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을사년, 재계 총수 신년사 키워드는 ‘사업 경쟁력 강화’

2025-01-02     선다혜 기자
을사년(乙巳年) 새해 재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경쟁력’이다. 지난해 재계의 핵심 키워드가 변화와 혁신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외 경제적‧정치적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미래 생존을 위한 경쟁력 확보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올해 재계는 인공지능(AI)‧스마트솔루션‧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 분야 육성 및 기술개발 등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지난이행(知難而行)’을 제시했다. 지난이행이란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최 회장은 “지정학적 변수가 커지고 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이 격변하는 경영환경을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경험했다”면서 “새로운 시도와 혁신은 언제나 어렵다. 저부터 솔선수범하며 용기를 내 달릴 것이니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최 회장이 AI를 미래 원동력으로 낙점하면서 SK그룹은 이와 관련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SK텔레콤은 그룹 전반의 AI 역량 결집을 위해 AI R&D 센터를 신설했다. 더불어 지주사인 SK에도 AI 혁신과 성장지원 조직을 새롭게 만들었다.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SK텔레콤‧SK스퀘어 등에는 AI 관련 인재들을 일선에 배치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중순 공개한 신년사를 통해 고객 중심 경영 철학과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 사업을 강조했다. 

구 회장은 “고객의 시간 가치를 높이고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AI와 스마트솔루션, 건강한 삶과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바이오, 클린테크까지 그룹 곳곳에서 싹트고 있는 많은 혁신의 씨앗들이 미래 고객을 미소 짓게 할 반가운 가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가 꿈꾸는 미래 모습으로 구 회장은 △AI 로봇의 일상화 △헬스케어와 혁신 신약을 통한 삶의 질 향상 △탄소와 폐기물 감축과 이를 통한 유용한 자원 생산 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LG그룹은 오는 2028년까지 5년간 100조 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중에서 50조 원 이상은 신성장동력인 ABC사업에 집중한다. 신사업 육성에 대한 구 회장의 집념은 정기 임원 인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단행된 2025년 임원 인사에서 ABC 분야 신규 임원 비중이 23%를 차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일 신년사에서 그룹 쇄신과 경쟁력 회복을 강조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속된 유동성 문제로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놓게 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올 한 해 더욱 강도 높은 쇄신이 필요하다”며 “이른 시일 내 핵심 사업 경쟁력을 회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체질 개선을 통해 재도약의 토대를 다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재무전략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재무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롯데그룹은 혹독한 체질 개선을 추진 중이다. 2조500억 원 규모 롯데케미칼 회사채 조기상환 위기를 넘기기 위해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걸었다. 또 롯데그룹의 신사업이자 ‘오너 3세’ 신유열 부사장이 진두지휘했던 롯데헬스케어 사업을 접기로 했다. 이밖에 롯데백화점‧롯데마트 등 실적이 부진한 점포를 매각하고 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어떤 위기에도 흔들림 없는 실행력으로 한화의 미래를 만들어 가자"며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희망적인 상황이라도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절박함으로, 어떠한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을 한화만의 실력을 갖추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우리의 방산 사업 수출은 처음으로 내수를 넘어섰고, 해양 업은 기존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딛고 있다. 금융사업은 동남아에서 시작해 글로벌 자본의 중심인 미국시장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다”도 덧붙였다. 

한화그룹은 글로벌 해양산업 선도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 인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제반 절차를 최종적으로 완료했다. 인수는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참여하며 인수 금액은 1억 달러(1448억 원)다. 
 
▲(왼쪽부터) 최태원 신세계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본업 경쟁력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본업 경쟁력은 '1등 고객'을 기반으로 한다”면서 “올해가 탄탄한 본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혁신과 변화의 적기”라고 역설했다. 

신세계는 이마트‧스타필드‧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서 유통업계 강자로 통했다. 하지만 네이버와 쿠팡 2강 체제로 굳어진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알리바바 인터내셔널과 손을 잡고 인터내셔널 합작법인(JV) 설립하고 있다. 합작법인이 설립되면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는 자회사로 편입된다. 양사의 출자 비율은 5대 5이며, 신세계그룹은 G마켓을 현물 출자 방식으로 참여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한층 커져 지난해보다 힘든 한해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다”면서 “예측불가(Unpredictable)하고 불안정(Unstable), 불확실(Uncertain)한 ‘3U’ 상태의 경영환경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은 안정을 기조로 기회가 오면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자”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AI 관련 수요급증과 세계 전력시장 확대 기회 속에서 △대형원전 △소형모듈원전(SMR) △수소연료전지 △전자소재 사업에서 속도를 높여 시장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산그룹은 지난 7월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된 이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소규모 사업재편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두산퓨얼셀파워BU(비즈니스유닛)의 건물용 수소 연료전지 사업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또 같은날 두산테스나도 자회사인 엔지온을 흡수합병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지배구조 개편 무산에 따른 차선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끼리 양수와 흡수합병을 통해 반도체와 수소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우리 그룹이 성장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고객과 시장, 비즈니스 생태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성장의 동인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아무리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며 “온 힘을 모아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자”고 당부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선다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