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다 고지했는데 고지의무 위반?...설계사의 누락·축소로 계약 해지 날벼락

가입자도 청약서 고지사항 확인 필수

2025-06-18     서현진 기자
#. 경기도 용인에 사는 임 모(여)씨는 올 3월 전속 설계사를 통해 KB손해보험 펫보험에 가입했다. 임 씨는 계약 당시 설계사에게 6살인 반려견의 탈구 이력을 알렸으나 나중에 고객센터를 통해 고지 내용이 누락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임 씨는 설계사에게 항의했고 설계사는 슬개골 탈구 고지 시 계약 인수가 불가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반려견의 병원을 변경해 슬개골탈구 수술 기록을 없애자며 사기까지 조장하기에 임 씨는 곧바로 계약을 취소했다. KB손보 측은 "해당 설계사의 경우 현재 제재 중이다"라고 밝혔다.

#. 경남 사천에 사는 장 모(남)씨는 지난해 7월 지인인 설계사에게 현대해상 건강보험에 가입하며 과거 수술 기록 등을 알렸다. 계약 후 지난해 11월 경 건강검진을 받은 장 씨는 심혈관이 80% 막혀 치료를 받았고 보험금까지 받았으나 얼마 안 가 보험사로부터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된다'고 통보받았다. 장 씨의 경우 계약 당시 고지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했으나 근거가 없어 결국 계약이 해지됐다. 현대해상 측은 "장 씨는 고지의무를 다 이행했다는 입장이나 설계사와 이견이 있어 녹취록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답했다.

#. 경기도에 사는 강 모(남)씨는 지난해 6월 설계사를 통해 DB손해보험의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강 씨는 설계사에게 오래전부터 알레르기 약과 안과 약을 복용 중이라고 구두로 알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 1월 강 씨는 보험사로부터 알러지성 두드러기와 기타 망막혈관폐쇄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DB손보 측은 "가입 이전에 안과질환 치료와 투약에 대해 고지하지 않았고 가입 후 백내장과 망막혈관폐쇄로 치료받아 청구한 바, 인과관계 있는 고지의무 위반으로 확인됐다"며 강 씨와 상반된 입장을 표명했다.

#. 경기도에 사는 이 모(여)씨는 2019년 지인이었던 설계사를 통해 삼성화재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이 씨는 평소 허리가 안 좋아 계약 당시 요통에 대해 재차 고지했고 설계사가 친한 지인이었기 때문에 믿고 계약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 이 씨는 실직으로 보험료를 1년간 미납했다가 실효됐고 취업 후 다시 부활 신청했으나 실효기간 동안 허리치료를 받아 부활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만 설계사는 이미 퇴사해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삼성화재 측은 "해당 건은 보험료 미납으로 인한 해지로 확인되나 설계사 퇴사로 확인이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보험 가입 시 설계사에게 지병, 수술 이력 등을 알렸음에도 고의나 과실로 누락돼 결국 '고지의무 위반' 이유로 보험계약이 해지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설계사 안내를 그대로 믿고 가입한 소비자들은 뒤늦게 책임을 홀로 떠안게 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설계사가 퇴사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게 더욱 어려워져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한다.

고지의무 위반으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계약 시 반드시 고지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설계사에게 구두로 전달하더라도 청약서에 그 사실이 제대로 기재됐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18일 소비자고발센터(goso.co.kr)에 따르면 설계사를 통해 보험을 계약할 경우 지병이나 수술 이력 등이 누락, 축소된 상태로 가입돼 보험금이 거절되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소비자들이 고지의무를 다했음에도 그 사실이 청약서에 제대로 기재됐는지 확인하지 않아 발생하는 피해다.

삼성화재, DB손보,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보, 한화손보, 롯데손보,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신한라이프, NH농협생명, 동양생명, KB라이프 등 손보사와 생명사, 보험 성격이나 업체 규모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때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고 이미 보험금을 지급했다면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 설계사 고의 누락이어도 배상은 하늘의 별따기

보험업법상 가입자는 계약 체결 전 중요한 사실을 알리는 '고지의무'를 다해야 한다. 보험 가입 여부가 결정되거나 보험료가 책정 기준이 되는 계약자의 병력이나 직업 등이 필수 고지사항이다.

소비자들의 오판으로 고지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설계사가 고의적으로 누락하는 사례도 꾸준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일부 설계사들이 계약 성사에만 매달려 계약에 불리한 고지 사항은 일부러 누락시키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 특히 일부는 계약자에게 고지의무를 3년만 숨기면 보험사가 먼저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현혹하는 일도 있다. 

상법상 보험사는 임직원·보험설계사 또는 보험대리점이 모집하는 과정에서 보험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할 책임을 지고 있다. 다만 '보험사가 보험설계사 또는 보험대리점에 모집을 위탁하면서 상당한 주의를 했고 이들이 모집을 하면서 보험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있다.

같은 법에서, 보험계약 당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고지한 때엔 보험사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 한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보험사가 계약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알지 못한 때엔 그러지 아니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고지의무 위반으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소비자들은 계약 시 청약서에 고지 사항이 제대로 기재됐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구두로만 전달하게 되면 설계사의 고의나 과실로 인해 누락될 수 있고 나중에 고지의무 위반으로 분쟁이 생길 경우 근거가 없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보통 계약 시 청약서 보고 자필 서명을 하게끔 돼 있는데 워낙 양이 많다 보니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청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자필 서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보험사 입장에선 당연히 설계사를 통한 불완전판매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맞는 거고 소비자들 또한 본인이 가입한 보험에 대해 상품, 보장내역 등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해 스스로 챙기는 수밖에 없다"고 당부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