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자동차 리콜제④] 리콜 부품 없어 무한정 대기 일쑤...영업 못하는데 대차도 보상도 막막

제조사, 수요 몰려 생긴 일시적 문제 주장

2025-06-23     임규도 기자
자동차 리콜대수가 연간 500만 대를 넘어섰다. 자동차 안전에 대한 소비자 눈높이가 깐깐해지고  제조사의 선제적 대응이 맞물린 결과다. 그러나 자동차 리콜제 이면에는 소비자보다 업체 중심으로 짜인 수리 기간, 수리비 환급 제한, 수리 지연 등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자동차 리콜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고 개선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남양주에 사는 엄 모(남)씨는 지난 2월 기아 아이오닉5의 통합충전제어장치(ICCU) 고장으로 리콜 기간 중 차량을 서비스센터에 입고했다. 결품으로  수리가 지연돼 3주 만에 차량을 받을 수 있었다. 엄 씨는 해당 차량으로 영업하는 개인택시 기사로 수리 기간 동안 영업하지 못해 제조사에 보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엄 씨는 “차량 문제로 영업을 하지 못해 300만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수차례 손해배상을 요구했으나 거절 당해 억울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성남에 사는 이 모(여)씨는 지난 2020년 르노코리아의 SM3 방향지시등 고장으로 서비스센터에 방문했으나 부품이 없어 수리가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 씨가 언제 부품이 수급될지 물었으나 얼마나 걸릴지 몰라 안내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씨가 부품이 입고될 시 연락 달라고 요청했으나 요청 인원이 많아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데 부품이 없어 수리를 하지 못한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며 꼬집었다.

# 은평구에 사는 성 모(남)씨는 지난 2023년 현대자동차 NF소나타의 ABS부품 고장으로 리콜 기간 중 서비스센터에 문의했다. 그러나 3주가 지나도록 부품이 언제 수급될지 모른다는 답을 받았다고. 성 씨는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3주 넘게 부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부품 수급 문제가 이미 많이 거론됐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아 업체가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구리에 사는 이 모(여)씨는 지난 2023년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의 타이밍체인 부품이 리콜 대상이라는 안내 메시지를 받고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문의했다. 업체는 리콜 대상은 맞으나 일정이 밀려 한 달 이후에나 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차량을 이용할 수 없는 기간 대차 서비스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 씨는 “타이밍체인 교체가 한 달이나 걸릴 일인지 모르겠다”고 어이없어 했다.

자동차 리콜(제작결함시정) 과정에서 부품 수급 문제로 수리가 지연되는 일이 적지 않아 소비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안전을 위협하는 하자로 인한 리콜인데도 부품수급 때문에 수리가 늦어지면 불안을 무릅쓰고 운행하거나 차를 세워둘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완성차 업체들은 리콜 부품 수급 지연시 일시적으로 수요가 집중돼 발생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리콜 대상 차량이 적게는 수십 대에서 많게는 수만 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경우라면 수리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리콜 처리 지연에 따른 대책이나 보상방안도 마땅치 않다. 업체들이 서비스 차원에서 대차를 제공하고 있으나 차량 수가 제한돼 모든 소비자가 혜택을 받기는 어렵다. 생계 유지에 차량이 필수적인 소비자일수록 피해가 크지만 별도 보상 규정도 없어 피해 부담을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엔진 등 주요 부품 결함으로 리콜 수리를 받아야 하나 부품이 언제 올지 몰라 속을 태우는 소비자들의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에어백이나 안전벨트, 라이트 등은 주행에는 문제될 게 없다며 수리 지연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업체 태도에 소비자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수리 부품이 없어 석 달 이상 리콜 수리가 지연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현대차·기아·한국GM·KG모빌리티·르노코리아와 BMW·벤츠·볼보·토요타·아우디 등을 비롯한 대부분 자동차 제조사가 리콜 수리 지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리 기간이 길어져 차량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 제조사에 대차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 대차 서비스는 제조사가 과실로 수리가 지연될 때 서비스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법적 의무는 아니기 때문에 제조사별로 시행 여부나 제공 조건 등이 다르다.대차 가능 차량의 수량이 한정된 데다 무상보증기간 내 차량이나 예약 순번을 우선 제공하는 경우도 있어 이용하기 어렵다.

◆ 정부, 제조사 미흡한 대응에 소비자 피해 확대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자동차제작자 또는 부품제작자는 차량 결함으로 시정 조치하는 경우 시정조치계획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때 계획서에는 부품 수급에 관한 계획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부품 수급 문제가 발생해도 국토교통부가 제조사에 문제 해결 촉구 외엔 제재를 가할 수 없어 한계가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제조사의 부품 수급 지연 등 리콜 대처 능력 부족만으로 제재할 순 없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빠른 해결을 위해 제조사에 해결을 독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조사와 정부가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결국 부품 수급 문제는 부품 재고량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제조사가 소비자를 위해 꾸준히 부품을 만들고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하는 기업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부 부품의 경우 부품을 납품한 회사에서 리콜 서비스를 수행할 만큼의 인력을 갖지 못해 수급이 지연될 수 있다. 자동차제조사에서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정부는 유연성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리콜 건에 대해 부품 수급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KG모빌리티는 “리콜 시 예약제를 통해 수리를 진행한다. 부품 수급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BMW “부품물류센터를 통해 부품을 수급, 관리하고 있다. 필요 시 본사에서 항공편으로 부품을 수급하는 등 고객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임규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