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법은 있는데 '합의'가 있어야 집행할 수있다?...식약처의 이상한 직무유기
2020-09-22 조윤주 기자
달라진 개의 지위와 국제사회 보편적 인식 등을 이유로 개 식용 철폐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발원시킨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야생 식문화를 비판해온 우리나라의 '개고기' 상황은 어떤가?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개 식용은 엄연히 불법이다. 식품위생법 식품공전에는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 수천여 개를 담았지만 어디에도 개는 찾아볼 수 없다. 식품위생법에서는 개나 개고기를 식품원료로 보지 않는 거다.
같은법에서는 식품원료로 등재돼 있지 않은 재료를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제조, 수입, 가공, 사용, 조리, 저장 등을 해서는 안 되며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식품위생법상 개고기 판매가 명백히 불법이니 철저한 단속이 이뤄져야 하지만 식약처는 문화적 관습에 관한 문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다. 국민의 식생활 안전을 위해 제정한 법을, 식품안전을 관장하는 행정기관이 방기해 온 셈이다.
식약처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제도권 안에 들어서지 못한 개고기는 도축과 유통, 판매에서 법적 관리를 받지 못하며 위생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더해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건국대학교 수의대 연구소에서 전국 재래시장 93개 업소에서 판매중인 개고기 샘플을 채취해 항생제 잔류검사를 실시한 결과 61개 샘플에서 소고기, 돼지고기 등 일반축산물의 96배에 달하는 항생제가 검출되기도 했다.
비위생적인 불법도살 등으로 안전하지 않은 개고기가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식약처는 개를 식품원료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도 판매업소에 대한 전면적인 제제나 단속은 어렵다는 변함없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여러 조사결과와 통계에서 개고기 식용 금지로 국민 여론의 추는 기울어져 있다.
2019년 동물자유연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한 '개식용 산업 시민 인식 조사' 결과에서 '개고기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답변은 46%, '과거에는 먹었으나 요즘은 먹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41.8%로 나왔다. 개고기 섭취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71.9%가 '없다'라고 답변했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5년과 2014년 간 보신탕 영업점 수가 약 4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에는 한 해에만 수백만 마리 개가 도살당하던 성남 개 도살장이 문을 닫았고, 이듬해 부산 구포가축시장이 폐업했다.
반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인구는 1000만 시대에 접어들었다.
식약처에서는 여전히 국민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공론화하는 어떠한 행동도 나서지 않고 있다.
식약처의 직무유기는 개고기 식용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비난, 잔인한 불법 도축과 비생위적인 섭생이라는 많은 부작용을 국민들에게 안기고 있다. 식약처가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여야 할 때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