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1년, 유통법안 70건 중 단 1건 통과...다크패턴·가품방지법 등 줄줄이 표류
온라인플랫폼 사업자 책임 강화 다수
2025-05-14 이정민 기자
소비자 전문가들은 급속한 디지털 전환과 온라인 소비 확산에 따라 관련 법안의 신속한 논의와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4일 국회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30일 22대 국회 개원이후 발의된 유통·소비자 관련 법안은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26건 ▲온라인 플랫폼법 19건 ▲개인정보보호법 25건 등 70건이다. 상품권법 관련 발의는 없었다.
특히 22대 국회에서는 전자상거래 및 온라인플랫폼 운영 사업자에 대한 책임 및 규제를 강화해 소비자들의 권리를 높이기 위한 취지의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통신판매중개자의 관리 ▲가품 및 유해상품 판매 관리·감독 ▲라이브커머스의 통신판매 규제 등을 강화해 소비자 권익을 두텁게 보호하겠다는 요지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고 온라인 유통 시장이 급성장한 2020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가결 처리된 유일한 법안은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은 국외 사업자의 개인정보 보호 책임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에는 국내에 주소나 영업소가 없는 개인정보처리자에게 국내대리인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었으나 형식적인 지정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개정안은 ▲개인정보처리자의 국내대리인 관리·감독 의무를 명확히 부여하고 ▲국내 법인을 운영 중일 경우 해당 법인을 국내대리인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또한 ▲국내대리인의 전화번호 등 필수정보를 개인정보 처리방침에 누락하거나 ▲형식적 지정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해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했다.
그러나 대다수 주요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상태에 있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에서 온라인 거래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소비자 보호를 확대하기 위한 법안들이 다수 발의됐으나 이들 역시 통과되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다.
◆ 소비자 보호 외쳤지만…가품·다크패턴·개인정보 관련 법안 대부분 ‘계류 중’
대표적으로 지난해 7월 정준호 의원이 발의한 통신판매중개업자 책임 강화안이다. 유해 제품 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통신판매중개업자가 제품 인증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같은 해 12월 송재봉 의원이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위조상품 책임 강화안’도 국회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5년간 4만 건 넘는 가품이 유통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온라인 플랫폼 운영자가 단순한 ‘중개자’라는 이유로 책임을 피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안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위조상품 여부를 상시 모니터링할 의무를 부여하고 판매자와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3월엔 이준석 의원이 소비자 착오를 유도하는 ‘다크패턴’을 규제하고 실태조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주기적인 실태 점검과 위법행위 신고 기준 마련 등을 통해 다크패턴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도 재추진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업계 반발로 폐기됐던 이 법안은 자사 상품 우대, 끼워팔기, 최혜대우 강요 금지 등을 담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오기형 의원 등이 유사 법안을 잇달아 발의해 현재 17건이 계류 중이다.
오기형 의원안은 플랫폼의 불공정행위 금지와 정보교류차단장치 설치, 과징금·시정명령·분쟁조정 절차 마련 등을 담고 있다. 오세희 의원은 입점업체 보호를 위한 정산기한, 수수료율 공개, 중개계약서 교부 의무 등을 명시한 별도 법안을 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주목된다.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법안은 개원 이후 총 25건이 발의됐으며 이 중 2건은 대안반영폐기, 1건은 원안가결됐다.
지난 3월 가결된 개정안은 해외 사업자의 국내대리인 지정 의무 강화 및 관리감독책임 명확화를 골자로 한다.
정준호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 열람·정정 요구 시 과도한 수수료 부과를 막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업자마다 수수료 편차가 커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자 대통령령으로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하도록 했다.
◆ 업계·전문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춘 제도 보완 논의 필요”
유통업계와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환과 온라인 소비 확산에 따라 관련 법안의 신속한 논의 및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플랫폼과 소비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반해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소비자 보호에 실효성을 갖는 입법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업계에 대한 불신과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거래가 급격히 확산되며 플랫폼 운영자의 역할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지만 소비자들의 문제 인식은 부족한 상황”이라며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질 경우 부담이 생기는 이해관계자들은 이를 바람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시장은 단순한 소비자와 판매자 관계를 넘어선 다면적 구조를 지니고 있어 기존 제도만으로는 규율이 어렵다”며 “앞으로 발생할 문제를 대비하려면 법 제정이 선행돼야 하며 제도적 틀을 갖추고 사회적 지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규율 체계를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