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코인 상장폐지에 투자자만 피멍...‘테라‧루나 사태’도 거래소가 키워

[가상자산과 소비자보호①] 5년 동안 550개 코인 상장폐지

2022-06-08     문지혜 기자

가상자산 열풍으로 관련 기업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반면, 일확천금의 단꿈에 젖어 코인에 손을 댔다가 큰 손해를 보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럼에도 가상자산과 관련해 제도와 규정이 정비되지 않아 피해 예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 받을 방법도 막막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가상자산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피해를 당하고 있으며, 그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지를 심층 분석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전라북도 익산시에 사는 김 모(남)씨는 지난해 초 A코인을 구입했다가 낭패를 봤다. 코인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것인데, 신경 안 쓰고 있던 틈에 갑자기 코인 거래가 중지됐다. 알고 보니 갑자기 ‘부실 코인’으로 분류돼 상장 폐지가 되는 바람에 어디서도 거래가 불가능해 진 것이다.

거래소에서는 이미 일주일 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했는데 이를 확인하지 않은 김 씨의 탓으로 몰아갔다. 김 씨는 “매일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수백만 원 어치 코인이 일주일 사이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느냐”며 “부실 코인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고 답답해했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무대포 상장’과 ‘깜깜이 상장폐지’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코인을 상장시켜 놓고 뒤늦게 정부가 ‘감독’의지를 내비치면 ‘내부 기준’에 따라 상장폐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당국이나 실명계좌 계약을 맺은 은행에서 실사를 시작하면 ‘마포대교’ 검색량이 훌쩍 오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온다.

◆ 5년 동안 550개 코인 상장폐지...이유는 “아무도 몰라”

실제로 코인의 상장폐지 숫자는 최근 5년 동안 500개를 훌쩍 웃돈다.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5년 동안 상위 8개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된 코인수는 541개에 달했다.
 
업비트가 187개로 가장 많았고, 빗썸이 55개, 코인원이 34개였다. 이번에 원화마켓을 오픈한 고팍스도 41개에 달했으며 코빗이 8개로 가장 적었다.

이에 따른 투자자 피해 규모는 공식적으로 추산된 바가 없다. 다만 빗썸이 55종을 상장폐지하면서 1000억 원 수준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힌 터라 여기에 10배인 1조 원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거래소의 상장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거래소'니 '상장'이니 하는 용어 때문에 이를 주식거래와 비슷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식거래의 경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장치가 마련돼 있고 금융당국의 감독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 거래소나 상장사, 금융투자사 등이 까다롭게 관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왕이다. 코인을 거래할 수 있도록 상장 신청을 받고 직접 심사를 진행하며, 신뢰할 수 없는 코인을 다시 폐지하는 일까지 거래소에서 직접 담당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내가 갖고 있던 코인이 하루 아침에 상장 폐지가 돼 휴지조각이 되는 일이 쉽게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후에 구제를 받을 방법도 없다.

더구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장이나 폐지에 대한 기준조차 알기 어려워 대비하기도 쉽지 않다. 코인 상장 기준은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밀에 부치고 있으며, 폐지 역시 ‘내부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부실 코인의 기준을 각 사마다 공시하고 있긴 하지만 ‘정보가 불확실할 때’ 등의 명확하지 않은 내용이 전부다. ‘무대포 상장’, ‘깜깜이 폐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내부 기준' 세워 직접 상장 심사...거래소끼리도 내용 서로 몰라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

각 나라별로 가상자산에 한 정의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상자산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동안 가상자산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다가 지난해 3월에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확정된 것이다.

아직까지 화폐로서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 가치’, ‘전자적 증표’라는 설명만 놓고 봤을 때 ‘주식’에 빗대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주식의 정의는 ‘주식회사의 자본을 나눈 것’이고 주주의 권리가 포함돼 있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가치가 변하고 이를 거래함으로써 수익이나 손실을 보는 형태라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래만 놓고 봤을 때 주식과 큰 차이점은 상장 주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주식은 한국거래소에서 관리하는 코스피, 코스닥 등 시장에 상장돼 거래되지만 가상자산은 각 거래소에 개별로 상장된다.

예를 들어 A주식이 코스피 시장에 상장되면 어느 증권사를 통해서나 거래가 가능하지만 B 가상자산이 C거래소에 상장됐다면 C거래소를 통해서만 매매가 가능하다. B가상자산이 C거래소와 D거래소에 상장되면 양 거래소에서 매매 가능하지만 시세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각 거래소가 상장 신청을 받고 심사를 진행하다 보니 상장에 대한 공정한 기준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질문도 나온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은 “‘내부 기준’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심사 기준이 외부에 공공연하게 공개되면 이 기준만 교묘하게 맞춰 신청하는 코인 발행처(프로젝트)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다.

물론 금융당국 등 외부에서 내려온 가이드라인도 없다. 거래소와 은행이 실명계좌 계약을 맺고 운영하다 보니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내놓은 ‘거래소 취급 코인의 위험평가’ 정도가 기준선이 된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각 거래소에서 내부 기준에 따라 코인을 상장하고 있지만 거래소끼리도 이 내부 기준을 알 수가 없다”며 “A거래소에서 우량코인으로 평가된 가상자산이 B거래소에서는 부실코인으로 전락하는 일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 상장폐지도 거래소 멋대로...하루만에 휴지조각 전락

코인의 심사 기준이나 상장 이슈보다 더 투자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장폐지’다. 거래소에서 갑작스럽게 발행처의 신뢰를 문제 삼거나 코인 자체의 부실을 이유로 거래유의종목이라고 발표하거나 거래중지를 발표하면 당장 시세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여러 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한 코인이 E거래소에서 거래 중지가 됐다면 F거래소에 거래가 몰리기 때문에 코인의 시세가 크게 떨어지거나, 크게 오른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테라‧루나 코인’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거래소마다 상장폐지 시점이 다르다 보니 거래소를 옮겨가며 ‘저가매수’를 하는 세력으로 인해 시세가 요동쳤기 때문이다.

루나 코인은 5월7일 전까지 10만 원 선을 유지하다가 9일 7만 원대로 떨어졌고, 10일 3만 원, 11일 1000원대, 13일 1원으로 급락했다. 거래소들이 상장폐지를 확정한 시점부터 적게는 3배에서 1000배까지 시세가 분 단위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어제까지 거래가 가능했던 코인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는 일도 다반사다. 특정 거래소에만 상장돼 있는 코인이라면 거래할 수 있는 루트 자체가 막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점은 상장 폐지 이유를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발행처에서 직접하는 ‘공시’도 믿기 어려운데다가 상장 심사 기준과 마찬가지로 폐지 기준과 이유에 대해 ‘내부 기준’이라고 안내할 뿐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거래소들이 외부 눈치를 보면서 ‘고무줄 내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특금법 적용을 앞두고 거래소 코인을 점검한다거나, 실명계좌 계약을 맺은 은행들이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면 갑자기 ‘투자자 보호’를 앞세워 부실 코인을 정리했다가 몇 달 뒤 수십 개 코인을 상장시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 ‘정부 눈치보기’에 무더기 상장폐지...당국 검사 예고에 미리 대응

실제로 지난해 특정 시기에 거래소들이 코인을 무더기로 폐지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해 현장컨설팅을 하겠다고 밝히자 거래소들은 코인 정리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업비트가 6월11일 정리 코인 목록을 발표했다. 업비트는 마로·페이코인·옵져버·솔브케어·퀴즈톡 등 5개 코인의 원화 거래를 종료하고, 코인 25개는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업비트는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했지만 내부 기준에 미달해 이 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6월14일 금융감독원이 상폐 코인 명단을 제출하라고 주문하자 잡코인이 많을수록 거래소 평가에 불리하다는 소문이 돌았고 업비트뿐 아니라 빗썸과 중견 거래소 코인빗도 무더기 상폐를 결정했다.
 
빗썸은 6월17일 애프앤비프로토콜, 퀸비 등 2개 코인을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했고, 코인빗은 렉스·이오·판테온·유피·덱스·프로토·덱스터·넥스트 등 8개 코인을 상장폐지하고 28개를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갑작스럽게 코인 시장에서 퇴출되자 발행처에서도 소송 등 강력대응으로 나섰다. 피카프로젝트는 업비트를 상대로 상장폐지 무효소송을 냈고 드래곤베인도 빗썸에 상장폐지 효력정지 소송을 냈다. 어떠한 협의나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퇴출시켰다고 항의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현재 코인의 상장폐지 권한은 거래소에 있다면서, 발행처의 무효 소송을 모두 기각시켰다.

그 와중에 상장폐지 일정 변경, 연기 등으로 시세가 요동치는 일도 발생했다. 코인빗은 코인 상장폐지 및 투자유의 종목을 지정한 이후 항의가 거세자 ‘심사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코인 가격이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면서 유피, 렉스 등 시세가 단기간에 4000% 가까이 올랐다.

◆ 깜깜이 상폐에 코인 가격 피해...상장 시 못 걸러낸 거래소 탓?

거래소의 태도가 바뀐 것은 거래소 승인이 나면서부터다. 지난해 6월 ‘투자자 보호’를 앞세우며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해 말 부터는 다시 신규 상장에 기지개를 폈다.

업비트는 지난해 10월 가상자산 원화마켓 사업자로 승인이 난 이후 3개월 만에 10여 개의 코인을 신규 상장했다. 11월에 승인이 난 코빗, 코인원도 한 달만에 각각 12개, 5개를 상장했고, 지난해 12월에 승인받은 빗썸도 7개를 한꺼번에 늘렸다.

거래소들은 “심사가 끝났기 때문에 다시 상장하는게 아니라 더욱 강화된 내부 심사 기준에 맞춰 깐깐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깜깜이 상장폐지가 반복될수록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를 ‘심사 단계’부터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테라‧루나 코인’ 역시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의 부실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장'한 거래소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5대 가상자산 거래소는 루나 코인을 모두 상장했지만 프로비트와 코어닥스 등 일부 거래소에서는 루나 코인을 상장 단계에서 걸렀다. 이 두 거래소는 루나 코인의 구조가 의심스러워 상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프로비트 도현수 대표는 테라루나 사태가 터진 이후 가상자산특별위원회가 개최한 긴급간담회에서 "상장 심사 당시 알고리즘이 이상하다고 판단해 상장하지 않았다”며 “업계가 발전하기 위해 상장 시스템, 자율공시기능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거래소들의 ‘내멋대로’ 상장, 폐지에 대해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지난해 6월 거래소들이 특금법을 앞두고 부실 코인을 무더기로 폐지하는 일에 대해 ‘당초 코인을 허가한 거래소에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노 의원은 “다단계 코인 · 부실 코인에 대한 정리는 시장의 성숙과 안정화를 위해 불가피한 성장통” 이라고 하면서도, “당초 부실 코인을 주먹구구식으로 상장시켰던 거래소들이 이제와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상장폐지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 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문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