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30년, 위기의 홈쇼핑-上] 쿠팡 4배 성장할 때 첩첩규제와 송출수수료로 신음

2025-01-21     이정민 기자
올해로 출범 30년을 맞은 홈쇼핑 업계가 사면초가에 처해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각광받았지만 TV 홈쇼핑이 성장 한계에 부딪친 데다 송출수수료 부담과 신사업의 더딘 성장으로 수익성마저 악화 일로에 있다. 30살 홈쇼핑의 위기를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각광 받던 홈쇼핑 업계는 지난해 말 ‘블랙 아웃’ 사태를 맞았다. CJ온스타일(대표 윤상현)이 송출수수료 갈등 끝에 지난해 12월 5일 자정을 기해 딜라이브와 아름방송, CCS충북방송 등 케이블TV에 방송 송출을 중단한 것이다. 블랙아웃 사태는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몰과의 경쟁에 밀려 마이너스 성장 위기에 몰린 홈쇼핑 업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으로 꼽힌다.

블랙아웃 사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덕분에 3주만에 일단락됐지만, 송출수수료 갈등은 계속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고 홈쇼핑 업계의 위기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TV 홈쇼핑은 1995년 케이블 TV가 출범하면서 국내 유통 시장에 새롭게 등장했다. GS샵(舊GS홈쇼핑, 대표 허서홍)의 전신인 한국홈쇼핑과 CJ온스타일(舊CJ오쇼핑)의 전신인 HSTV가 1995년 8월 시험방송을 시작했고, 그 해 10월 본격적으로 방송을 송출하면서 TV 홈쇼핑 시대의 막이 올랐다. IMF사태 직후에는 연평균 성장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고 2001년에는 우리홈쇼핑, 농수산홈쇼핑, 현대홈쇼핑 등 3개 채널이 추가되며 가파른 성장을 지속했다.

그러나 초고속인터넷 보급에 이어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온라인 쇼핑몰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며 홈쇼핑의 성장을 가로 막기 시작했다.
 
◆모바일 쇼핑 플랫폼의 영상 콘텐츠 확대로 한계 부딪힌 홈쇼핑

TV 홈쇼핑은 급변하는 유통 환경 속에서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를 받아온지 오래다. 대표적으로 오픈마켓과 모바일 쇼핑에도 홈쇼핑의 강점이던 영상과 생방송이 확대되면서 여전히 까다로운 방송심의 규정의 제한을 받고 있는 홈쇼핑에 불리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4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안국약품 맥주효모 비오틴’을 판매한 홈쇼핑 방송이 일반 식품을 탈모 개선 등 모발 건강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홍보했다는 이유로 행정 지도를 결정했다. 그러나 라이브커머스에서는 여전히 ‘풍성한 모발을 위한 맥주효모’라는 광고로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홈쇼핑 업체들이 방송 심의로 고민하는 사이 비교적 규제가 적은 라이브커머스 사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업계 1위로 꼽히는 네이버 쇼핑라이브는 2020년 출시 이후 불과 11개월 만에 누적 거래액 2500억 원을 달성한 데 이어 3년이 채 안 돼 거래액 1조 원을 초과하는 등 신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은 방송 심의 규제부터 방송통신발전기금 등 여러 책임 하에 있는 상황”이라며 “비교적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이커머스 업계는 계속 성장을 해오고있는데 홈쇼핑은 규제에 가로막혀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령 다이어트식품을 판매할 때도 간접적이고 제한적인 표현을 쓸 수 밖에 없고 표현 규제가 까다롭다보니 공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돼서 성장에 제한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TV 홈쇼핑은 소비자 충성도가 낮다는 점도 경쟁력 약화의 요인 중 하나다. 이커머스 등 모바일 쇼핑은 소비자가 직접 검색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인 반면, TV 홈쇼핑은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접한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흐름은 주요 홈쇼핑 업체들의 실적 악화로도 이어졌다.

CJ온스타일의 경우 2019년 매출 1조 4744억 원, 영업이익 1494억 원, 영업이익율 10.1%를 기록했으나 2023년에는 매출 1조 3378억 원, 영업이익 692억 원, 영업이익율 5.2%로 크게 하락했다. 롯데홈쇼핑(대표 김재겸)은 2019년 영업이익율 12.2%에서 2023년 0.9%로 급감하며 실적 악화가 두드러졌다. 현대홈쇼핑(대표 한광영) 역시 2019년 영업이익율 7%에서 2023년 2.9%로 하락했다.

반면 GS샵은 비교적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하며 2023년 영업이익율 10.3%를 기록했다. 홈앤쇼핑(대표 문재수)과 NS홈쇼핑(대표 조항목)은 영업이익율이 다소 개선됐으나 업계 전체적으로는 성장 둔화와 수익성 악화가 공통적인 흐름으로 나타났다.

주요 6개 업체의 평균 영업이익율이 2019년 9.2%에서 2023년 5.4%로 떨어지며 홈쇼핑 업계의 전반적인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커머스 등 온라인 유통업체와의 경쟁 심화에 송출수수료 부담 가중

홈쇼핑 업계의 위기는 온라인 플랫폼, 특히 쿠팡과 같은 대형 이커머스 업체와의 경쟁 심화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2017년 홈쇼핑 6개 사의 매출 합계는 5조495억 원으로 쿠팡(2조6814억 원)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었으나 2023년에는 쿠팡이 31조8298억 원으로 급증하며 홈쇼핑 6개 사의 매출 합계(6조5099억 원)를 압도했다.

아울러 수익성 면에서도 차이가 더욱 커졌다. 2017년 홈쇼핑 6개 사의 영업이익 합계는 6815억 원이었지만 쿠팡은 2023년 영업이익 6147억 원을 달성하면서 홈쇼핑 6개 사 합계(3094억 원)의 두 배를 초과하는 실적을 기록했다.
 
여기에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송출수수료 협상 난항과 TV 시청 인구 감소라는 악재까지 더해지고 있다. TV 시청 인구 감소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고 수익성 악화의 주범인 송출수수료 관련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은 ▲2020년 189분 ▲2021년 186분 ▲2022년 183분 ▲2023년 182분으로 줄어들어 우하향 곡선을 나타냈다.

반면 홈쇼핑업계의 '자릿세'이자 고질병으로 자리잡은 송출수수료액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끝없이 치솟는 모양새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홈쇼핑이 전성기를 누리던 2017년 홈쇼핑 6개사의 방송 매출 대비 송출수수료 비율 평균은 42.6%였다. 그러나 2018년부터 50%를 넘어섰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2019년 51.4% ▲2020년 58.2% ▲2021년 64% ▲2022년 69.1%로 증가했으며, 2023년에는 74%까지 치솟아 처음으로 70%대를 기록했다.

홈쇼핑 업체들이 방송으로 상품을 판매해 1000원을 벌면 740원은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끝없이 상승하는 송출수수료는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홈쇼핑 업계와 유료방송사업자 간의 갈등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나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홈쇼핑 업계에서는 송출수수료를 수익성을 갉아먹는 주범으로 꼽지만, 유료방송사업자에게는 주요 매출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 벌어졌던 블랙아웃 사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개입으로 약 20일 만인 12월 26일부터 송출을 재개하며 일단락됐지만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양자가 합의점을 찾은 것이 아니라 ‘선 송출 후 합의’ 형식을 취한 것에 불과하다. 매년 수수료 협상이 반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언제든 갈등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매년 동일한 갈등이 반복되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앞서 2023년 3월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대가검증협의체를 가동했다. 이는 홈쇼핑 사업자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계약의 공정성을 논의하는 기구지만 실제로는 법적 강제성이 없어서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는 면세점 업계에서는 잇따라 수수료 인하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홈쇼핑 업계에도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 업계의 가장 무거운 짐은 단연 송출수수료”라며 “방송 매출액의 7배, 영업이익의 5~6배 정도가 송출수수료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3년 전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홈쇼핑 업계 전반적으로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었다. 송출수수료도 이에 맞춰서 책정이 돼야하는데 계속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전문가들은 강제력을 가진 중재 위원회나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홈쇼핑 수수료를 책정할 때 최저임금위원회처럼 중재 및 의결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며 “정기적으로 홈쇼핑 사업자, 유료 방송 사업자,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논의하고 중재 기구의 심의를 거치는 방식도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제언했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홈쇼핑 산업이 위기를 맞은 원인에 대해 “TV인구 감소로 기성시대를 제외한 젊은 세대의 발길을 끌지 못하는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며 “TV채널 내에서 정확한 타겟을 잡아서 콘텐츠 구성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매이력 등 세그먼트 분석을 통해 콘텐츠 기획을 고객의 관심사에 맞춰서 최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