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자동차 리콜제③] 리콜 수리 후 다시 고장났는데 제조사는 '다른 문제'라며 발뺌
2025-06-20 신성호 기자
# 인천에 사는 강 모(남)씨는 보유한 벤츠 E클래스의 엔진·파워트레인 컨트롤 유닛 및 배기·소음방지장치 리콜 통보를 받아 수리했다. 강 씨는 수리가 끝난 차량을 가지러 가서 시동을 걸자마자 엔진경고등이 점등돼 문의했고, 일시적 오류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경고등은 계속 켜졌고 급기야 리콜 수리 전에는 멀쩡했던 변속기까지 말썽을 부렸다. 결국 차를 다시 입고하니 그제야 변속기 부품(미션밸브바디)이 고장 났다는 진단을 내렸다. 강 씨는 리콜 수리 이후 생긴 문제이므로 무상수리를 요구했지만 “리콜 부품과는 관계없는 고장”이라며 거부당했다.
# 전남에 사는 조 모(남)씨는 아우디 차량 '고전압배터리' 리콜 통지를 받고 수리한 2주 후 전기시스템 오작동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는 문제를 겪었다. 다시 차량을 입고했지만 업체에선 리콜 증상과 다르고 보증 기간도 끝났다며 리콜 수리와 무상 수리 모두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 씨는 “리콜 수리 후 차량에 이상이 생겼는데 고쳐주지는 않고 도리어 점검 비용 70만 원을 청구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 경기도에 사는 권 모(남)씨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 차량 엔진 관련 리콜 수리를 받았으나 이후 또 다시 엔진이 고장 나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권 씨는 리콜 수리한 엔진에서 발생한 문제이므로 무상수리를 요구했으나 서비스센터는 '리콜 검사가 완료된 차량'이라며 어떠한 지원도 불가하다고 답했다. 권 씨는 "엔진오일을 정기적으로 교환하는 등 철저히 차량을 관리해왔다. 근본적인 결함 해결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리콜 수리 후 같은 고장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도 '원인이 다르다'는 등 여러 이유로 무상 수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현장에서 갈등이 빈번하다.
국토교통부는 리콜 부품에 동일한 문제가 생겼다면 리콜제도에 따라 제조사가 수리 및 교체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완성차 업계도 리콜 수리 후 동일한 부품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무상 수리를 제공하고, 다른 원인으로 판단되면 보증수리 기준에 따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고장이 동일한 원인으로 발생했는지, 리콜 수리한 부품으로 인한 문제인지 입증할 방법이 없어 보상 받지 못하기 일쑤다.
20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리콜 수리를 받은 차량에서 동일한 이상이 재차 발생했으나 무상 수리를 받지 못했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리콜 수리 직후 전에 없던 다른 하자가 생겼다는 불만도 상당수다. 현대차·기아·한국GM·KG모빌리티·르노코리아와 BMW·벤츠·볼보·토요타·아우디 등을 비롯한 모든 자동차 제조사가 리콜 수리 관련해 겪는 대표적 갈등 유형이다.
소비자들은 “결함이 인정된 부품에서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는데 제조사가 당연히 책임지고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자동차관리법에 리콜 수리 후 결함 재발에 관한 조항이 명시돼 있진 않지만 동일한 결함이 다시 발생했다면 원인 역시 같다고 판단할 수 있어 리콜제도에 따라 제조사가 책임지고 기존 리콜 수리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 KG모빌리티, 르노, JLR코리아 등은 “리콜 수리한 부품에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면 무상으로 재수리를 제공한다”며 “관련 없는 증상일 경우엔 일반 보증수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벤츠는 “리콜 수리한 날을 기점으로 새로 교체한 부품에 보증기간을 추가로 2년 제공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선 리콜 수리 이후 발생한 고장이 같은 결함에서 비롯됐는지 입증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부분이다. 또한 리콜 이후 발생한 이상이 수리 및 교체된 부품과 관련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워 결국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전문가들도 소비자가 고장 원인을 입증할 수 없으므로 제조사의 책임과 관계부처의 감시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제조사는 리콜 부품에 결함이 재발할 경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책임지고 수리해야 하지만 제조사가 동일한 결함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소비자는 이를 반박할 방법이 없어 피해를 입기 쉽다”고 봤다.
이어 "리콜 수리 후 발생한 다른 고장 역시 교체 부품과의 연관성을 소비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차량 결함에 대해서 제조사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한국소비자원 등 관계 부처에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장 증상이 같더라도 제조사가 동일한 결함이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면 소비자는 대응할 길이 없다”며 “동일 결함이 아닌 동일 증상에 대해서 무상 수리 등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