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개봉이 제품 훼손?...상태 확인했을 뿐인데 반품 거부로 갈등 잦아

전자상거래법 위반 소지 다분

2024-11-13     이은서 기자
#사례1=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유 모(여)씨는 지난 10월 네이버쇼핑을 통해 김치냉장고와 함께 김치통 3개 세트를 8만 원에 구매했다. 냉장고 칸마다 사이즈가 다르다는 사실을 배송 직후 알게 돼 곧장 김치통 반품을 신청했다. 공지에는 ‘제품을 확인하기 위해 포장을 훼손한 경우’는 반품 불가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돼 있었으나 판매자는 박스를 열었다는 이유로 반품을 거절했다. 네이버쇼핑 고객센터도 “구매확정을 누른 후여서 반품은 판매자와 직접 소통해 달라”는 답변에 그쳤다. 유 씨는 “포장 박스만 열고 김치통을 감싼 비닐팩은 뜯지도 않았다. 이 경우 반품을 거절하는 건 전자상거래법 위반인데 실수로 구매확정을 눌렀어도 중개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억울해했다.    

#사례2=강원도 인제군에 사는 안 모(남)씨는 지난 7월 GS샵 온라인몰에서 12만 원 짜리 믹서기를 구매했다. 상품을 받고 보니 작동법이 어려워 보여 반품을 원했으나 판매자는 박스를 개봉해 받아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 판매 페이지 반품 규정에 ‘제품 박스 개봉 후 단순 변심에 의한 교환 및 환불이 불가하다’는 고지가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고객센터에서도 처음에는 같은 이유로 반품 불가를 안내했으나 8월에 “내부 반품 규정에 적용되는 사안”이라며 환불이 진행됐다. 안 씨는 “뒤늦게 환불은 받았지만 전자상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 자체 규정으로 반품을 막는 판매자를 걸러낼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전자상거래법상에는 상품 포장 박스를 개봉해도 단순 변심으로 반품이 허용되나 대부분 온라인몰 판매자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박스 개봉을 제품 훼손으로 보고 반품을 제한해 소비자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

전자상거래법 제17조(청약철회)에 따르면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재화가 멸실되거나 훼손된 경우 소비자는 청약철회를 할 수 없다. 다만 재화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는 제외한다는 내용을 명시한다.

복제가 가능한 일부 상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산품은 단순 박스 포장 훼손만으로 청약철회를 제한할 수 없는 셈이다.

온라인 거래는 비대면 구매라는 특성상 상품 확인을 위해 박스 개봉이 불가피함에도 판매자들이 전자상거래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플랫폼 차원에서도 적극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서 입점업체의 위반 행위를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쿠팡, 네이버쇼핑, G마켓, 옥션, 29cm, GS홈쇼핑, CJ온스타일, 현대홈쇼핑 등 종합 온라인몰, 패션몰, 홈쇼핑 온라인몰 등 업체를 구분하지 않고 벌어지는 문제다.
 
▲ 일부 온라인몰 판매자들은 박스 개봉 시 단순변심에 의한 반품이 불가하다고 사전 고지하고 있다

온라인몰 판매자들 상당수는 사전에 ‘박스 훼손 시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이 불가하다’고 고지해 면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상거래법 위법 소지가 있어 플랫폼 차원의 모니터링을 통해 차단돼야 하나 걸러지지 않는 셈이다. 여기에 일부 온라인몰은 판매자들의 자체 규정을 앞세우며 반품을 거부하기도 해 소비자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네이버쇼핑, GS홈쇼핑 등 온라인몰 운영업체들은 판매자들에게 전자상거래법에 따른 반품 규정을 준수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니터링을 통해서도 관리하지만 수많은 입점 판매자들의 고지 사항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해결하는 식이라는 입장이다.

GS홈쇼핑 측은 “위 안 씨의 사례는 8월5일 GS홈쇼핑의 반품 규정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반품 처리했다. 또한 박스 훼손 시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불가라는 판매자 공지도 바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네이버쇼핑 측은 “소비자가 고객센터에 문제를 제기하면 실제 상품 훼손 없이 박스만 개봉했는지 등 사실 내용 파악 후 적극 중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전자상거래법 내용대로 복제가 가능한 CD, DVD, 디지털콘텐츠는 박스 훼손 시 청약철회 제한 조건에 해당되나 이외의 공산품, 전자제품 등과 같은 품목의 경우 단순 박스 훼손만으로 청약철회를 막는 것은 전자상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전자상거래법에 포장 박스 훼손 시 환불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상품의 종류에 따라 공급자가 손해를 보는 구조가 있기 때문에 업체마다 제각각으로 자체 규정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반품 가능 규정을 상품마다 구체화하고 소비자가 알기 쉽도록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