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특화점포 실종 사태下] 제휴사도 소비자도 실익 없어 외면... 은행 대리업이 대안될까?

2025-04-30     박인철 기자
은행권의 점포축소로 소비자들이 불편을 호소하면서 그 대안으로 등장했던 '특화점포'가 시간이 지날수록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들은 소비자접근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다양한 형태의 특화점포를 선보였지만 이후 확장성에 문제를 보이며 점포수가 전혀 늘지 않는 상황이다. 은행 특화점포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진단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2월 하나은행이 시니어 특화점포 2곳을 낸 것을 마지막으로 공동점포나 편의점특화점포 같은 새로운 점포가 새로 문을 열지 않으면서 은행의 특화점포 실험은 사실상 완전한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시중은행들이 의욕적인 출발과 달리, 빠른 속도로 특화점포 전략을 접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편의점 특화점포는 은행과 편의점 모두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은행 창구가 편의점 내 입점한다 해도 모객효과로 인한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가맹점 형태가 대부분인 편의점은 은행과 편의점 업체 간 제휴뿐만 아니라 개별 가맹점주의 의사결정도 특화점포 입점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은행, 편의점 업체, 가맹점주까지 모두 만족할 만한 입지 선정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국민은행x신한은행 공동점포

◆유통업계 "시너지 없다" 외면...공동점포 이해상충으로 위치선정부터 난항

은행과 제휴해 특화점포를 냈던 편의점 업체는 개점도 어렵고 시너지 효과도 없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쏟아냈다.

A편의점 관계자는 “가맹점주의 동의가 필요한데 수요 조사를 해보면 딱히 원하는 점주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또 "편의점 매출 확대 등 시너지가 없어 더 이상 편의점 특화점포가 늘긴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B편의점 관계자는 “애초 은행과 제휴할 때부터 특정 지역, 연령층을 겨냥한 의도가 컸다"며 "처음부터 수익과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편의점의 경우 트렌드를 따라 가는 게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편의점 점포 형태가 복잡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은행점포를 편의점 안으로 들이는 것이 본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두 은행이 한 공간에 입점한 공동점포는 처음부터 경쟁관계인 은행간의 이해상충이 크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입점과 폐점을 위해 두 은행 간에 면밀한 협의가 요구되는데 기존 영업망을 감안해 공동 점포의 위치를 선정하는 작업부터가 난항이었다. 

A은행 관계자는 공동점포 개설 당시 점포 선정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졌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위치 선정이 가장 큰 골치였다. 기존 점포 인근에 공동점포를 새로 낼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양사의 지점이 동시에 폐점되는 경우가 아니면 의견 절충이 어려웠다. 수익이 걸린 사안이라 서로 양보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협상에 진척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위치가 결정된 뒤에도 비용을 어떻게 분담해야 할 지를 조율하면서 입장 충돌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전언이다.

어렵게 점포를 낸 뒤에는 점포 운영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드러났다.

B은행 관계자는 "작은 점포를 두 은행이 나눠 쓰다 보니 투입할 수 있는 직원 수가 적어서 취급업무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경쟁사와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을 하다보니 지점 차원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것도 곤란했다"고 회고했다.

은행권에서는 대면채널 이용객 증가로 인해 점포 내점 고객이 꾸준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풀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반쪽 짜리 점포를 추가로 내는 게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각종 특화점포들이 우후죽순 등장했지만 결국 기존 오프라인 점포 기능을 그대로 흡수하지 못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해 발길을 끊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편의점 점포에서는 기존 은행 점포 업무의 80% 이상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단순 입출금 외에는 화상을 통해 상담을 해야 하는 사실상 비대면 채널 서비스가 대부분이어서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난이도가 높은 주택담보대출, 방카슈랑스 등의 업무는 애초에 편의점에서 이용이 불가능하다. 

은행 공동점포의 경우 대면 채널로 운영되지만, 담당 직원이 적어서 대출 업무는 배제된다. 입출금 업무도 일일 거래한도가 1000만 원 남짓한 수준이어서 고액 송금을 하려면 인근의  단독 점포를 찾아야한다. 
 
C은행 관계자는 “특화점포는 내부보다 외부 반응에 부응하기 위한 측면이 큰데 편의점 점포나 공동 점포는 제공되는 서비스가 한정적이라 모객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 금융당국 추진 중인 은행 대리업 해법될까?...오히려 '점포폐쇄' 가속화 우려도

이렇듯 특화점포 실험이 사실상 멈춰버린 상황에서 최근 들어 은행권의 특화점포 형태는 ‘은행대리업’ 쪽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우체국이나 상호금융 등 비은행 기관에 은행 고유 업무를 허용하는 제도다.

은행 대리업은 우체국, 저축은행 등이 은행을 대신하여 예금, 대출, 환전 등 은행의 고유 업무 중 일부를 수행하는 제도다. 금융 당국에서도 지난달 점포 축소에 따른 활성화 방안으로 ▲은행대리업 제도 도입 ▲은행권 공동 현금자동입출금기 및 편의점 입·출금 서비스 활성화 등의 내용을 발표했다.

연내 시범운영 개시를 목표로 6월까지 은행과 은행대리업 희망사업자 간의 합의를 거칠 예정이다. 7월에는 은행대리업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고 3분기 은행법 개정안을 마련 해 발의하는 것이 목표다.

금융위는 은행대리업이 본격화하면 다양한 금융서비스 비교 가능성을 높이고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에 혜택이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은행권 조차 은행 대리업 도입이 점포 축소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할지는 미지수라고 입을 모은다. 경쟁 관계에 있는 은행들이 서로의 상품을 대신 판매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은행 대리업 자체가 일부 업무만 대체해 주는 상황이라 풀뱅킹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면 특화점포에서 발생한 불만이 동일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D은행 관계자는 “영업점에 대한 대안이 되려면 기업 금융 상담이나 자산 관리 등 전문적인 부문까지 해야 할 텐데 그 정도의 역량을 갖춘 대리업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소규모의 변화는 생겨도 큰 수요는 없을 것이라 본다”고 꼬집었다.

오히려 은행 대리업을 핑계 삼아 은행들이 점포 폐쇄를 가속할 것이란 시선도 있다.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신한은행·우리은행·농협은행 등은 지난해 점포를 25개 이상 줄이면서 생산성(예수금+대출금)을 높였다.
 


특히 우리은행은 지난해 점포당 생산성이 1조734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21억 원(11.6%) 증가하며 증가액과 증가율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신한은행도 888억 원(8.4%) 성장하며 뒤를 이었다. 두 은행이 지난해 점포를 20여 곳 이상 줄인 점을 고려할 때 생산성 개선 요인 중 하나로 점포 축소를 들 수 있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영국처럼 우체국 내 공유 지점인 뱅킹 허브를 확대하는 정도만 해도 성공적이긴 하겠지만 은행 업무를 대행해 주는 수준에 그치면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점포 축소에 따라 은행의 점포당 생산성이 매년 높아지자 은행들은 점포를 늘리기 보다는 시간·장소·대상 등 영역에 따른 특화점포 개설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은 직장인 영업시간에 맞춘 ‘9 to 6’ 특화점포를 전국 89개점에서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은 영업점 축소로 인한 고객 불편 최소화를 위해 '디지털 라운지' 등의 무인형 디지털 특화점포 77개를 전국 각지에 도입했다. 은행권 최대 규모다. 하나은행은 전국 16개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 ‘주말 영업 점포’를 통해 외국인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공동 점포가 활성화가 되지 않은 것은 인정해야 한다. 현재로선 대면 채널을 확대하기 위해 일부 특정층을 겨냥한 맞춤형 점포 신설로 고객 접근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