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 0% 사고인데 '시세하락손해' 보상 못 받아...차보험 격락손해 보상 문턱 너무 높아
'차값 하락' 소비자만 손해
2025-05-29 서현진 기자
사고 차량이 되면 중고차로 판매할 때 이력이 고스란히 남아 시세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수리비가 차량가액의 20% 이상인 경우에만 보상이 가능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도의 취지가 사고 차량의 시세 하락 비용을 보전하자는 것이지만 선별적인 보상만 이뤄지고 있어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시세하락손해 기준을 폭 넓게 개선할 경우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29일 소비자고발센터(goso.co.kr)에 따르면 오산시에 사는 박 모(남)씨는 신호 대기 중 후미추돌 사고를 당해 출고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차량의 트렁크와 범퍼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박 씨는 사고 과실이 0%였기 때문에 가해자 측 보험사에 시세하락손해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규정 및 약관 법률에 따라 보상 대상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박 씨의 차량 수리비가 160만 원으로 차량가액인 4500만 원의 20%에 미치지 못해 격락손해 적용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박 씨는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신차인데 과실 0%인 사고로 자산 가치가 하락된 것이 명백함에도 보상받지 못했다"고 억울해했다.
통상 자동차사고로 차량 파손 시 보험사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따라 피해 차량에 수리비, 대차료, 시세하락손해 등을 보상해야 한다.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등 모든 보험사들이 똑같이 적용하고 있는 기준이다.
금융감독원은 2001년 자동차보험 시세하락손해 보상 대상 및 보상금액을 최초 도입했다. 당시 보상 기준은 ▶출고 후 1년 이하 차량이며 ▶수리비가 차량가액 30% 초과 시에만 수리비용의 10%를 보상했다.
다만 2001년 도입했던 기준은 보상 대상 및 보상 금액이 과소하고 피해 차량의 가치 하락으로 인한 손실 보전이 미흡한 점을 감안해 2006년 기준을 개선했다. 변경된 개정안은 ▶출고 후 2년 이하 차량 ▶수리비가 차량가액 20% 초과 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확대됐다.
그러나 약관상 보상기준이 실제 차량 시세 하락 정도 대비 터무니없이 낮다는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자 2019년 기준을 출고 후 5년 된 차량까지 확대하고 차령별 보상금액을 상향 조정했다. ▶출고 후 1년 이하 차량엔 수리비의 20% ▶출고 후 1년 초과 2년 이하 차량엔 수리비의 15% ▶출고 후 2년 초과 5년 이하 차량엔 수리비의 10%를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박 씨 차량가액은 4500만 원인데 후미추돌로 트렁크도어와 범퍼 교체 수리비가 160만 원 나왔다. 박 씨가 시세하락손해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면 차량가액의 20%인 900만 원 가량이 수리비로 책정돼야 하는 셈이다.
수차례 개정에도 소비자들은 시세하락손해 보상 기준이 여전히 소비자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한다. 사고 과실 비율이 낮거나 0%임에도 사고 이력 때문에 차량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데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 사고 차량의 감가율은 중고차 업체마다 다르나 사고 부위 등에 따라 2%~40%까지 감가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중고차 플랫폼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에 나오는 자동차의 경우 각 개별 상품마다 사고여부 등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시세 판정이 천차만별이다"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보상 기준 완화나 개선이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동차 사고로 인한 격락손해의 경우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보상 기준을 완화하기 어렵고, 보상 기준이 개선될 경우엔 보험료 인상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행 보상기준을 전제로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측정하고 있는데 기준을 완화하게 되면 보험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며 "보험료가 오르는 걸 감안하고라도 기준을 개정할 경우 무사고 소비자들이 억울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약관은 소비자와 보험사 간 약속"이라며 "약속된 범위 내에서 보상해 주고 있는데 그 기준을 넘어서는 보상을 원할 경우 가해자를 상대로 개인적으로 소송을 거는 일도 많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