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도는 가상자산법 ①] 거래소 자율에 맡겼더니 상장, 상폐 대혼란...소비자 보호 '구멍 숭숭'

상장과 폐지 모두 자율, 소비자 가치 판단 혼란

2025-07-03     박인철 기자
지난해 7월 가상자산사업자 규제에 중심을 둔 가상자산기본법 1단계 법안이 제정됐다.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가상자산시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인 상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보호 장치 등이 빠져 '졸속' 법안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시행 1주년을 맞아 1단계 법안에서 보완해야 할 사안과 현재 진행 중인 2단계 법안 제정 과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할 요소를 짚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1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밈코인 '오피셜 트럼프'의 발행을 발표했다. 

솔라나 기반의 이 가상자산은 불과 출시 3일 만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에도 상장하게 되었고 이튿날에는 빗썸에도 상장했다. 

그러나 오피셜 트럼프는 실질적으로 발행 직후 1영업일 만에 국내 상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투자자 보호가 충분히 검토된 이후에 상장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비난도 받았다. 

오는 19일이면 가상자산 1단계 법안 시행 1년을 맞이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1단계 법안에서는 보유 중인 가상자산과 은행 예치금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시세조종과 같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조사와 법적 처벌 근거가 마련되는 등의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러나 ▲상장 및 폐지 법적 기준 미비 ▲투자자 피해구제 절차 부실 ▲민원 및 분쟁조정 기관 부재 등이 2단계 법안에서 보완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 상장·폐지 최소한 법적기준 없어... 거래소 자율

우선 가상자산 상장 과정에서 해당 가상자산의 발행주체나 재무상태, 사업계획 등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요건 없이 무분별하게 발행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 신규상장된 가상자산은 127종, 같은 기간 상장 폐지된 가상자산도 31종 발생했다. 연간 기준으로는 신규 상장 284종, 상장 폐지는 98종이다. 
 

같은 기간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신규 상장 종목이 11종, 상장폐지된 종목이 7종이었다. 작년 말 기준 코스피 상장 종목은 930종, 가상자산 상장 종목은 1357종으로 가상자산 상장 종목이 약 1.5배 더 많았는데 신규 상장 종목수는 25.8배, 상장폐지 종목수는 14배 더 많은 셈이다. 

가상자산 상장과 폐지가 잦다보니 상장 후 1~2년 이내에 폐지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4년 8월까지 국내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된 종목 517종 중에서 상장 1년도 안돼 폐지된 종목은 107종(20.7%)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빗썸의 경우 지난 2023년 7월 상장한 '산투스FC', 'FC포르투', 'SS라치오'는 이듬해 4월 상장폐지됐고 같은 시기에 상장한 '엔터버튼'도 이듬해 6월 상장폐지되며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국내 거래소에 상장됐던 종목 중에서 상장기간이 가장 짧은 종목은 지난 2018년 1월 업비트에서 상장폐지된 '디직스다오'로 77일에 불과하다. 

상장과 폐지가 개별 거래소 판단에 따르다보니 동일한 가상자산을 두고 거래소마다 다른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된 가상자산이 또 다른 거래소에서는 버젓이 상장되는 것이다. 
 
▲ 지난해 말 비트코인골드는 업비트에서 상장폐지됐지만 코인원에서는 비트코인골드를 자사로 옮기는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해 논란을 빚었다.

'비트코인골드(BTG)'는 지난해 12월 말 업비트에서 거래 유의종목으로 지정된 뒤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그러나 상장폐지 발표 이후 또 다른 거래소인 코인원에서는 비트코인골드를 자사 거래소로 옮길 경우 최대 100만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진행해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이벤트를 진행한 코인원도 한달 뒤인 지난 2월 비트코인골드를 거래유의종목으로 지정하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이벤트를 열어가며 경쟁사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가상자산이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만약 투자자가 보유한 종목이 상장폐지가 됐다면 투자금은 ‘휴짓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지된 상장폐지일이 되면 해당 가상자산의 매수/매도 거래가 중단돼 현금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투자자가 보유한 가상자산을 다른 거래소나 개인 지갑으로 옮길 수 있도록 통상 30일의 출금 유예 기간을 준다. 그러나 상장폐지 시 해당 자산을 사고파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유가치는 급락한다. 다른 소규모 해외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더라도 거래량이 미미해 원하는 가격에 팔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가상자산의 상장과 폐지가 빈번하고 거래소에 따라 판단이 다른 것은 상장 및 폐지 여부가 거래소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국내 5대 원화마켓 거래소가 참여하는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가 거래지원 심사 공통 가이드라인을 정해두고 있지만 실제 거래소별 상장심사 조건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업비트의 경우 프로젝트 관련 중요 정보의 공시 여부, 기술적 안정성을 통한 원활한 입출금 및 거래 지원 능력, 초기 분배의 공정성 등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반면 빗썸은 '상장 적격성 심의위원회'를 운영해 기술력과 시장성뿐 아니라 거래량과 시가총액, 프로젝트의 지속성, 커뮤니티 활성화 여부에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