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자동차리콜제①] 리콜 전 사설 정비소서 수리하면 보상 못받아?
법적 요건 갖추면 사설 여부 무관
2025-06-17 신성호 기자
# 서울에 사는 BMW 차주 이 모(남)씨는 차량 경고등이 떠 정비소에서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 이상을 진단 받아 수리했다. 이후 제조사에서 해당 부품 리콜 통지를 받은 이 씨는 업체 측에 기존에 자비로 수리한 비용 보상을 요구했지만 “공인 서비스센터에서 수리한 경우에만 보상이 가능하다”며 거절당했다. 이 씨가 국토교통부에 신고하자 업체는 그제야 서류 제출 시 보상이 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사설 정비소에서 현금 결제 후 영수증을 발급받지 않아 나중에 영수증을 받아 냈으나 업체는 정비 시점과 영수증 발급 시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 씨는 “피해 사실이 명확한데도 업체는 어떻게 해서든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해 자동차 리콜대수는 513만2122대로 자동차 리콜 현황이 공개되기 시작한 지난 2003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중 82.8%는 국산차다. 리콜제도에 따라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간 안전결함으로 리콜된 차종은 7078개이고 대수는 1493만8551대에 달한다.
리콜(제작결함시정)제도는 '자동차가 안전기준에 부적합하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는 경우에 자동차 제작, 조립, 수입자가 그 결함 사실을 해당 소유자에게 통보하고 부품의 수리 및 교환 등의 시정 조치로 소비자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제도다.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는 지난 한 해 동안 자동차 리콜 관련해 150여건의 민원이 제기됐다. 주요 내용은 △리콜 전 수리비 환급 △부품 없어 수리 지연 △리콜 수리후 차량 고장 반복 △해외와 리콜 차별 △리콜 기간 산정 불만 △리콜 고지 미흡 등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리콜이 발표되면 해당 부품에 대해 무상 수리가 가능하지만 앞서 소비자가 자비로 수리한 경우 비용 환급 받기가 매우 어렵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9년 3월 리콜보상제도를 도입했다.
리콜보상제도는 '자동차관리법 제31조의2'에 따라 제조사가 자기인증해 판매한 자동차에 결함이 발생한 경우 제작결함 시정 전 소유자가 자기비용으로 수리했다면 이에 대한 비용을 제조사가 보상하는 제도다.
리콜 발표 이전 1년 이내에 소비자가 자비로 수리한 결함 부품에 대해 △자동차점검·정비내역서 △세금계산서 또는 영수증 △자동차등록증 △자동차 소유자의 신분증 및 입금통장 사본 등 서류를 구비해 제조사에 청구하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제도상 제조사의 공인 서비스센터에서 수리한 비용에 대해서만 보상한다는 조항이 없음에도 사설 정비소에서 수리했다는 이유로 보상이 거절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리콜 발표 전 소비자가 사설 정비소에서 수리한 경우 '수리비 환급'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흔해 소비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장 모(여)씨는 KG모빌리티 냉각팬 레지스터 경고등이 점등해 공인 정비소에 문의했으나 보증기간이 만료돼 사설 정비소에서 약 20만 원을 들여 수리했다. 1년 후 제조사에서 해당 부품 리콜을 발표했고 장 씨는 보상을 요청했지만 업체는 “자체 정비망 내에서 이뤄진 수리만 보상 대상이고 신청 기간도 지났다”고 거절했다. 장 씨는 “결함 책임은 제조사에 있는데 사설 수리했다는 이유로 보상을 못 받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북에 사는 신 모(남)씨는 제네시스 EQ900 운행 중 엔진오일 압력 경고등이 들어와 사설 정비소에서 약 43만 원을 들여 오일 센서(OPTS)를 수리했으나 이후 리콜 대상으로 판명됐다. 신 씨는 업체에 수리비 보상을 요구했으나 서비스 센터에서 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는 “고장의 귀책이 명백히 제조사에 있음에도 수리비를 지원해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국토교통부는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공인 서비스센터에서의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수리비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완성차 업계는 법령에 따라 수리 업체 구분 없이 보상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증빙 서류 미비 등 이유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관련 부처 및 전문가들은 사설 수리라 해도 법에 부합하는 대상이라면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자동차관리법상 사설 정비소에서 수리했다 하더라도 보상 요건에 해당하면 제조사는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할 경우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도 “리콜 사전 수리 보상 여부는 정비소 유형과 무관하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리콜은 해당 부품에 결함이 있음을 제조사가 인정한 것”이라며 “소비자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자비로 수리한 경우 제조사가 당연히 비용을 보상해야 한다”고 전했다.
현대·기아차, KG모빌리티, 한국지엠, 르노코리아, 벤츠, BMW, JLR 코리아, 페라리 등 완성차 제조사들은 “리콜 대상이라면 사설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하고 있다”고 소비자들의 주장과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업체들이 입장과 달리 사설 수리에 대해서 리콜 보상금을 지급해주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로 사설 수리의 불투명성을 꼬집었다. 증빙 서류가 미비하거나 수리 내역 및 비용이 불확실하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사설업체에서 수리하더라도 어떤 부품을 언제 어떻게 고쳤는지 전산화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법적으로 사설 수리도 보상 대상이 맞지만 제조사 입장에선 수리비가 크면 금액이 합당하게 책정됐는지 따져야 하므로 엄격히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보증기간이 지난 부품이 고장 나면 공임비가 더 저렴한 사설 업체에서 수리 받는 게 자연스럽고 추후 리콜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증빙 서류를 꼼꼼히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게 당연하다"고 봤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사설 수리의 경우 고장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해 관련 없는 부품까지 교체하면서 수리비가 과다 청구되는 사례도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또한 리콜 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지출이라 생각하지만 제조사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리콜 부품 수리비인지 확인할 수 없어 보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이러한 문제가 해소되려면 사설 정비소에서의 수리 내역 및 비용을 전산화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