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리고 바짝 움츠린 삼성
2007-12-09 뉴스관리자
'사업계획 수립과 인사'라는 중추 이슈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 전시회 비즈니스와 같은 글로벌 사업 진행과 자료관리 등 일상업무까지 삼성 비자금 의혹 쓰나미에 휘말린 형국이다.
7일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마주친 삼성 계열사 한 직원은 "이사가는 것 같다"며 본관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의 자금 흐름을 추적중인 검찰에 더해 '삼성 특검법'에 따른 특검 임명을 앞둔 가운데 회사 방침에 따라 과거자료를 정리한 짐이 늘어가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다른 한 직원은 "삼성SDS 동료에게 물어보니 '이제 내게 과거는 묻지마세요'라고 말하더라"고도 했다. 이처럼 실제 삼성 본관은 사실상 자료관리 비상체제를 매일 가동중인 상태다.
불가피한 업무에 필요한 소수 자료만 빼고 이번 의혹 사건과 관련이 전혀 없지만 오해를 살만한 모든 문서나 이메일 등 각종 자료를 폐기하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 표적이 됐던 삼성SDS에서는 최근 일부 직원이 사내 메일을 쓸 수 없어 정상적인 속도의 업무처리가 어려운 날도 더러 있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동향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9일 "이번 사건과 무관한 기록물이나 이메일, 문서자료 중에서도 오해를 살만한 것은 다 버리고 지우고 있다"고 했고, 다른 관계자는 "자료 관리는 평소에도 하는 일이긴 하지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아무래도 그 강도가 세긴 세다"고 덧붙였다.
또한 요즘 들어 태평로 본관 주변은 매일 삼성 문제와 직.간접 관련 있는 시위대의 구호와 세칭 '투쟁가'의 볼륨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삼성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면서 해외 세일즈에 탄력을 붙이는 국제전시회 참가 문제도 고민거리를 안기고 있다.
한해 '농사'의 방향타를 정하는 전 세계 전자업체들의 신제품 경연장인 2008년도 미국 CES(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내년 1월 초 열리는 이 행사에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언론사 취재초청을 하지 않기로 최근 최종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매년 취재거리와 기사를 양산해온 이 행사에 기자들을 공식 초청해왔으나 이번만큼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대규모 행사에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업체가 이 같이 접근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해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는 지난해의 경우 전 세계 130개국, 2천700여 업체가 참가했었다. 가히 세계 최고의 가전쇼 무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해마다 글로벌 업체들의 신제품 경향과 기술 동향을 파악하고 해외 주요 거래선과 접촉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 아들인 이재용 전무가 이 행사를 꼼꼼히 챙겨왔으나 이번에는 그의 활기찬 대외 행보를 지켜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 전무는 지난해 CES때 전시장 내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한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을 직접 안내하며 삼성전자의 최첨단 디지털 제품들을 설명하고,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내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3GSM 세계회의', 3월 독일 하노버 '세빗(CeBIT)' 등 주요 해외 전시회에서도 삼성전자의 마케팅, 홍보 활동이 보수적으로 기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 특검이 한창 가동될 시기이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문제가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두말할 나위없이 크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진상이 가려져 정상적인 분위기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기대할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중공업의 예인선과 해상크레인용 부선이 유조선과 충돌해 발생한 대규모 해양오염 사건과 관련해서도 해당업체는 물론 그룹 전반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면서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강풍과 거센 풍랑 속에서 예인선과 부선을 연결한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발생한,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고였다"면서도 이 사건이 '인재'로 규정되고 삼성의 책임이 부각될 가능성에 대해 초조해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은 우선 피해복구를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피해지역에 대한 배상은 차후에 생각해볼 문제지만 삼성측이나 해당 유조선 모두 배상에 충분한 보험에 가입돼 있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룹 안팎에서는 보상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피해자들이 삼성측에 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가뜩이나 이미지 악화로 곤경을 겪고 있는 그룹의 처지가 더욱 곤혹스러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