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협 공들인 '디딤펀드' 한달, 가입자들 시큰둥...새 상품 대부분 수탁고 1억 미만
2024-10-23 이철호 기자
'디딤펀드' 흥행을 위해 기존 퇴직연금 펀드와 차별화된 상품을 선보이고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 제도) 편입을 통해 가입 채널을 확대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신규 상품 5개 중 3개, 수탁고 1억 원 미만
23일 펀드가이드에 따르면 10월 21일 기준 '디딤펀드' 신규상품 15개 중 9개가 출시 이후 수탁고 1억 원을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별로는 흥국자산운용의 '흥국디딤연금플러스'가 수탁고 200억 원을 넘었을 뿐이며 나머지 '디딤펀드' 신규 상품은 수탁고 규모가 10억 원 미만이었다. 이마저도 흥국자산운용이 모그룹 계열사로부터 초기 설정자금 200억 원을 확보함에 따른 것이다.
중소형 운용사는 물론 대형 운용사도 '디딤펀드' 상품 흥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디딤CPI+'는 수탁고 규모가 5400만 원, KB자산운용의 'KB디딤다이나믹자산'도 3100만 원에 불과하다.
기존 BF펀드를 '디딤펀드'에 맞춰 개편한 상품 역시 신한자산운용의 '신한디딤글로벌EMP'가 개편 후 1개월여 만에 수탁고가 16억6900만 원 증가한 것 이외에는 수탁고가 10억 원 이상 늘어난 펀드가 없었다.
일부 상품은 '디딤펀드'로 바뀐 후 오히려 수탁고가 줄어들었다. HDC자산운용의 'HDC디딤모아주고막아주는' 펀드는 9월 25일 당시 수탁고가 129억4900만 원이었으나 10월 21일에는 118억7800만 원으로 펀드 개편 후 수탁고가 10억7100만 원 줄었다.
이외에 키움투자자산운용의 '키움디딤더높이EMP', KCGI자산운용의 'KCGI디딤프리덤평생소득TIF' 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트러스톤디딤백년50EMP자산배분' 펀드 역시 '디딤펀드'로 바뀐 뒤 오히려 수탁고 규모가 감소했다.
디폴트옵션에서 고를 수 있는 연금 상품으로는 TDF(생애주기펀드)와 BF가 있다. TDF가 펀드 운용기간에 따라 자산 비중이 자동으로 조정된다면 BF는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 비중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 기존 펀드와의 차별성 부재 지적돼…은행에서 상품 찾기 힘들어
금투협과 자산운용업계는 '디딤펀드'를 통해 TDF 대비 규모가 작은 BF펀드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실적배분형 상품 비중을 높여 국내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극복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출시 초 가입 규모가 미미함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우려했던 상황이 일어났다는 분위기다. '디딤펀드' 출시 전부터 기존에 판매해 온 BF펀드와 큰 차이점이 없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출시 후 연금 가입자들 역시 기존 상품과의 차별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25개 자산운용사가 선보이는 '디딤펀드' 상품 중 10개가 기존 펀드를 '디딤펀드'로 재출시한 것이다. 자산배분 역시 모든 '디딤펀드' 상품이 주식 비중 50%를 넘지 못하는 등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증권사 관계자는 "상품 구조가 기존에 나온 BF펀드와 차이가 없어 가입자 입장에서는 다른 펀드에서 갈아탈 요인이 충분하지 않다"며 "수익률이나 안정성 측면에서 '디딤펀드'만의 차별화된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증권사 이외에 다른 채널에서는 '디딤펀드' 상품 가입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특히 퇴직연금 적립금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은행의 경우 △국민은행 1개 △신한은행 1개 △우리은행 6개 △하나은행 2개 △NH농협은행 4개 등에 불과하다.
금융업권에서는 은행·보험사의 경우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찾는 고객이 많기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 상품을 찾는 고객이 많은 증권사와는 수요가 다르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디딤펀드' 상품의 디폴트옵션 편입이 이뤄져야 은행에서의 판매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디폴트옵션에서 퇴직연금을 판매하려면 고용노동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수익률을 통해 트랙레코드가 축적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업권 관계자는 "디딤펀드가 디폴트옵션 승인을 받아야 은행들이 판매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며 "출시 후 각 사의 트랙레코드를 보고 디폴트옵션 편입 논의를 해볼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금투협은 오는 연말부터 '디딤펀드' 마케팅이 본격화되면서 수탁고도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이달 말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되면서 관련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다 보니 판매사 입장에서는 '디딤펀드' 마케팅에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세액공제 금액이 들어오는 연말부터 '디딤펀드'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연금 사업자 중 금투협 회원사인 증권사에서 먼저 판매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며 "같은 상품이라도 은행은 증권사보다 판매 승인 절차가 오래 걸리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