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따뜻한 사람"..현대건설맨이 본 이명박
현대건설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명박 당선자에겐 정신적.정치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현대건설과 정주영이 없었다면 이 당선자의 오늘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무려 17년동안 현대건설 사장과 회장으로 근무하며 '샐러리맨 신화'를 썼다. 국민의 선택을 낳은 '경제 대통령' 이미지도 현대건설에서 시작됐다.이 당선자를 이렇게 키운 사람도 사실 정주영씨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많은 전현직 현대건설 임직원들은 이 당선자를 "알고보면 정이 많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저돌적이고, 심지어 독선적이기까지 한 대중적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이 당선자를 외부에서는 무모하고 독선적인 사람으로 보지만 이는 공사 과정에서 부닥치는 수많은 난관을 어떤 식으로든 뚫어내는 현대건설의 특성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하다. 오랜 '현대건설식 생활'이 몸에 밴 때문"이라는 게 노치용 현대증권 부사장의 '해명'이다.
노 부사장은 1978년부터 6년동안 이 당선자의 비서로 근무하며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다.
이 당선자는 회장으로 있던 1984년 무렵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힘든 한 대학생을 남몰래 회장실에 들르게 해,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하며 학업을 격려했다고 한다.
1984년부터 4년간 이 당선자를 보좌한 허 철 현대택배 전무는 "두 분이 어떤 계기로 서로 알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락이 뜸하면 회장님께서 먼저 '학생을 찾아 사무실에 다녀가도록 하라'고 비서실에 지시를 내리곤 했다"며 "석 달에 한번씩은 그 학생을 찾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 대학생은 대학 졸업 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현재 법조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이 당선자는 이밖에도 청소나 전화교환, 식당일을 맡는 직원들도 손수 챙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권한과 책임이 막중한 중역이나 간부들에겐 매우 엄했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은 괜찮지만, 충분히 준비해서 따낼 수 있는 입찰에서 탈락하거나, 직위에 걸맞지 않은 그릇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게 되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허 철 전무)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어려운 시절을 겪은 때문인지,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하직원의 해고를 막기위해서는 불같은 성격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를 거스르기도 했다.
임형택 당시 현대건설 토목부 상무는 '아름다운 시절 with 이명박'이라는 책에서 "정 명예회장의 해고 지시는 현장에 다녀온 후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사장은 사람의 앞길은 막지 않는 법이라며 해고 대신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 회장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 설득은 매번 정 회장을 움직여 수많은 이가 현대를 떠나지 않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에 매진할 수 있게 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