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누수 피해 보상은 '하늘의 별 따기'?...원인 규명·보상범위 산정에 하세월  

"설치 문제" vs. "이용 과실"…분쟁 장기화

2025-04-28     선다혜 기자
# 사례1=전주에 사는 김 모씨(남)는 A 렌탈업체 정수기를 설치한 지 10일 만인 지난 3월 아랫집 천장에서 누수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원인을 찾아본 결과 정수기 물 배출 호스가 오수관에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김 씨는 직접 배출 호스를 오수관에 삽입했고 이후에는 누수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발 빠른 대처가 오히려 문제가 됐다. 김 씨는 "A렌탈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담당자는 '현장을 건드렸기 때문에 해줄 게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 사례2=부산에 거주하는 이 모씨(남)는 지난해 11월 어머니 댁 아래층 주방 천장에서 누수가 생긴 것을 확인했다. 누수 탐지 기사를 불러 확인한 결과 B 가전업체서 렌탈한 정수기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이 씨는AS를 신청했고 방문한 서비스 기사는 문제가 된 호스를 교체하며 “누수로 인한 피해도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 씨는 “어머니 집과 아래층 이웃 모두 피해를 입었는데 업체는 시간만 끌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 사례3=대전에 사는 박 모씨(남)는 2023년 10월 C 렌탈사의 정수기 이전 설치를 받은 직후 아랫집 천장에서 누수를 확인했다. 현장에 온 AS 기사는 처음에는 “설치가 잘못됐다”고 인정했으나 이후 입장을 바꿨다. C렌탈업체 역시 책임을 부인하며 보상에 나서지 않았다. 박 씨는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자 이듬해 3월 정수기 사용을 중단하고 철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철거는 6개월이 지난 9월에서야 진행됐다. 박씨는 "그로부터 두 달 뒤 누수 보상은 커녕 위약금으로 약 53만 원을 통보 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사례4=강원도에 거주하는 김 모씨(남)는 지난 2월 D 가전업체 정수기 연결 부위에서 누수가 발생해 본인 집과 아래층까지 피해를 입었다. 현장을 확인한 AS 기사는 “설치상 문제로 누수가 생긴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제조사 측은 “문제는 정수기가 아닌 타 업체의 음식물 처리기 설치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책임을 부인했다.

# 사례5=세종시에 사는 박 모씨(남)는 지난 9월 E 가전업체의 정수기를 설치한 후 올해 3월 누수가 발생해 골치를 썩고 있다. 설치 당시 정수기 호스와 싱크대 호스를 케이블 타이로 고정하는 작업이 진행됐고, 이로 인해 싱크대 호스 라인이 비틀린 채 고정되면서 그 틈으로 누수된 것. 박 씨는 제조사에 보상을 요구했으나 업체는 "정수기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대부분의 정수기는 수도와 배관을 연결해 사용하는 구조상 누수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누수 원인이 쉽게 판명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제품 결함인지 설치 오류인지 또는 소비자의 과실인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28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정수기 누수로 피해를 입어 구제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정수기 기기 결함으로 출수구 등에서 물이 계속 나와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정수기와 수도 배관 등 결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설치 문제로 누수되는 사례다.

이 경우 바닥재 들뜸, 벽지 손상, 곰팡이 발생 등은 차치하더라도 아랫집 등 이웃으로까지 누수가 번지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원인이 명확하게 파악되기 전까지는 보상도 요원한 상황이라 수리나 보수 비용이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LG전자 ▲코웨이 ▲쿠쿠홈시스 ▲청호나이스 ▲SK매직 ▲현대렌탈 등 대부분 가전, 렌탈업체 모두 이러한 분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수 문제가 접수되면 제조사들은 AS 기사를 보내 현장을 점검하고 원인을 분석해 보상 여부를 판단한다. 제품 결함인지, 설치 미흡인지 아니면 다른 외부적인 환경 요인인지를 확인하고 보상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 누수로 인한 피해 보상 규정있지만…'원인·보상 범위' 놓고 갈등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가전제품설치업 부문에 따르면 사업자의 가전제품 설치 하자로 인해 발생한 소비자의 재산 및 신체상의 피해를 사업자가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렌탈서비스업 부문에서도 업체 측 문제로 피해가 발생했을 시 무상수리·교환 및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수 발생 시 소비자들이 보상을 받기란 쉽지 않다. 누수 원인을 두고 소비자와 업체 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받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상 범위를 둘러싼 입장 차도 존재한다. 소비자들은 2차 피해까지 보상을 요구하는 반면 업체들은 직접적인 손해로 입증된 경우에만 보상에 나서기 때문이다. 또 보상이 결정된 이후에도 지급이 지연되면서 갈등이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SK매직 측은 "누수와 관련한 접수를 받으면 24시간 내 긴급 출동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가 파견돼 현장을 살펴보고 정수기 결함의 문제일 경우 보상한다"며 "다만 누수의 원인이 정수기가 아닐 때도 있다. 이 경우 소비자와 원만하게 합의를 진행해서 협의점을 도출한다"고 밝혔다. 

코웨이 역시 누수와 관련한 피해 발생할 시 제품 하자나 설치 미흡 등이 원인인 경우는 피해 범위에 한해서 보상하다고 설명했다. 쿠쿠홈시스는 “정수기 누수 문제라는 게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게 어려운 경우도 많다”면서 “소비자 보상 등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청호나이스 관계자는 “자사의 문제로 누수가 발생했을 때는 100% 보상한다“면서 “고객의 과실로 누수가 발생하더라도 도의적인 책임으로 어느 정도 보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부분은 케이스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협의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사도 이들 업체와 유사한 기준을 가지고 누수에 대한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교수는 "원인 불명이라 할지라도 무상 수리 기간이나 품질 보증 기간에는 사업자가 더 책임을 지는 게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기간이 지나면 재설치 비용 보상이나 신제품 보상 판매 등의 융통성 있는 해결책을 제공하는 게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선다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