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굉음내며 흔들려 바닥 타일까지 깨졌는데…하자 판정은 '엿장수 맘'
제조사 자의적 판단...비공개 기준에 소비자 불신
2025-08-26 선다혜 기자
사례2=경기도에 사는 박 모(남)씨는 지난 2022년 국내 B가전업체의 드럼세탁기를 구매했다. 사용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작동할 때마다 '덜덜덜'거리는 심각한 진동과 소음이 발생해 AS를 받았다. 하지만 수리 후에도 같은 증상이 계속돼 여러 차례 AS를 받았고 올해 5월 또다시 수리를 맡겼다. 박 씨는 "수차례 AS에도 세탁기 소음과 진동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사례3=광주에 거주하는 강 모(여)씨는 C가전업체의 세탁기를 렌탈한 후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올해 초 세탁기에서 쇳소리가 발생해 AS를 요청했고 방문한 기사는 베어링 축이 고장났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부품을 교체해도 소음이 계속돼 다시 AS를 접수했다. 강 씨는 "업체에서 회수해 한 달 가량 수리한 뒤 세탁기를 돌려받았지만 문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며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했다.
세탁기 작동 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으로 불편과 불안을 호소하는 소비자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나 하자 판정이 제조사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공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세탁기는 대형가전이라 심하게 흔들릴 경우 바닥 타일, 장판에 손상이 가거나 이웃집 민원 등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비자는 피해를 호소해도 소음과 진동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 간 편차로 치부되기 십상이라 교환, 환불 등 구제 받기도 쉽지 않다.
26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세탁기 소음, 진동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오텍캐리어 ▲위니아 등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문제다.
세탁기 작동 시 비정상적인 소음과 진동이 발생해 이웃집의 항의를 받거나 본인 스스로 견디기 어렵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소비자는 정상 범위를 넘어선다고 주장하지만 제조사에서는 “기기결함 없음”, “소비자의 주관적 민감성” 등으로 돌려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도 요원하다.
이 같은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소비자는 “일 년 전 세탁기 탈수 시 소음이 너무 나서 유상으로 수리했는데 소음이 더 심하게 난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세탁기를 산 지 2년 만에 소음 문제로 AS를 3번 받았지만 마지막 수리 후 1년 되자 동일한 소음이 또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세탁기는 소음이나 진동을 판단할 별도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이 없어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환경부가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라 생활가전 저소음 기준을 설정하고 있으나 이는 제품에 '저소음'을 표시할 수 있는 가이드일뿐이다. 세탁기는 52데시벨 이하는 AAA, 52초과~55이하는 AA, 55초과~58이하는 A로 분류한다. '저소음 세탁기'로 판매된 경우라면 이 기준에서 하자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된다.
문제는 환경부가 2015년 처음 제시한 이 ‘저소음’ 가이드라인을 현재 대다수 제조사들이 실제로 적용하고 있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가전업체 중 환경부 저소음 인증을 획득한 사례도 거의 없다. 온라인상에서 일부 개인 판매자들이 '저소음 세탁기'를 내걸고 판매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으나 이는 제조사가 환경부 인증을 받은 게 아닌 판매자들이 자체적으로 표기한 게 대부분이므로 구매 시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결국 소음, 진동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조사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 기준도 비공개라 소비자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체들은 다만 "환경부 기준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소음을 관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대표 전영현)와 LG전자(대표 조주완)는 소음이나 진동에 대한 내부 기준은 마련돼 있으나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세탁기 특성상 결함이 없더라도 세탁실 구조나 울림 탓에 소음, 진동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봤다.
LG전자 측은 “품질 테스트 과정에서 내부 소음 기준을 두고 있지만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는다”며 “소음 불만이 접수되면 엔지니어가 현장에 나가 직접 측정하고 그 결과 기기 결함이 없고 정상 범주로 판단되면 다른 원인을 점검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음은 환경적 요인과 개인적 체감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다만 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연 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세탁기는 빌트인으로 설치되기도 하고 작은 평수의 집은 베란다가 거실과 연결돼 있어 일정 수준의 소음과 진동 관리는 필요하다”면서 “어느 정도 소음을 이상 소음으로 둘 것인지 기준을 정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선다혜 기자]