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은행 비중 84%, 싹쓸이 수준...신한·국민은행 적립금 각 4조 넘어 '압도적'

수익률은 증권사˙생보사 우세

2024-06-28     김건우 기자
오는 7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제도(사전지정운용제도) 본격 시행 1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전체 적립금의 84%가 은행권에 쏠리는 '은행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수익률은 증권사와 생명보험사들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는데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라는 디폴트옵션제도 취지를 고려한다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 본인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상품을 결정하지 않았을 때 사전에 정한 운용 방법대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로 퇴직연금 수익성 제고를 위해 도입됐다. 지난 2022년 7월 도입된 이후 1년 간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전면 시행됐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누적 적립액은 25조6443억 원을 기록했다. 업권별로는 은행권이 21조5576억 원으로 전체 적립액의 84.1%를 차지했다.

이 외에 △근로복지공단(7.1%) △생명보험사(3.8%) △증권사(3.3%) △손해보험사(1.8%) 순이었다. 일반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 점유율이 절반 가량인 점과 비교 디폴트옵션에서 은행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다. 

위험도별 적립금에서는 '초저위험형'을 선택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초저위험 상품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갖춘 은행 적립금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올해 3월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전체 적립금 25조6443억 원 중에서 '초저위험형'은 22조9690억 원으로  비중이 89.6%에 달했다. 이 외에 △저위험(5.6%) △중위험(3.5%) △고위험(1.4%) 순으로 위험도가 낮을수록 적립금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안전지향적인 투자성향을 보이는 은행 고객이 많은 부분이 반영된 결과다. 개별 금융회사 디폴트옵션 적립금 순위에서도 은행들이 줄줄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디폴트옵션 적립금이 가장 많은 금융회사는 신한은행으로 3월 말 기준 누적 적립금이 4조8613억 원, 점유율은 19.2%에 달했다. 특히 신한은행의 전체 적립금의 93.3%는 초저위험형으로 그 금액은 4조5353억 원에 달한다. 

KB국민은행이 4조2549억 원으로 뒤를 이었고 △기업은행(3조7794억 원) △하나은행(2조7068억 원) △농협은행(2조5944억 원) △우리은행(1조9541억 원) 등 6대 은행이 모두 상위권에 올랐다. 비은행권에서는 △근로복지공단(1조8271억 원) △교보생명(2915억 원) △삼성생명(2786억 원) 등이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꾸준히 적립해 한꺼번에 받는 저축이라는 인식이 강해 원리금보장상품에 대한 수요가 많은 편이며 이로 인해 원리금보장상품으로만 구성된 초저위험 포트폴리오에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러한 가입자들의 인식을 이해하고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저위험 이상의 포트폴리오를 선정할 수 있도록 가입자교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은행권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정작 수익률은 증권사와 생명보험사가 두각을 나타냈다.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초저위험형의 경우 1년 수익률 기준 가장 높은 상품은 한화생명 '한화생명디폴트옵션초저위험이율보증형'으로 4.16%를 기록했고 미래에셋생명 '미래에셋생명디폴트옵션초저위험이율보증형보험'이 4.00%, 삼성생명 '삼성생명디폴트옵션초저위험원리금보장상품'이 3.95%를 기록했다. 주로 생보사 상품의 수익률이 높았다. 수익률 상위 5개 상품 모두 원금보장형이었다.

저위험형에서는 삼성증권 '삼성증권디폴트옵션저위험포트폴리오2'가 1년 수익률이 12.47%를 기록해 가장 높았고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증권디폴트옵션저위험포트폴리오1'이 10.97%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은행권에서는 KB국민은행 'KB국민은행디폴트옵션저위험포트폴리오2'가 수익률 9.78%를 기록하며 5위에 오른 점이 특징이다.

중위험형과 고위험형에서도 수익률이 가장 높은 상품은 삼성생명 '삼성생명디폴트옵션중위험BF2'와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디폴트옵션고위험BF1'이 각각 17.36%와 22.87%를 기록하며 가장 높았다. 은행 포트폴리오를 수익률 상위권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금융권에서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 대다수가 은행 또는 초저위험형이 몰려있는 기존 퇴직연금 시장의 문제점이 답습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 도입된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시킨 것부터 패착이라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초저위험형으로 적립금이 몰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폴트옵션 단일 상품 중에서 적립금이 가장 많은 '신한은행디폴트옵션초저위험포트폴리오'와 'KB국민은행디폴트옵션초저위험포트폴리오'는 1년 수익률이 3.08%를 기록해 초저위험 상품군 중에서도 수익률이 하위권에 머물러있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제외해야 금융회사들이 위험성 대비 수익률이 높은 상품 경쟁을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퇴직연금 담당 실무자들이 예금자보호상품을 빼고 원리금 비보장상품을 디폴트옵션에 넣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면서 "결과적으로는 디폴트옵션 제도 설계의 실패에 따른 결과"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디폴트옵션의 원리금 보장상품 쏠림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입자 선택형'으로 이뤄진 제도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선진국 디폴트옵션 제도는 근로자의 선택권을 일정부분 제약하고 회사가 개별 근로자의 퇴직연금 상품을 선택해 운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다만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회사 측에 면책조항이 있어 과감하면서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국내에 도입된 디폴트옵션 제도는 근로자가 선택해야하는 '선택형'으로 되어있다. 해외와 달리 회사 면책 조항이 없어 손실 발생시 회사 측이 책임을 져야 해 결과적으로 운용의 책임을 근로자가 가지도록 설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의 퇴직연금 계약구조에서는 디폴트옵션에서 실적 배당형으로 제시했을 때 단기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데 손실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법적 분쟁의 여지가 있다"면서 "이 부분을 극복하기 힘들어서 근로자가 직접 선택하게 만드는 형태로 디폴트옵션이 설계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디폴트옵션 제도는 선택지 중에 원리금 보장상품도 그대로 들어가다보니 원리금 보장에 치중되어있는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의 비합리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제도임에도 결과적으로는 원리금 보장 비중이 더 높아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