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참겠다, 다크패턴 ⑤끝] "소비자 참여 기반 감시체제 갖춰야"...금융상품 규제는 첫걸음도 못 떼
미국·EU 등 강력 제재...국내는 혼선
2025-08-21 이정민 기자
온라인쇼핑이나 구독서비스에서 소비자 몰래 결제를 유도하거나 탈퇴를 어렵게 만드는 ‘다크패턴’이 갈수록 교묘해짐에 따라 정부는 지난 2월 전자상거래법을 개정해 대표적인 다크패턴 6가지를 금지하고 이달부터 본격 단속에 나선다. 취소·탈퇴 방해와 자동 체크 옵션을 비롯한 6가지 금지 행위를 중심으로 소비자 피해 현황을 점검한다. [편집자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다크패턴’ 단속에 본격 나서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규제의 실효성과 명확한 기준 마련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다크패턴을 근절하기 위해선 단순한 법이나 가이드라인 제정에 그치지 않고 실효성 있는 관리·감시 체계와 소비자 참여 기반의 신고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보다 앞서 유럽연합(EU)과 미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은 다크패턴을 소비자 기만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한 법적 조치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업계는 소비자 보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마케팅과 다크패턴 간 경계가 모호해 과잉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규제 실효성을 위해 소비자 신고 활성화 등 참여 기반 감시체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금융상품과 서비스에서 나타나는 다크패턴 행위 규제안을 마련 중이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업계 의견 수렴 지연 등으로 올해 내 완성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 다크패턴, 해외에서는 이미 ‘강력 규제’ 대상
다크패턴의 심각성을 인식한 해외 주요국들은 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하며 소비자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된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이 이용자의 자율적 선택을 방해하거나 왜곡하는 인터페이스 설계를 전면 금지했다. 이 법은 이용자 기만 행위와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는 비투명한 디자인 및 구성 전반을 규제하며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라벨 의무화 등 투명성 강화 조치도 포함한다.
아울러 EU의 소비자권리지침(CRD)은 사업자가 상품·서비스 제공 전 세금을 포함한 총 가격과 배송비 등 필수 비용을 명확히 고지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위반할 경우 소비자는 해당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며 이미 결제했다면 환급을 청구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8년에는 에어비앤비가 필수 비용을 누락한 채 가격을 표시한 사례에 대해 EU 집행위원회가 시정명령을 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2020년 ‘소비자 프라이버시법(CCPA)’과 2023년 ‘프라이버시 권리법(CPRA)’을 통해 다크패턴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원클릭 해지’ 의무화, 개인정보 판매 거부 접근성 강화 등 소비자 편익 중심의 규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9월에는 카운트다운 타이머를 이용한 허위 긴급성 조성, 개인정보 판매 거부 옵션 숨김 등 기만적 설계에 대한 집행 지침도 발표하며 규제의 폭을 넓히고 있다.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 또한 가격 표시 시 모든 의무 수수료를 포함한 ‘단일가격’을 소비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 순차적으로 가격을 공개해 소비자를 오도하는 행위는 기만적 상거래로 간주해 강력히 제재하고 있다.
◆소비자 참여기반 감시체계 갖춰져야
전문가들은 제도적 규제와 더불어 소비자 참여 기반의 감시 체계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다크패턴이 온라인상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상황에서는 소비자 신고 시스템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과태료 500만 원 수준의 제재는 기업 입장에선 실질적인 타격이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신고가 집중된 사업자에 대해서는 순위를 매겨 공표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크패턴은 소비자에게 착각을 일으키거나 오인을 유도하는 행위로 일종의 ‘꼼수’에 해당한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본질로 정당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다크패턴은 소비자들이 본인도 모르게 행해지는 것으로 가입을 원치 않는데 가입되는 경우가 문제”라며 “소비자들이 결제 전에 가입 사실을 알아야 취소 등 다음 단계를 이행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현재는 비용이 나간 다음에야 알아차릴 수 있는 구조이므로 사업자들은 결제 전 가입 사실 등을 알 수 있는 단계를 하나 추가하면 합리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공정위가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만들었다면 단순히 만든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근절될 수 있도록 관리 및 감독이 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윤선 미래소비자행동 사무총장은 전상법 개정으로 다크패턴 규제의 틀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정 사무총장은 "규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방치된 다양한 유형의 다크패턴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가 고도화될수록 새로운 다크패턴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규제 역할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온라인 플랫폼 업계 “취지 공감하지만 경계 모호”
온라인 플랫폼 업계에서는 다크패턴 규제 강화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마케팅 활동 위축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입장도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논의가 오래 전부터 지속돼 왔기 때문에 문제될 부분은 꾸준히 점검하고 관리해왔다”고 말했다. 다만 “규제의 기준 자체가 다소 모호해 보인다”며 “마케팅과 규제의 경계가 불분명한 측면이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는 당연히 제재받아야 마땅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까지 정부가 위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어 마케팅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라는 정책 방향성에는 업계 전반이 공감하지만 정의가 모호하고 편의 기능과 기만적 설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과잉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자동결제나 해지 절차는 서비스 운영의 효율성을 위한 설계인 경우도 있어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입점 판매자가 많은 이커머스 플랫폼 특성상 중소 셀러나 스타트업이 법적·기술적 부담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고 업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금융당국, 다크패턴 규제 가이드라인 마련 지연
다크패턴은 금융 상품 판매·서비스 과정에서도 빈번해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권의 다크패턴을 규제할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4분기 내로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올해 완료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새 정부 출범으로 정책 조율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 현재 지침 마련을 위해 관련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적용 범위 확정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의 의견을 수렴 중이어서 가이드라인 마련 시점을 단정하기 어렵지만 논의는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에도 다크패턴을 규제할 실질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금소법에서 명시한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행위 금지 △부당권유 금지 △허위·과장 광고 금지 등 '6대 판매 규제'도 주로 대면 영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비대면 거래 규제에는 한계가 있다.
금융당국은 앞서 2022년 비대면 거래 확산에 대응해 3개 분야, 7개 원칙으로 구성된 ‘온라인 설명의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설명 의무'에만 그쳐 현재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다크패턴을 규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 전문가들, 금융상품 다크패턴 규율 시급 입모아...가이드라인 VS 법안 의견 분분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금융 상품 판매, 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크패턴 행태를 제제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는 뜻을 같이 했다. 다만 이를 가이드라인 차원에서 다룰지, 법제화해 강제할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는 디지털 금융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다크패턴 규제를 가이드라인 형태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이사는 "앞으로 마련될 가이드라인이 금융 기업들의 행동이 위법한 행위인지 아닌지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며 "가이드라인 자체가 법과 유사한 제재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도 다크패턴 규제를 가이드라인 형태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부 규정보다는 큰 틀의 지침으로 설계해 금융사가 규제를 피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사무총장은 "너무 세세하게 법을 만들어 놓다 보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존재함에도 처벌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오히려 큰 틀에서 규정해 다크패턴 행위 발견 시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이드라인에 그치지 않고 강제력을 갖춘 입법으로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임정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시급한 다크패턴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 이후 충분한 검토를 거쳐 입법으로 발전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임 교수는 "입법 과정에서 규제를 지나치게 상세하게 규정하면 금융회사가 과도한 제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감안해 당국이 신중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크패턴 규제가 가이드라인 형태로 마련되면 디지털 금융 발전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법률과 달리 강제력은 떨어질 수 있다"며 "규제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구체적 제정 방식은 금융당국의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정민 기자/ 이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