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취임 100일 문미란 소협 회장 "대통령이 소비자 민생 직접 챙기는 '소비자민생위원회' 시급"
2025-06-09 조윤주 기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이하 소협) 문미란 회장이 취임한 지 100일을 맞았다. 그는 취임 이후 정부, 각계 전문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며 ‘소비자 중심 소비환경’ 구축을 위한 제도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소협은 1976년 자생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소비자 운동을 이끌어 온 대표적 단체다.
2026년 창립 50주년을 앞둔 소협은 현재 12개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전국 930여 개의 지역조직과 약 117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거대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이 흐름의 중심에 문미란 소협 회장이 있다.
문 회장과 소비자 운동과의 인연은 1980년대 초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회 전반에선 노동·농민·학생운동이 활발했고, 새롭게 떠오르던 ‘소비자 운동’이라는 개념이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지도 교수가 ‘소비자 운동이 새로운 시대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며 연구해보길 권해 접한 후 유학과 변호사 활동 중에도 소비자 운동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법학도 출신인 그의 전문성은 소비자 권익 강화 활동에 깊이 스며들었다. “소비자 정책도 결국 입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체계를 갖춰가는 거잖아요. 법을 전공한 덕에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고, 제도를 체계화하고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됐죠"
소협 회장으로서 100일을 보낸 문미란 회장에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소비자 운동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Q. 소협 회장으로 취임한 지 100일이 됐다. 소감은 어떠한가?
A.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이사회 등에 참여해왔기에 조직 구조나 흐름은 익숙했다. 다만 회장으로서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은 또 다른 차원이더라. 12개 회원 단체가 각자 고유한 사업과 특성이 있다 보니,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구조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게 중요했다. 내가 취임했다고 해서 방향이 크게 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전문성과 방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역은 더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Q. 현재 소협의 주요 사업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A. 소협은 여러 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 회원 단체가 집중하고자 하는 분야에 따라 위원회 형태로 전문성을 강화해 이끌 수 있도록 구조화돼있다. 소비자 이슈는 예컨대 'AI' '기후 위기' 등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어 전문적이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접근이 필요하다. 소협 내에서도 이러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하고 있다. 크게 상설위원회와 특별위원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상설위원회는 소비자교육위원회, 물가감시위원회, 식의약안전위원회 등이 있고, 특별위원회로는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소비위원회, 의료개혁 위원회 등을 운영 중이다. 이외에 AI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소협은 다양한 소비자 이슈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함께 장기적인 전문성 확보를 위해 위원회 운영을 더욱 활성화할 예정이다.
Q. 소비자 권익 증진을 위해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A. 소비자 피해는 규모가 크고 빈번하게 발생해왔다. 특히 최근 몇 년 간 '가습기 살균제' '자동차 화재' '티메프' 등 그 사례가 잦았는데,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책이 뚜렷하지 않다. 때문에 피해 구제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게 큰 과제다. 이와 관련해 △소비자 집단소송제 △입증 책임 전환 △제조물 책임 강화 같은 제도 도입 및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
Q. 소비자 권익을 위한 정부 역할은 무엇인가?
A. 헌법 124조에는 '정부가 소비자 보호 운동을 보장'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단체 운영이나 인건비 지원은 거의 없고, 사업비 형태로만 제한적 지원이 이뤄진다. 독립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운동이 지속 가능하려면, ‘소비자 권익 증진 기금’처럼 구조적인 지원 장치가 필요하다. 헌법에 의해서도 정부는 소비자 단체의 조직과 운영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책임이 있다. 소비자 단체는 이익 집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 독립적이고 재정적으로 투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피해구제 제도 확립이나 집단 소송 제도 도입과 같은 법·제도적 기반과 함께, 소비자 운동의 지속성을 뒷받침할 재정적 지원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Q. 대선 국면에서 정당과의 정책 협약도 있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A. 대선 전 더불어민주당 제안으로 지난 달 소비자 관련 5대 항목에 대해 협약을 맺었다. ▲소비자 권익 강화 ▲지속가능한 소비환경 조성 ▲공정한 시장경제 실현 ▲소비자 피해구제 체계 확립 ▲정책 소통 및 협력을 위해 상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협약 정신에 따라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협약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이후 구체적인 정책화와 입법 제안까지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지금까지는 정치적 중립을 의식해 국회나 정당과의 연계에 신중했지만,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정책 제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비자 이슈가 워낙 분야가 다양해 범정부 차원의 통합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치권과의 협력도 중요하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전문가들과 함께 정책 제안서를 만들고 국회의원들과 협력해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Q. 새 대통령에게 소비자를 대표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소비자 민생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범정부적인 대책이 필요한 문제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대통령 직속 상설 소비자민생위원회가 설치돼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소비자정책수립과 소비자중심평가지표 정비도 필요하다. 소비자권익증진기금을 확보하고 체계적인 대응시스템을 구축해 다양한 대규모 소비자 피해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장기적인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소비자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환경을 소비자 입장에서 소비자와 함께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길 바란다.
Q. 내년이면 소협이 50주년을 맞는다. 어떤 의미가 있고, 무엇을 준비 중인지?
A. 50년 전만 해도 '소비자 운동'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고 낯설었다. 많은 선배들께서 소비자 권리를 위해 길을 개척해왔다. 그러나 지금도 '소비자의 권리'라고 하면 변방 이슈로 치부하거나 필요성에 대해 묻는 이들이 있다. 그렇기에 선배들이 만들어 낸 이 역사를 잘 기록하고, 앞으로의 50년을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하고 있다. '50주년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자료화, 평가, 비전 수립에 착수할 계획이다.
Q.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해 온 소비자 운동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A. 돌아보면 40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중간 중간 공백도 있었으나 소비자 운동을 꾸준히 병행했고 연결돼 왔다. 생계 외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제도가 바뀌고 사회 변화에 동참해왔다는 점에서 굉장한 보람을 느낀다. 소비자 운동은 나에게 삶의 폭을 넓혀줬다. 젊은 세대에게 이런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미안함도 있다. 지금의 구조 속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이런 길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도 충분히 함께 소비자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