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도는 가상자산법 ③]미국·유럽 등은 자율 아닌 법적 규제 시행...분쟁조정기구 설립도 필요

2025-07-07     박인철 기자
지난해 7월 가상자산사업자 규제에 중심을 둔 가상자산기본법 1단계 법안이 제정됐다.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가상자산시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인 상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보호 장치 등이 빠져 '졸속' 법안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시행 1주년을 맞아 1단계 법안에서 보완해야 할 사안과 현재 진행 중인 2단계 법안 제정 과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할 요소를 짚고자 한다. [편집자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법제정 당시부터 불완전한 법안으로 평가됐다. 심지어 지난 2023년 6월 가상자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김주현 당시 금융위원장은 2단계 입법이 필요함을 밝히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토큰증권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발행·유통 규율체계를 마련하고 가상자산 관련 리스크 완화를 위해 가상자산 시장질서 규제를 보완하는 내용의 2단계 가상자산 입법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가상자산법이 급성장하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최소한의 투자자보호를 위한 장치 마련을 위한 임시방편임을 금융당국이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2단계 법안에서는 가상자산의 발행부터 유통 전 과정과 사업자 규제 등 1단계 법안에서 빠진 투자자 보호 장치와 산업 진흥 육성 방안이 전반적으로 담길 예정이다. 

◆ 1단계 법안 시행 1년 지났는데 2단계 법안 잠잠... 금융위는 하반기 목표

1단계 입법이 마무리되고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금융위원회는 구체적인 개정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 하반기에 입법을 진행한다는 계획은 세우고 있다.   

국회에서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각기 다른 내용이 담긴 개별 법안이 난립해 있어 통일된 법안 마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지난 5월 디지털자산 관련 공약을 세우고 2단계 법안 논의를 위한 조직인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전당대회 이후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로 격상시켜 입법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입법 절차 역시 그동안 개별 의원들이 제시한 개정안을 기반으로 이번 달 정무위원회 차원에서 디지털자산혁신법을 발의해 입법 드라이브에 가속도를 붙인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도 올해 하반기 가상자산법 2단계 마련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민당정 간담회에서 "사업자 진입·영업규제, 가상자산 유통공시 규제 등을 아우로는 2단계 입법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1단계 법안 시행 1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도 2단계 법안 관련 정부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최근 진행된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하반기 가상자산법 2단계 입법 진행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회에서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개정안 12건과 디지털자산기본법 1건 등 2단계 입법에 반영될 법안 총 13건이 의원안으로 발의되어있다. 13건 중 11건이 올 들어 발의될 정도로 입법 논의는 뜨거운 상황이다.

발의 안건에는 가상자산거래 실명제 도입, 금융당국 가상자산 상장절차 관리감독 권한부여, 가상자산 거래 관련 투명성 확보, 자율규제기구의 법정화 및 감독강화 등 투자자 보호 등이 각기 담겨 있다. 

◆ 상장과 폐지, 공시체계 '자율규제'로는 부족... 미국, 유럽은 이미 '법적규제' 시행

현행 법안의 가장 큰 한계는 법적 규제가 아닌 '자율규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법적요건을 갖춘 기구를 통해 상장 요건을 제정하고 심사하는 엄격한 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상장 전 과정이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다보니 엄격한 상장 심사가 이뤄질 수 있고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건전한 프로젝트만 상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은 가상자산 상장 전에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증권으로 분류될 위험이 있는 가상자산은 아예 상장할 수 없다. SEC가 특정 코인을 ‘미등록 증권’이라 판단할 경우 해당 코인이 상장된 거래소는 증권법 위반으로 처벌 받기 때문이다. 법적 요건을 모두 갖추고 승인된 가상자산만 상장된다.

유럽도 법적 요건을 모두 갖추고 승인된 가상자산만을 거래소가 상장할 수 있다. 지난 2023년 세계 최초의 포괄적 가상자산 규제 체계인 'MiCA'에 기준이 명시되어있다. 주요 사항으로는 ▲법적 의무를 지닌 백서제출 의무화 ▲CASP 라이선스 보유 거래소에만 상장 등이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원 역할을 하는 '금융청' 인가를 받은 자율규제기구인 일본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의 사전 심사를 통과해야한다. 개별 거래소는 JVCEA의 심사를 통과한 '화이트리스트' 코인 내에서만 상장 시킬 수 있다. 

그 결과 엄격한 기준을 세운 일본의 경우 작년 말 기준 JVCEA 소속 거래소 기준 상장된 가상자산은 약 40종으로 598종이 상장된 국내 시장과 비교하면 약 6%에 그친다. 미국의 경우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기준 약 290여 종으로 알려져있다. 

국내 시장도 원화거래소 협의체인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이하 닥사)의 자율규제가 있다. 그러나 법적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의 성격이 강해 실질적으로는 개별 거래소의 상장 기준에 의해 상장이 각자 이뤄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단계 법안에서는 현재 자율규제로 운영되는 가상자산의 상장 요건, 공시 의무, 상장폐지 절차 등을 법률로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서'와 같은 투자자 공시 역시 거래소 자율공시로 이뤄지는 국내와 달리 해외 주요국은 관련 규제체계를 명확히 세우고 정보 제공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 규제체계인 MiCA의 경우 금융당국에 백서를 제출및 등록해야하고 해당 백서는 증권신고서와 동일하게 법적 효력을 갖고 있다. 백서가 엉터리로 작성되거나 백서대로 프로젝트가 운영되지 않을 경우 법적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일본도 금융청과 금융당국 인가를 받은 자율규제기구인 JVCEA에 백서를 의무 제출해야하고 미국은 일반적으로 가상자산 백서 제출 의무는 없지만 증권형 토큰 성격을 가진 가상자산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백서를 내야한다.  

조세현 디지털자산위원회 부위원장은 “아직까지 국내 거래소들이 공시를 명확하게 하는 부분은 부족하다"면서 "상장폐지도 한국거래소 대비 빈번한데 법안 개정으로 제도적 투명성과 발행 주최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상장빔 또는 상폐빔과 같은 가격 급등락에 따른 투자자 피해 예방책도 현재와 같은 가이드라인이 아닌 법적 체계 정립 및 시장감시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상장빔과 같은 가격 급변동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매매개시전 최소 유통량 확보의무를 부과하고 매매 개시후 일정시간 시장가 주문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거래지원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해당 내용이 2단계 법안에 반영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가상자산거래소 협의체인 닥사(DAXA)도 해당 내용을 반영한 모범사례 개정안을 마련하고 지난 달부터 적용 중이다. 업비트와 빗썸 등 대형 거래소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량 입출금, 자전거래 등 이상거래를 24시간 감시해 심각 사안은 당국에 보고하는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에서 향후 2단계 법안에 해당 내용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실질적인 상장빔, 상폐빔 방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DAXA 중심의 자율 규제는 법안 통과 전까지 가이드라인의 형태로만 만든 것이기 때문에 상폐빔 방지 등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란 어렵다”면서 “다만 입법이 되더라도 법안에서 세세하게 규정을 적어두진 않기 때문에 개별 거래소들이 내부적으로 관련 규정을 더 강화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투자자 피해구제 위한 분쟁조정기구 설립 필요... '디지털자산업협회'가 역할 할까?

투자자 피해 구제 대책에 대해서는 투자자 성향에 맞춘 적합성과 적정성 원칙을 도입하고 분쟁조정 절차와 피해구제 제도 역할을 하는 분쟁조정기구 설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가상자산 관련 분쟁 발생시 투자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민사소송이 유일하다. 민사소송은 길게는 수 년간 법적 다툼으로 이어져 개별 투자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감독원의 '금융분쟁조정위원회'와 유사한 형태의 기구가 설치된다면 소송 대신 조정 절차를 통해 빠르고 적은 비용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법률, 금융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조정위원으로 참여해 기술적이고 복잡한 사안에 대해 전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만큼 공정성도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는 “지난 달 발생한 코빗 12시간 점검 사태처럼 이용자들은 가상자산 관련 사고가 발생해도 보상을 기대할 수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면서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별도의 구제기구를 만들어 이용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가상자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금융감독청(FCA) 산하 기관인 금융옴부즈만서비스(FOS)를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와 투자자 간 분쟁을 중재하고 있다. 다만 가상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 문제처럼 투자자 주관적 판단 비중이 높은 영역은 분쟁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내에서도 현재 논의되는 2단계 입법안에도 별도 분쟁조정기구 설립 내용이 일부 포함돼있어 실제 법안에 반영될 지도 관심사다. 

지난 5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에는 자율규제기구로서 '한국디지털자산업협회'를 설립해 자율규제와 분쟁조정 및 민원처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명시되어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와 유사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구를 법적으로 마련하자는 취지다. 산하에는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 시장감시위원회도 설치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1단계 제정 후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빠른 법안 상정으로 투자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병윤 미래금융연구소장은 “1단계 법안이 반쪽짜리 법안이었던 만큼 2단계 법안은 빠르게 통과시키고 시행규칙을 만들어 이용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며 "지금 통과돼도 2027년에야 시행될텐데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나 다른 정책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형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1단계 법안에서는 가상자산 산업 전반을 규정하는 법안이 부족했는데 2단계 법안에서는 산업 전반에 대한 발전적인 방향이 많이 담겨야한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