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투자일임업 허용하면 소비자보호 약화?...은행 vs. 증권 공방 치열

금융당국 "국민 편익과 리스크 종합 판단해 결정"

2023-05-30     김건우 기자
은행권이 투자일임업 진출을 꾀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금융당국 결정이 주목을 끌고 있다.

신규 진입을 노리는 시중은행들은 그동안 펀드, 신탁 등 다양한 원금비보장상품을 고객들에게 제공해왔고 역량이 높은 프라이빗뱅커(PB)들을 통한 원스톱 자산관리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에 별 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증권사들은 은행이 투자일임업에 뛰어들면 과당경쟁으로 인한 불완전 판매가 벌어질 수 있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증권사들이 수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운용 능력을 쌓은 것과 달리, 은행들은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투자일임업이란 금융회사가 고객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투자업무를 대행하는 것으로 금융회사의 전문인력이 고객의 투자 판단을 대신하게 된다. 투자 전문가가 고객의 자산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준다는 점에서 고객들은 운용자산수익률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투자일임업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선물회사 등으로 한정되어있다. 은행들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 일임업이 허용되고 있다. 

비이자이익 확대가 시급한 은행들은 현재 ISA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투자일임업을 전면 또는 단계적 허용을 통해 수익 다각화와 자산관리서비스 다양화 등을 노리고 수 년째 금융당국에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 은행 참전으로 투자일임업 대중화 이뤄질 것... "소비자보호 문제없다"

은행들은 증권사보다 방대한 영업점 네트워크를 통해 더 많은 고객들에게 투자일임 서비스를 제공해 대중화를 이끌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보호 역량 강화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우려하는 운용 역량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그동안 고액자산가들을 위한 특화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해왔고 펀드와 신탁 등 다양한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면서 우수한 PB들을 지속 육성하고 운용역량 노하우를 쌓아 기우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 PB들도 예금, 신탁, 채권, 펀드 등 모든 금융상품을 다루고 있고 투자일임업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는 모두 갖추고 있는 상태"라며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면 단계적 허용도 수용할 수 있다는 전향적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증권사들이 주장하는 불완전판매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거 사모펀드 사태 발생시 은행보다 증권사에서 더 많은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의 반대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은행권의 운용 역량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면 단계적 허용을 통해 은행들도 투자일임업을 안전한 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은행들은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에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투자일임업 규제 완화를 요구한 바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은 불완전판매도 많고 소비자보호가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에는 논거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은행들은 평판 리스크도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판매 근절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라면서 "은행은 그동안 안했으니까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판매'가 아닌 '운용'의 영역... 금투업권 "전문성 적어 소비자 피해유발 우려"

반면 증권사들은 은행들이 투자일임업에 대해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투자일임업은 판매가 아닌 운용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은행들이 펀드나 신탁을 판매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증권사들이 운용하는 '일임형 랩어카운트'의 경우 일반고객 대상의 '본사운용형'과 프라이빗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점운용형'으로 구분하는데 은행들이 단기간에 증권사들이 쌓아온 운용역량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대부분이다.  

증권사들은 은행의 고유의 '예대업무'와 성격이 다른 투자 영역에서 은행들이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투자자 피해 유발이 우려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중형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일임업은 결국 운용역량이 승패를 가를텐데 은행들이 단기간에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보수적 성향의 고객들이 많은 은행들이 처음엔 안전한 본사운용형 위주로 가다가 나중에는 리스크가 높은 운용방식을 통해 고객에게 리스크를 가중시킬지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고객관리 측면에서도 증권사들은 고객 수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은행들이 현재 증권사 만큼의 고객관리 서비스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이 주장하는 투자일임업의 대중화가 곧 운용 및 고객관리 역량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주장이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일임업은 증권사 비즈니스에서도 고객 관리가 가장 중요하고 영업점에서도 고객 설명에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업무"라며 "고객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은행에서 다수 고객에게 PB들이 증권사 수준의 고객 전담관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소비자단체들은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을 반대하는 금융투자업권도 최근 CFD 사태를 통해 투자자보호에 미흡한 부분을 반성해야겠지만 은행권의 진출은 전업주의에서 벗어난 것으로 불완전판매 등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최근 CFD 사태를 통해 금융투자상품 영역에서도 증권사들의 소비자보호 역량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은 전업주의를 흔드는 시도"라면서 "소비자보호보다는 결국 업권 간 밥그릇 싸움이 갈등의 원인이지 않겠나"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금융당국은 특정업권의 이해관계가 아닌 '동일기능-동일리스크-동일규제' 관점에서 투자일임업 허용에 대한 리스크 요인 그리고 국민들의 금융편익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