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란제리, 그 성공심리학
분당 매출 1000만원…‘연예인 속옷’열풍
엄정화.황신혜.변정수 등 이름내건 브랜드 인기몰이
섹시한 호피 무늬서 귀여운 핫핑크까지…가격도 저렴
'지나치게 상업적 vs 관련시장 확대 기여’평가 엇갈려
#‘황신혜 입을까, 엄정화 입을까….’ 김모(28.직장인) 씨는 평소 세련된 패션 리더로 정평이 나 있다. 겉옷도 겉옷이지만, 속옷도 잘 챙겨입는 진짜 멋쟁이다. 지금까지 그는 외국 유명브랜드 속옷만 찾았다. 취향이 워낙 까다로워 밋밋한 국내 속옷으론 만족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그가 최근 변했다. 패셔너블한 연예인들이 감각적인 디자인과 색상의 화려한 속옷 브랜드들을 속속 선보이면서 일명 ‘연예인 속옷’에 빠진 것이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유행에 따라서 빨리 바꾸어서 내놓는 옷을 통틀어 이르는 말) 열풍은 속옷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겉옷과 속옷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속옷의 구입 패턴이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몇 달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구입하던 속옷의 구매 주기가 주간 단위로 확 짧아졌다. 오픈마켓 G마켓은 여성 속옷의 재구매율은 약 50%, 구입 주기는 6주에 한 번꼴이라고 밝혔다. 2년 새 약 3.5배가량 짧아진 셈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호응과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흐름은 더 가속화하고 있다. G마켓에 등록된 신규 디자인 상품은 작년 동기보다 38% 늘어난 1500개에 이른다. 등록 주기도 평균 이틀에 한 번꼴로 짧아졌다. 이 중 인기 상품은 5만개가 일주일 새 동날 정도로 왕성한 구매력을 과시한다.
이런 변화의 중심엔 유명 연예인들이 있다. 연예계에서 패션 리더로 소문난 엄정화, 황신혜, 변정수, 이혜영, 채연, 현영 등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들은 가히 폭발적이다 . 단지 ‘연예인 후광효과’ 덕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홈쇼핑 방송에서 이들 브랜드들은 분당 매출이 1000만원을 상회한다. 론칭 3개월 만에 100억원대 매출 달성은‘신화’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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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홈쇼핑 언더웨어 담당 박춘신 MD는 “연예인 속옷의 경우 월 1회 이상 신상품을 내놓아 기존 속옷 브랜드보다 신상품 출시 빈도가 20~30% 정도 더 높다. 게다가 신상품 한 치수당 제품 생산량을 엄격하게 제한해 지나치게 흔해지는 것도 방지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전략이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과 잘 맞아떨어져 ‘연예인 속옷’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렴한 가격도 인기요인 중 하나. 평균 10개의 브래지어.팬티 세트에 사은품 명목으로 각종 추가 상품을 구성해도 20만원을 넘지 않는다. 자수나 레이스, 스팽글 등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된 기존 속옷업체들의 속옷 세트가 10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가격경쟁력도 뛰어나다. 여기에 주된 유통 경로인 홈쇼핑의 특성상 3~6개월 무이자 할부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연예인 속옷의 강점은 고객의 취향을 즉각 반영한 감각적인 제품들을 빠르게 내놓는다는 점이다. 이는 시즌별로 유사한 콘셉트의 신상품을 내놓은 기존 속옷업체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요소다. 섹시한 호피무늬에서 귀여운 핫핑크 색상의 속옷에 이르기까지 매번 ‘무정형’의 다채로운 제품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소규모 란제리업체들을 따라잡기 힘들어졌다. 체형의 보정과 속옷의 기능성에 집중해온 국내 속옷업체들은 ‘한 번 입고 버리더라도’ 다양한 스타일의 속옷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속내를 그대로 반영한 ‘연예인 속옷’에 맥을 못 추고 있는 것.
실제로 지난해 10월 론칭한 변정수의 엘라호야 란제리 ‘시크릿’은 지난 8일까지 총 8번의 방송을 진행해 2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방송마다 평균 5억~6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2006년 150억원, 2007년 160억원 내외의 매출을 올린 현대홈쇼핑의 대표적인 패션브랜드로 성장했다. 지난 2004년 론칭한 황신혜의 속옷 브랜드 ‘엘리프리’도 지난해 현대홈쇼핑의 히트상품 ‘톱10’에 선정될 정도로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CJ홈쇼핑의 속옷 매출은 방송인 이혜영의 속옷 브랜드 ‘미싱도로시 이너웨어’에 일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 마케팅, 홍보, 상품 모델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이혜영의 미싱도로시는 매 방송에서 3000여세트, 평균 4억원의 매출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GS홈쇼핑을 통해 지난해 10월부터 란제리 브랜드 ‘코너 스위트’를 선보인 엄정화는 최근 론칭 3개월 만에 100억원대의 매출을 달성하며 연예인 속옷 브랜드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첫 방송 때 분당 매출은 1000만원이 넘었고, 당초 70분이 예정돼 있던 방송이 20분이나 일찍 종료됐다. 당시 6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는데, 이것은 국내 란제리 사업 역사 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라 지금까지도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연예인 속옷’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최근 5년째 매출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기존 속옷계 강자들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반전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연예인들의 패션 브랜드 론칭과 성공에 대해 ‘지나치게 상업적’,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깎아내리던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예인들의 속옷 브랜드는 침체된 국내 속옷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는 평을 들을 만큼 시장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탄생 ‘백일’, ‘돌 잔치’를 마치고 화려한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연예인 속옷’들이 패션산업의 리더로서 롱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이지.윤정현 기자(ej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