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분쟁조정결과 30~65% 배상... "다수 30~40% 배상 그칠 것"
2024-05-14 김건우 기자
최대 80% 배상까지 이뤄졌던 DLF사태와 사모펀드 사태에 비해 크게 하락한 셈인데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실제 다수 피해자들에게 적용되는 배상비율은 30% 남짓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이 제시한 분쟁조정권고안에 따르면 기본 배상비율이 원금의 20~40% 수준으로 기본배상비율 30~65%였던 DLF 사태에 비해 크게 떨어져 투자자들은 분쟁조정권고안 발표 이후 기본배상비율 상향을 지속 요구해왔다.
반면 은행권에서는 공식 입장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당초 은행들이 금감원의 분쟁조정권고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이번 배상비율 권고안을 기준으로 투자자들과의 분쟁조정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 농협은행 ELT 5000만 원 투자해 절반 손실난 70대 고령 투자자... 65% 배상
지난 13일에 열린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는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SC제일은행 등 은행 5곳의 대표 분쟁사례 1건 씩 상정됐다.
대표 사례 중 가장 높은 배상비율인 65%를 받은 고객은 농협은행에서 주가연계신탁(ELT)에 가입했던 70대 고령 투자자였다. 이 투자자는 지난 2021년 1월과 2월에 각각 홍콩H지수 ELT에 가입했고 투자금액은 총 5000만 원이었다.
그러나 금감원에 따르면 판매사인 농협은행은 투자성향을 부실하게 파악해 '공격투자자'로 분류하는 등 불완전판매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해당 투자자는 투자자금 원천이 주택청약저축 해지자금이었고 신탁통장 겉면에 2.6%라는 수치가 기재되는 등 정기예금 가입 목적이 인정됐지만 해피콜을 실시하지 않는 등 투자자 보호에 있어 부실한 관리가 지적됐다.
분조위는 해당건에 대해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의무 위반 및 부당권유금지 위반에 따라 기본배상 비율 40%를 책정하고 내부통제부실, 금융취약계층, 모니터링콜 부실 등 가산배상비율 25%를 추가해 총 65% 배상비율을 책정했다.
KB국민은행 사례의 경우 지난 2021년 2월 암보험 진단금을 정기예금에 예치하러 온 40대 고객에게 ELT 2건을 가입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고객은 총 4000만 원을 투자했고 1900만 원 가량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감원은 적합성 원칙위반과 설명의무 위반 등에 따라 기본배상비율 30%를 책정하고 △내부통제부실 책임 △예·적금 가입목적 인정 △금융취약계층 인정 △ELS 최초투자 등을 감안해 가산배상비율 30%를 추가해 배상비율 60%를 확정했다.
이 외에도 신한은행과 SC제일은행 고객 대표 사례에 대해서도 분조위는 총 55% 배상비율을 권고했고 하나은행 사례에 대해서는 30%를 권고했다.
특히 하나은행 사례의 경우 40대 고객이 6000만 원 가량을 ELT에 가입했는데 분조위는 적합성 원칙 위반과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해 기본배상비율 30%를 인정하고 내부통제 부실 책임으로 10%포인트를 가산했다. 그러나 신청인이 과거 ELT 지연상환 경험이 있고 매입규모가 5000만 원 이상이어서 10%포인트가 차감돼 최종 배상비율은 30%에 그쳤다.
◆ 금감원 "은행들 투자성향분석 형식적이고 손실위험 축소안내"
금감원은 분조위에 부의된 분쟁건과 자체 검사결과 및 민원조사를 토대로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판단한 결과 투자성향 분석이 형식적이고 손실위험을 축소 안내하는 현상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우선 은행 직원이 투자권유 단계에서 투자성향분석을 형식적으로 진행해 가입자의 객관적 상황에 비춰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권유하는 '적합성 원칙' 위반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손실위험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대상 기간을 20년 대신 10년 또는 15년으로 짧게 설정해 손실위험이 축소된 결과를 활용해 안내하는 등 설명의무 위반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가령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요국 지수가 급락하는 등 시장 상황이 급변했지만 분석기간을 10년으로 축소해 해당 기간을 제외하는 등의 '꼼수'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 외에도 일부 사안에서는 판매직원이 신탁통장 표지에 금액이나 이율 등 확정금리를 제공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투자자들이 오인할 소지가 있는 내용을 기재하는 등 부당권유 금지위반 사례도 있었다.
특히 분조위는 2021년 3월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전후를 기준으로 기본배상비율을 일부 조정했다.
금소법 시행 전 분쟁건에 대해서는 5개 은행 중 4개 은행은 설명의무 위반만 기본배상비율(20%)에 적용했지만 금소법 시행 이후 건에 대해서는 KB국민은행, 농협은행, SC제일은행 분쟁사례에 대해서는 적합성(적정성) 원칙 위반도 적용시켰다.
◆ 소비자단체 "분조위 결과 요식행위다...은행들은 수용할 것"
이번 분조위 결정에 대해 소비자단체들은 실망스럽다는 분위기다. 지난 3월 금감원이 분쟁조정권고안을 발표한 뒤 투자자들은 기본배상비율 상향을 요구했지만 이번 분조위 결정에 따르면 기본배상비율은 큰 변동이 없었다.
특히 이번 분쟁조정에서 최대 65% 배상비율을 받은 투자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30~40% 내외의 배상비율 판단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 ELS의 경우 기존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달리 정기예금으로 오인해 조기상환에 따라 단기간 반복 가입한 사례가 많은데 가입 횟수가 많으면 감점요인으로 적용되고 가입금액에 따른 감점 기준도 2억 원이었던 DLF와 달리 홍콩 ELS 분쟁조정에서는 5000만 원으로 하향된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사모펀드 사태와 비교해보면 기본배상비율은 15%포인트 가량 낮아졌고 5000만 원 이상 투자하거나 투자횟수가 많으면 감점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받게 되는 배상비율은 낮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판매사인 은행들은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사모펀드 사태 당시에도 분조위를 수 차례 열어 배상비율을 결정했는데 이번처럼 한 번에 결정한 것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배상비율 기준안을 가지고 채점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요식행위로 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단체 소송 가능성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는 분위기다. DLF 사태를 반추해보면 △입증 자료가 많고 △투자금액이 많으면서 △배상비율이 낮은 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홍콩 ELS의 경우 투자금액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과 투자자가 최대 20만 명에 달하는 등 방대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소송전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분쟁조정 사례에 오른 은행들은 이 날 분쟁조정 결과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 3월 금감원 분쟁조정권고안에 대해 은행들이 이미 수용 의사를 밝힌 만큼 이번 분쟁조정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조정 결정이 나온 이상 최대한 신속하게 분쟁조정 절차를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날 결정된 분쟁조정안은 투자자와 은행이 조정안을 받은 뒤 20일 이내에 수락할 경우 조정이 성립하고 다른 사례에 대해서는 분쟁조정기준에 따라 자율조정 방식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금감원은 "분쟁조정 대상 5개 은행은 지난 3월에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을 이미 수용해 자율배상 절차를 밟고 있고 이번 분조위 결정을 통해 기본배상비율이 명확히 공개됨에 따라 소비자와의 자율조정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