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체계 새판 짜기②] 산업정책-감독업무 분리론 대세...'금융소비자보호원' 출범할까?

2025-06-05     박인철 기자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독립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소비자보호업무를 별도 담당하는 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 출범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현행 금융감독체계에서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권한을 모두 금융위원회가 가지고 있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편안들은 소비자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별도 기구 설립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과 학계에서 금융산업과 감독정책을 완전히 분리하는 형태의 '쌍봉형' 체계 주장이 주를 이루면서 금융소비자보호를 전담하는 독립기구 출범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행 감독체계에서 소비자보호기구만 별도로 분리해 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하는 '소봉형' 체계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쌍봉형 금융감독체계는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민병두·이종걸 의원안, 21대 국회에서도 이용우 의원안으로 제시됐고 22대 국회에서는 김현정 의원안이 발의한 상태다. 소봉형 금융감독체계는 20대 국회에서 강석훈 의원안으로 등장한 바 있다. 

◆ 금융위 기능 분리하고 건전성·소비자보호 나누는 '쌍봉형' 대세

'쌍봉형' 금융감독체계는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옮기고 금융감독정책과 금융소비자보호를 담당하는 별도 부처를 만드는 것이 골자다. 

쌍봉형 체제는 현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이뤄진 2008년 이후 꾸준히 제기된 대안이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계에서 금융산업 증진 중심의 건전성 감독에 치우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해 제시됐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도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당시 후보가 쌍봉형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주장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도 쌍봉형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를 통해 군불을 떼기도 했다. 
 
▲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쌍봉형'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지난해 9월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통해 쌍봉형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제시하면서 다시 불을 붙였다.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기구로 분리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금융감독부문을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소비보호위원회로 나눠 ‘쌍봉형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영국과 호주같은 쌍봉형 체계로 바꿔서 각종 금융사고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안정성을 가져가자는 취지다. 

지난 4일에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유사한 내용의 정부조직법·금융위원회 설치법·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힘을 싣고 있다. 

차 의원 안에서도 금융위원회가 사라지는 대신 건전성 감독 중심의 금융감독원과 소비자보호(행위규제) 중심의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신설되는 내용이 골자다. 두 조직을 금융감독위원회가 통할하게 된다. 

쌍봉형 체계는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적용되는 금융감독체계다. 영국이 대표적으로 지난 2008년 금융감독기구가 금융위기를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기존 금융감독청을 해체하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건전성 감독원'을 영란은행 산하에 두고 영업행위 감독을 하는 금융행위감독청으로 이원화하는 쌍봉형 감독체계를 완성했다.

다른 대안으로 쌍봉형보다는 소극적 형태인 '소봉형'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제시된다. 기존 금융감독기구에서 소비자보호기구만 분리하는 형태로 금융감독위원회를 두고 아래에 금감위를 보조하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원을 두는 형태다.

급진적 형태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인 쌍봉형 도입에 따른 부담을 덜면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완전 독립시켜 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할 수 있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 번번히 폐기된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이번엔 성공하려면?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독립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금융감독체계의 목적이 ▲금융시장의 안정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 ▲금융소비자보호로 볼 때 금융위가 금융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을 동시 수행함으로써 금융산업 육성과 금융소비자보호 간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혜진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간의 수직적이고 이원적인 금융감독체계에서 금융감독의 독립성과 책임도 미흡하고 금융시장 성장과 안전성 확보 위주 정책이 많아 금융소비자보호에 소홀했던 점이 사실”이라면서 “소비자지향적인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서 금감원이 건전성 감독을 맡고 금융소비자보호원이 행위 감독을 맡는 역할로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2012년 이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제기됐지만 매번 고배를 마신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우선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정부조직법 개편과 연계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십 수년간 이어졌지만 성사되지 못한 것도 결국 대규모 정부조직개편이 수반되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쌍봉형 금융감독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임직원 수만 2000여 명이 넘는 현 금융감독원을 공무원 조직으로 바꿔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금융당국 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에 대한 기능 문제도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료 조직이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냉소적이라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당장 개편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달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행 독립 등 금융감독체계를 바꿨다"면서 "기관 간에 어떻게 운용을 잘할 것이냐 하는 부분에서 미세 조정하고 기능을 조금씩 조율하는 것을 통해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며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실행될 경우 금융회사들은 수검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는 금융감독 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받고 있는데 유력하게 거론되는 쌍봉형 금융감독체계가 적용될 경우 건전성 중심의 금융감독원과 소비자보호 중심의 금융소비자보호원까지 시어머니가 더 늘어나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보호 강화 차원에서는 필요한 개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금융회사 입장에선 검사 부담이 한층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부터 금융위와 금감원을 나눈 것이 문제”라면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격상하고 감독과 정책을 분리하겠다는 방안은 괜찮지만 단봉형, 쌍봉형 모두 장단점이 있는 만큼 비교를 잘해서 진행해야할 것”이라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