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참겠다, 다크패턴④] 금융 다크패턴은 어떡하나?...전상법 규제 밖 사각지대
금융앱 '옵션 자동 선택'·'잘못된 계층 구조'
2025-08-18 이은서 기자
온라인쇼핑이나 구독서비스에서 소비자 몰래 결제를 유도하거나 탈퇴를 어렵게 만드는 ‘다크패턴’이 갈수록 교묘해짐에 따라 정부는 지난 2월 전자상거래법을 개정해 대표적인 다크패턴 6가지를 금지하고 이달부터 본격 단속에 나선다. 취소·탈퇴 방해와 자동 체크 옵션을 비롯한 6가지 금지 행위를 중심으로 소비자 피해 현황을 점검한다. [편집자주]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자상거래법 개정으로 온라인 플랫폼의 다크패턴 행태에 제동을 건 것과 달리 금융상품은 규제할 장치가 없어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은행·증권·카드사 어플리케이션과 핀테크 같은 비대면 금융 거래에서 다양한 유형의 ‘다크패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대면 영업 중심의 불완전판매 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제도적 대응에 한계가 있다.
전상법에 규정된 다크패턴 유형 중 ▲옵션 자동선택 ▲시각적 강조를 통한 선택 유도(잘못된 계층구조) ▲취소·탈퇴 방해 ▲반복 간섭 ▲순차공개 가격 등은 금융 거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눈속임 상술이다.
◆ 사업자에게 유리한 옵션 기본 설정...소비자 원치 않는 서비스 가입 유도
옵션 자동선택은 카드사 등 금융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행태다. 사업자에게 유리한 사항을 미리 선택해놔 소비자가 지나칠 경우 자신도 모르게 원치 않는 서비스 내용으로 가입하게 만든다.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우리카드 등 대부분 카드사앱들이 카드 발급 과정에서 리볼빙 신청 화면의 기본값이 ‘100% 리볼빙’으로 설정된 경우도 ‘옵션 자동선택’ 다크패턴에 해당한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 금액 상환을 다음 달로 이월시키는 서비스다. 전액을 갚을 여력이 없는데도 무심코 100% 리볼빙에 동의했다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리볼빙 비율 100%를 기본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비율이 50%일 경우 고객이 결제 대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어도 절반만 납부되고 나머지는 이월돼 이자가 더 발생할 수 있어 기본값을 100%로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카드사 입장에서는 리볼빙 비율을 100%로 설정하는 것이 민원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 판단해 대부분의 경우 기본 비율을 100%로 설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KB국민카드는 “사용자가 통장 잔액 부족 등으로 무심코 리볼빙을 이용하게 될 경우 장기 연체를 방지하기 위해 기본 비율을 100%로 설정했다. 계획적으로 리볼빙을 사용하는 고객이 아닌 이상, 100% 비율이 고객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해 기본값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잘못된 계층구조, 취소·탈퇴 방해로 사업자에게 유리한 선택 유도
비대면 금융거래에서 소비자가 이미 선택·결정한 내용의 변경을 팝업창 등을 통해 요구하는 것도 △반복간섭 다크패턴 유형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카드 관계자는 "마이데이터와 같이 여러 단계를 거치는 가입 절차에서는 금융 계정 인증, 자산 선택 등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런 확인 팝업이 없으면 되려 사용자 불만이 커질 수도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삼성카드는 비대면 카드 발급 과정에서 ‘후불하이패스 신청 안함’을 선택해도 팝업창을 통해 “후불하이패스 카드를 신청하면 드라이브할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문구로 다시 선택을 유도한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해당 팝업은 ‘신청 안함’을 클릭한 고객에게만 일회적으로 노출되며 반복돼 노출되지 않는다. 이는 서비스 편익을 알리기 위한 정보 제공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모두 소비자에게 불리하거나 사업자에 유리한 선택 항목을 눈에 띄게 배치해 선택을 방해하는 △잘못된 계층구조(시각적 강조를 통한 선택 유도) 다크패턴도 함께 나타난다.
하나은행 등 일부 금융 앱은 마이데이터 가입 시 중도 포기하면 자산연결을 해달라는 화면에서 '확인'은 진한색 배경으로 '다음에' 버튼의 두 배 이상 크기를 차지한다.
카드사들은 회원 이탈을 막기 위해 카드 해지 절차를 발급 과정보다 더 복잡하게 설계하기도 한다. 신규 발급은 비대면으로 간편하게 가능하지만 해지 시에는 고객센터를 통한 절차만 허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객센터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소비자 불만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한 카드사의 카드를 여러 장 보유한 경우에는 비대면 해지가 가능한 사례가 많다. 반면 소유 카드가 1장뿐이면 회원 이탈을 막기 위해 비대면 해지를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토스 등 일부 금융사들은 ‘숨은 자산 찾기’, ‘신용점수 올리기’ 등 문구로 클릭을 유도하지만 실제로는 마이데이터 가입 화면으로 연결되면서 논란이일자 수정했다.
토스 측은 “‘마이데이터’라는 개념을 잘 모를 수 있는 소비자를 위해 표현을 쉽게 바꿔 ‘놓친 자산’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4월에는 카드사와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간 수수료 조율 갈등으로 온라인 결제 과정에서 특정 카드사를 음영 처리해 선택을 제한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현재는 복구됐으며 당시 일부 PG사는 “의도적 음영 처리가 아니라 결제 화면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라는 해명을 내놨었다.
이렇듯 금융 거래에서 자행되는 다크패턴 소비자 피해가 다발하면서 금융업계와 학계, 소비자단체에서는 대책을 촉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지선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 부원장보는 “대면 설명이 온라인 설명으로 대체되는 비대면 금융환경에서 다크패턴과 같은 새로운 위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고령층을 비롯한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보호방안을 지속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는 "금융 관련 법률은 대면 채널을 전제로 만들어져 비대면 채널에 대한 사항이 미흡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비대면 금융상품 판매과정에서 다크패턴 사용 제한 가이드라인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크패턴 관련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