은 아쉽다”면서 “블랙컨슈머 등 과도한 분쟁을 막으려면 소비자에 대한 책임도 명시를 해야 하지만 금융사 제재에 대한 내용밖에 없어서 그런 부분은 보완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보헙 업권에서는 소비자 분쟁을 이용하는 브로커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모럴헤저드 우려가 있다”면서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 역시 “입증 책임이 보험사로 전환되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며 “분쟁이 많은 보험사의 특성상 회사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카드사 관계자는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이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한 분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설명의무를 했는지 못했는지 여부로 금융회사와 소비자간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법률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장에서의 적용이 쉽다는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6대원칙 부분이 부담스러운 부분인데 증권사 상품 특성상 디테일한 설명을 하려면 최소 30분 이상이 소요된다”며 “오히려 현업 창구에서는 설명시간 길다고 짜증을 내는 고객들도 많아 현실에서 적용할 때의 괴리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관훈·문지혜·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